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라지는 불안이란 열차, 그리고 21세기 약장수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쉬운 것들에는 단계가 있다. 아주 쉬운 것에서 덜 쉬운 것,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쉽지 않은 것부터 아주 어려운 것까지.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생필품을 배달받는 쿠팡맨
계단을 오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
정규직 구직보다 요건이 낮은 시급제 아르바이트 구직
도착 시간이 늦거나 환승이 여러 번일 때 버스보다는 택시
빠르게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매춘
빠르게 취할 수 있는 술과 마약
빠르게 불안한 마음을 잠깐 정리할 수 있는 흡연
빠르게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카드 대출
애플 페이, 삼성 페이, 알리페이, 등 핀테크 기술(비밀번호를 대체한 홍채인식, 안면인식 증명 기술까지)
버튼에서 지퍼(zipper)
새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직접 청소도구를 사서 방마다 청소할 필요 없이 부르기만 하면 되는 집 청소 서비스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편의점
여러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한 카드에 후불교통카드부터 집 열쇠, 차 열쇠 기능까지 합쳐진 신용카드
추천서와 좋은 성적이 필수인 명문 사립대학이 아닌 입학금만 내면 되는 대학
지도 교수의 교정과 표절 검사를 생략하고 제출한 졸업 논문
조건만남
헬스장까지 옷 입고 갔다가 다시 와 씻기 귀찮아 그냥 퇴근 후 집에 있으면 생기는 뱃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튜브(Youtube), 구글, 네이버
방금 찾은 검색어에 대한 연관 정보까지 파생하여 제시해주는 검색 알고리즘
TV에 나오는 스타일리스트가 알려주는 코디법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 알려주는 뜨는 주식 종목 소개
왓챠,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같은 OTT 서비스
(넷플릭스가 잘 되는 이유는 볼거리가 '많아서' 라기보다 많은 볼거리가 모여있는 곳을 '한 클릭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장황하게 위에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다. 위의 것들은 거의 모두 일반적 경로로 최종 목적을 달성할 때보다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편리함/시간 단축이 가격 프리미엄 +@로 작용한다.
어떻게 하면 A에서 B까지 빠르고 간단하게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 세상 모든 사업들이 생겨났다. B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무엇이 불편한지를 깊게 고민한 사람들 중 10분의 1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 사람 중 실패를 겪은 사람들의 5%만 다시 도전한다. 이 수많은 과정 속에서 본인만의 노하우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들만이 결국 성공했다. 긴 A-B 사이의 고단한 화살표를 하나씩 쌓아 나간 결과 돈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A-B들의 간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면의 소개팅 상대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기술은 없다. 지금 내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해서 16살의 남자 몸이 20살이 될 수 없다. 당연하게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찌 보면 너무 다행이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분야까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쉽게 100만 원 버는 방법을 판다. 자신의 사업 성공 노하우를 선심 쓰듯 판다. 쉬운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판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서 출신 미상의 사람들이 자기의 스토리를 팔고 있다. 특히 우리 젊은 세대는 그들의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키지 않더라도 급한 마음에 우선 듣고 본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관찰된다.
내가 출근하는 지점에 12년 차 온라인 커머스 회사 대표님이 계신데, 그 분과 대화를 하다 인플루언서 수입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SNS상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 중 본인이 사입한 제품을 직접 홍보하여 판매했을 때 개당 마진율을 50% 넘게 잡는다고 한다. 한 인플루언서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브랜드가 없는 청바지를 판매할 때, 자라(ZARA) 청바지 수준으로 가격을 매겼다 하더라도 그들의 순수익을 빼면 정말 저렴이 그 자체의 보세 청바지와 다름없다고 하셨다. 결국 소비자들은 낮은 품질의 제품을 사게 되는데, 그 제품의 유일한 정보 출처는 그 인플루언서가 올리는 정보뿐이다.
