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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Aug 06. 2022

어느 여름밤, 완벽주의자의 죽음

완벽하려 하기 때문에 역설적인 삶

진한 주홍빛을 내며 여름 한 낮을 데우던 해가 기운다. 해가 지고 나면 숨 쉬는 공기는 시원해지고 바닥은 아직 뜨뜻하다. 울창한 숲이 있는 산자락 근처에 집이 있으면 여름밤 산책을 하기 좋다. 모두가 잠든 적막한 시간일수록 바닥을 비추는 가로수들 말고는 없다.


생각에 잠겨 걷다가 문득 발에 치인 것이 있었는데, 죽은 매미다. 아주 까맣고 바싹 말라있는게, 바로 옆 나무에서 떨어진 지 꽤 된 듯했다. 시끄러운 한 생을 살다 간 몸의 빈 껍데기를 보니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시간의 유한함을 알아버린 후 지르는 나지막한 비명일까? 아니면, 세상 밖에서 감내해야 할 짧은 고행을 각오하는 핏기 선 노래일까?


어릴 때 곤충 백과사전에서 메뚜기의 정면을 마주치고 까무러친 적이 있어서 곤충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무서워하진 않는다. 내게 곤충은 매우 단순한 생명을 부여받아 본능에 따라 살다 가는 미물일 뿐이다. 매미도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곤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죽은 매미의 탁한 눈과 아이컨택을 하기 전까지. 나는 답답한 마음에 그 죽은 매미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싶었다.


그리 짧게 있다 갈 거면, 세상 밖엔 무슨 볼 일로 왔습니까?


죽는다는 표현을 곤충의 삶에 비춰보면, 꽤나 낯선 표현이라고 느낀다. 생을 다 했다는 것을 곤충에게 적용하면 더더욱 그렇다. 매미는 번식을 위해 살다 가는 평범한 곤충이 아닌 것 같다. 매미는 높은 나뭇가지 속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굳이 땅으로 떨어져 땅 속에서 7년을 보내고, 죽기 전 마지막 2주 전에 땅 밖으로 나와, 다시 나무로 기어올라 거기서 죽는다. 삶 속에서 매미가 내리는 결정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땅 속에 있는 기간에 비해 땅 밖에서의 삶은 눈 깜빡 한 번의 찰나와 같다. 반대로 땅 속의 시간은 매미에게 억겁이다. 의식이 있는 상태로 땅 속 뿌리 근처에서 수액을 먹으면서 삶의 전부를 보낸다. 아, 매미는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세상에 온전하게 성숙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허물을 벗어가며 커가는 과정의 단계는 세상에 공개하기엔 볼품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을 만난 적도 없으면서 뭘 안다고, 지나친 자의식도 느껴진다. 사실 얼마나 그 안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을까. 완벽주의 때문에 진홍색 노을도 며칠 보지 못 한다. 딱하다 딱해. 그 완벽한 기질과 자의식을 조금만 죽일 수 있었다면 좋은 세상 더 보다 좋은 곳 가셨을 텐데요.




그 매미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창문 옆 매미들에게 그만 좀 울어달라고 말을 못 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도 자기 연민과 고독함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짝짓기 송(song)을 멈춰달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깊숙한 비통함에서 올라오는 하소연, 혹은 곡소리일 수도 있으니까. 지상에서의 삶은 좋은 것이란 것은 인간들의 편견일 수 있다.


과연 매미는 아, 이제 때가 되었으니 밖으로 나가 2주간의 찬란한 황혼을 음미하리라 하고 결심할까? 7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매미는 짝짓기보다 더 높은 목적의식을 가진 생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미는 자기중심적인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온갖 상상과 기대감을 가지고 7년을 참았다. 하지만 막상 나와보니 내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위험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고, 또 7년간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없단 것을 안 것이다, 실망한 것이다. 매미가 땅 속에 올라와 마주한 세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땅 위로 나온 후에야 비로소 매미로서의 존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7년 동안 매미였는데? 하지만 그것은 거기서(땅 속)의 매미였던 거고, 여기서는(세상 밖) 매미로서 다른 시작이다. 애석하게도 매미는 생애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한 편으론, 매미가 땅 위에서 해야 할 일은 정말 짝짓기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땅 속에서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주어진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 슬픈 숙명을 가진 존재. 나만의 세상이었던 땅 속에서 용기 있게 나와, 다음 세대에게 매미의 삶을 선사한 후 장렬히 죽는 것이다. 그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주어진 역할은 알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날 밤 산책길에서 만난 매미는 이런 매미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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