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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28. 2020

열정과 냉정 사이

슬럼프와 번아웃, 내일의 내 일을 고쳐 생각해보기.

우리 몸의 약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계속해서 흐르고 요동치는 성질이 있는 물이 우리 몸의 70%를 구성하고 있어서 일까. 큰 변함이 없는 우리의 하루하루에도 우리 마음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탄다. 


익숙한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갑자기 무료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고, 연인과의 만남이 오히려 각자의 발전에 있어 퇴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연애 초기의 열정을 되찾기 위해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다른 짜릿한 만남을 계속 찾아야 할까?


하던 일이 갑자기 재미 없어지거나 자신 있게 하던 업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불길한 예감을 마주하게 된다. 동시에 삶의 의욕을 잃으며 전체적 비생산성 모드로 돌입한다. 일반적인 번아웃(Burnout)의 모습이다. 우린 이러한 원인을 주로 스스로에게 돌리는데, 이 것이 틀렸다기보다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통 슬럼프라고 부르는 것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업무 외적인 것들이 몰고 오는 태풍도 많다. 그래서 지금 만약 하는 일에 흥미를 잃었거나 회사에 출근해 노트북을 열 의욕이 안 난다면, 내 텐트 안팎의 괴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번아웃, 하루 이틀의 꿀잠으로도 가시지 않는 마음의 병, 

내 마음 면역력이 낮아지면 기어코 우리를 찾아온다. 

마치 감기같이. 


세계 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직업과 관련된 증후군(occupational syndrom)이라 정의했다. 미국은 특히 정신 건강과 관련된 산업이 잘 성장한 나라다. 작년 기준 미국에서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들이 본인 정신 치료에 지출한 돈이 약 1조 원 가까이 된다는 조사 자료가 있는데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직장인 중 약 1/3이 번아웃을 경험하였고 이 중 1/4은 아주 자주 번아웃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이 증후군은 감정적 고갈을 시작으로 우울증, 기억력 감퇴, 면역력 상실, 불면증, 심하게는 심혈관 질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 실제적 피해가 크다.


도대체 직장 슬럼프의 정확한 증상이 뭘까? 그냥 하고 있는 일을 접고 나르고 싶은 충동일까? 마치 비워지지 않는 쓰레기통같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계속해서 버려지지 않고 쌓이면 번아웃으로 이어질까? 번아웃과 같이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의 뇌에는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는데, 코르티솔은 장기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반응하는 물질이다.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병이지만, 특히 번아웃에 노출되어 있는 직군이 있다. 작년 미국 직업 검색 플랫폼 The Ladders에 올라온 칼럼 <The 6 Industries where people burnout the fastest>에 따르면, Ranstad U.S. 가 직장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래와 같이 직장 내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 증상을 알아냈다.


1. 항상 '업무 중'이어야 하는 심적 중압감을 가지고 있어 퇴근 후 밤에도 주말에도 회사 이메일을 확인한다.
2. 주중에는 더 많은 업무량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산다.
3. 커리어 발전을 느끼지 않는다.
4. (직속이든 그 위든) 상관들로부터 내 업무 능력을 그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5. 회사 내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 수가 적어 내 업무량이 많다.
6. 내 업무 강도와 양에 비해 보수 및 혜택이 적다.
7. 워라벨이 상당히 무너져있다.


그렇다면 특히 번아웃에 공격당하기 쉬운 직업군은 무엇일까? 감정 노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섯 군이다(순서는 관계없다):


1. 사회복지 관련 직군(Social Work)

주민센터와 같이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다. 복지를 제공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이다 보니 특정 고객군 없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는 감정적 피해에 취약하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2. 응급/긴급 대응팀 (Emergency Response)

긴급 상황실/콜센터, 소방관, 경찰, 5분 대기조, 응급실 의료진분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분들의 24시간은 규칙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분들의 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작된다. 우선 충분한 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이런 분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가 안전한 사회를 누리고 있음에 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3. 디자인 직군 (Design)

의외일 수 있다. 디자인 직군은 자신의 결과물이 본인의 기대치에 전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크나큰 불안정성에 시달린다고 한다.


4. 사업 개발/영업 (Business Development and Sales)

또한 의외일 수 있다. 어찌 보면 멋진 직함인데 과연 번아웃에 걸릴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휴가와 업무의 경계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즉 새로운 사업 기회와 영업 파이프라인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주중 9시-6시 사이에만 고민해서는 찾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젊은 CEO나 임원들이 주말에도 멋진 뷰를 앞에 두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장면을 많이 본 듯하다.


5. 소매업 (Retail)

역시나 소매업은 감정적 노동의 대표적인 업종이다. "내가 일하는 가게(업장)에 고객 한 명이라도 더 오는 게 과연 내 커리어적인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의 불평과 말 도 안 되는 요구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있느냐 말이다!(ㅠㅠㅠ)


6. 의료 (Medicine)

난 이 분들이 의술을 펼치기 위해 단순히 오랜 시간 의학 전문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고소득 직군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 의대생이 정식 의사가 되기 전에 윤리적 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떠나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직업의식을 한 번 더 고취하고 각인하기 위함이리라. 특히 중증 환자를 다루는 의사들이 번아웃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환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수록 더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만 해도 피로도가 엄청날 것 같다.