작년 임블리 사태도 비슷한 맥락이다. 임블리의 멋진 사진 뒤 실체를 알 수 없는 시청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거품이 꺼진 사건이었다. 호박즙 입구 곰팡이가 인플루언서 제품의 맹목적인 구매를 향해 경종을 울렸다.
월급 외 100만 원 벌기. 평범한 사람이 돈을 만드는 비법. 쉬운 부업 만들기
유튜브 반 이상이 위와 비슷한 글을 썸네일에 쓰고 있다. 국내 대표 취미 강의 플랫폼에서도 유명한 파워 셀러를 주인공으로 섭외해 쉬운 성공 방법을 팔고 있다. 또한 유튜브 광고에 등장하는 한 튜터는 이렇게 말한다, '저처럼 멍청하게 4천만 원이나 써가면서 배우지 마시고 제가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무비판적 정보 수용과 불안함을 겸비한 일반인들이 이들의 최고의 먹잇감이다. 과연 이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들이 수년간 걸쳐 개발한 노하우나 판매 방법을 쌩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줄까? 알려준 것을 그대로 따라한 사람들 때문에 자기는 이제 뭐 먹고살라고?
한 예를 들어보겠다. 부업으로 스마트스토어 셀러가 되어 물건을 판매하면 월수입 1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하는 강좌가 있다.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수강생들은 딱히 시장 조사나 직접 찾아보려 하지 않고 단지 그 강의자가 자기처럼 소자본 창업으로 큰 부를 거 뭐 쥐었으니, 말하는 것들을 그대로 판매하려 한다. 대부분 이런 케이스는 강의자의 사업만 조용하게 득을 본다.
유통 과정만을 단순히 나눠보면 생산자 -> 도매상 -> 소매상 -> 최종 소비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매상 소매상 사이에서는 1차 도매상, 2차 도매상이 있고, 똑같이 소매 - 소비자 사이에도 1차 소매상, 2차 소매상 등 매우 많은 시장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 만약 강연자가 팔라고 알려주는 것들이 본인이 운영하는 도매 플랫폼에 올라가 있는 제품들이라면, 결국 그 제품들을 사 최종 소비자에게 파는 수강생들은 강연자 통장만 불려주는 꼴이 된다. 이렇게 하면 같은 물건을 파는 경쟁자만 많아져 수익은 수익대로 절대 나오지 않는다. 유통 과정과 가격 결정에 대해 직접 얻은 지식 없이 바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예전 마차 타던 사람들이 증기 기관을 발명하면서부터 인간의 이동 속도는 계속 빨라졌다. 하지만 비행기가 시속 7~800km로 날 수 있게 되면 뭐하나, 결국 물리적 속도는 한계가 있는데. 그 대신 우린 속도가 무한정 빨라질 수 있는 인터넷 속에 산다. 지금의 빠름은 더 좋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나오면 곧 느린 것이 된다. 디지털 디바이스와 한 몸이 된 우린 이렇게 계속 급해진다.
빠르게 소비하는 이 시대에서 무엇은 빠르면 안 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에 속도를 높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이 쉽게 소비하는 당신의 최애 유튜버의 영상은 적어도 5~6시간 이상의 촬영과 편집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이다. 쉬운 곳에는 디테일이 살 수 없다.
세상 살기는 더 각박해지고 어려워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하루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 예전부터 우린 편리함을 얻기 위해 불편함을 참고 기다렸고, 또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아끼고 공부하며 준비했다. 다 나중에 편하자고 지금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아등바등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쉬워 보이는 것에 눈을 돌리기가 쉽다. 하지만 우린 지금 이렇게 어려운 고행을 기꺼이 선택했으니 이 긴 과정을 깊게 믿어야 한다. 이 과정이 길면 길 수록 아름답고 세세한 디테일들이 숨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요행을 바라지 말자. Easy come, easy go. There is no free lunch. 이 글은 스티브 잡스가 한 말로 마무리한다.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You have to work hard to get your thinking clean to make it simple. But it's worth it in the end because once you get there, you can move mountains.”
essay by Jun Woo Lee
photo by Oscar Keys, Fernando Cfer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