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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ul 11. 2022

21세기 외로움

우리가 간과하는 그것

<부족함>


며칠 전 친구와 한남동에서 점심을 먹고 사운즈한남으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확실히 한남동은 문화를 선도하는 동네다.’, ‘전개하는 브랜드들이 혁신적이다’. ‘내부 자재나 가구, 조명들이 비싼 것들인데 그 조합이 과하지 않게 매력적이다.’


반면 한 동네 건너에 위치한 해방촌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내려는 헝그리 정신이 느껴진다는 우스갯스런 말을 했다. 다른 결의 미적 감각이다. 부족한 상황을 어떻게 공간 경험에 녹여낼지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흔적들이 내가 해방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경사가 높은 이 오래된 동네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부족함(불편함) 자체가 감수할만한 모험이 되고, 다른 동네와 차별되게 만드는 경험의 총합이 되는 것이다.


부족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충분함으로 가고자 하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방법은 달라도, 충분함은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궁극적인 지향점임은 분명하다. 지금 상황에서 당면한 부족함과 불만족스러움을 조화스럽게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이 긴 삶의 미학이다.


유현준 교수는 좋은 디자인이란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자체적인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공간들에 자연스레 정을 주게 되는 것 같다. 마치 ‘Product - Market Fit’처럼, ‘부족함을 해결하는 방법’ 과 ‘지금 세대 감성’ 과 핏이 맞는 것 같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가릴 처지가 아닌 상황에서는 더더욱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본래 목적과 다른 용도로도 요긴하게 쓰일만한 것들을 찾는 과정이다. 평소에는 존재하지 않던 기능을 다른 물건과 함께 배치(조합)할 때 새로운 물성이 생긴다. 센스 있는 인테리어는 이렇게 독립적으론 이질적이었던 물건들이 서로 조화롭게 관여하며 목적을 이룰 때 달성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부족함을 해결하는 방식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시작하여, 여러 접근 가능한 해결책을 시도해보도록 하는 일종의 인센티브로도 볼 수 있다. 부족함이 충족되어갈 때 좋은 자극을 느끼고 의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적당히 허술한’ 감성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일률적인 방식 아래에서 살며 느꼈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또 그러한 노력을 디자인을 통해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느슨함>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가사처럼, 매일 이별하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떠나보내거나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의 한정된 관심과 에너지는 비대해지는 우리의 삶 사이사이에 느슨한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느슨함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나이테처럼 우리 인생의 굴곡을 보여주거나 삶의 여러 단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모르게 비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비이기주의란, 상대와의 느슨한 관계를 통해 단절은 피하면서도 함께 조화를 이루어나가고 싶다는 지금 시대의 관계주의다. 이 방식의 관계 형성을 통해 나와 닮지 않은, 또는 나랑 비슷한 사람들과 관여하며 충족을 시도하고 있다. 나 스스로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가 1이었다면, 비이기주의를 기반한 느슨한 관계를 통해서는 1.x ~ 의 기능을 만들어내며 요긴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이렇게 각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적절하게 사람들을 구독하고 있다.


<외로움>


이런 방식으로 살다 보면 다양한 관계 조합과 구성을 시도해보며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다. 이는 타인의 실존을 알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워져 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비이기주의적인 관계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짐이 많아질수록 행복한 이기주의자들이 부러워진다. 해가 바뀌며 내 삶이 조망하는 것들도 변하다 보니 외로움이 실체가 되고 있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 우리의 삶은 더 비대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더욱 기능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구독하며 살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느낀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진 내가 가진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타인과 교류했다면, 앞으로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 정서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찾는다. 외로움이라는 근본적인 결핍을 어떻게 서로 도울지 고민해본다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ssay by 준우

photo by Anh Tuan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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