앞 서 말했듯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방역 중 건물 밖에 나와 잠깐 쉬다 잠든 의료진의 사진 한 장만 봐도 측은한데, 우리는 이 분들에게 참으로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이퍼 리얼리즘 연기를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박진주의 간호사 연기

(이준우 생각 추가) 7. 교육계

초중고 선생님, 대학 교수님들도 번아웃에 노출되어있다. 우리의 학창 시절, 대부분 선생님들이 그저 우리 어린이들을 훈육하고 정해진 교육자료를 전달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교육자도 역시 윤리적 강령이 있기 때문에 직업적 소명과 현실적 상황에서 오는 이질감에 많은 혼란과 좌절이 찾아올 수 있을 것 같다. 




팟캐스트 <WorkLife with Adam Grant>의 'Burnout Is Everyone's Problem'에서는 번아웃의 여러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중 번아웃의 3가지 요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번아웃 요인 3가지

1. 고용 불안 (Job Insecurity)

2. 지나친 책임감 (Indebtedness)

3. 디지털 기술 (Digital Technology) 


팟캐스트 호스트 아담 그랜트는 번아웃과 싸울 수 있는 모델을 소개했다.


1. 업무량 통제 (Demand)

2. 업무 환경 조정 (Control)

3. 도움 구하기 (Support)


우선 빠듯한 당신의 업무량을 줄여라. 슬랙, 노션, 먼데이, 지메일, 모두 생산성 증진을 위한 툴이지만 이 것들이 나의 목을 조여 온다. 업무 자체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중요도와 범위가 있지만 확실히 내 손안에 잡을 수 있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업무량만 맡자. 단순히 수신하는 이메일이나 전화가 많다고 번아웃이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행하는 업무들을 내가 한 장의 A4에 정리할 수 있는 만큼만 진행하자. 


쉽게 일하도록 업무 새로운 업무 방법을 생각해보자. 내가 왜 애초에 이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고민도 좋다. 가능하다면 업무 시간을 조정해보거나 담당하는 상품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아담은 말했다.


한 회사의 조직 문화는 직원 개개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위 1,2번이 실천 불가하다면 상관에게, 인사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회사의 표준 규정의 힘을 빌려 당신의 감정적 시한폭탄을 해제해라. 회사가 심리상담사를 정기적으로 초청해 직원들이 짧게나마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라. 혹은, 번아웃으로 감정적 고통을 겪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건네라. 당신이 돕지 않으면 당신도 옮을 수 있다. 번아웃은 개인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조직적인 문제다. 실제 감기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정신과 연구에 따르면 직원 한 명이 감정적 고갈 상태를 보이면 그의 주변 동료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번아웃은 당신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느냐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오히려 내가 이 곳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나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번아웃에 빠진 것 같다면 희망을 갖는 것이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일의 양을 줄이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당신 일의 의미를 확인하는 노력으로 해독제를 찾아보자.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애초에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이유를 느껴보는 것이다.


스스로 기분 좋은 소소한 성취감을 찾자. 

이 것은 우선 나만 알 수 있는 것이어도 된다. 

반드시 상관에게 보고해야 하는 결과물이 아니어도 좋다. 

이럴 때일수록 이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동기부여 콘텐츠를 보는 것은 장기적 실효가 없는 것 같다.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인 데다가 유명한 사람이 아주 추상적인 조언을 할 경우에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이렇게 억지로 내면의 열정을 뒤적거리도록 하는 영상들은 마치 모르핀 같다. 중독성이 강한 일시적 진통제일 뿐이다. 적어도 우리들만큼은 이런 중독적인 성공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자. 


열정은 마라톤 경기 중 곳곳에 마련된 이온 음료가 아니다.

마라톤 경기를 뛰게 되면 구간별로 소금이나 이온 음료를 준비해놓는다. 힘들어 죽겠는 마라토너들에겐 아주 고마운 선물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고 이미 허벅지 아래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다음 10km 앞에 있는 이온 음료를 마시기 위해서만 뛸까? 아니다. 그들이 뛰는 목적은 목적지까지 완주하기 위함이며, 그래서 열정은 마라톤 경기 중의 이온 음료가 될 수 없다. 열정은 목표 그 자체이다. 한 발짝 내딜 때 목표가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열정인 것이다.


나 또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계획 단계 중간쯤 가서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이걸 왜 하겠다고 했지? 지금 보니 아무래도 계획대로 될 거 같진 않은데 말이지. 이미 자신감 있게 벌려놓은 상황인데 이를 어쩐담?' 때로는 초심을 찾기보다 내가 정한 목적지까지 간다는 생각으로도 충분히 일을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일에 대한 열정을 찾는다는 것은 물속 깊이 잠수하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흐르는 물 안에 몸을 담그기 싫어 계속해서 물 표면에서 숨만 가쁘게 쉬는 것은 물에 잠긴 것도, 물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애매한 상황이 우리의 열정을 식게 한다. 


물 안에 그대로 잠수해야만 그 물 안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 우리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을 참아야 하는데, 얼마나 오래 참을지, 가슴을 조여 오는 한계를 얼마나 견딜지는 스스로 훈련을 통해야만 발전한다. 즉 얼마나 집중해 몰입할 수 있는가, 몰입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에서 지금 하는 일의 업무 속도를 높이거나 결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기 싫다면 그 물에서 나오는 게 낫다. 



essay by Jun Woo Lee
photo by Mater Miliano, Kristopher Roller, Nate Neelson, Nikko Macaspac, Jacob Wal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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