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는 당신 진짜 강한 사람
지금 사는 집의 전세기간이 거의 다 되어 요새 새 전셋집을 알아보고 다니고 있다. 2년 전부터 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는데, 내가 주중 낮 시간에는 회사에 있다 보니 프리랜서인 그 친구가 직접 발품 팔며 매물을 보러 다니도록 했다. 요즘은 전세가 없다는 게 실감이 난다. 원하는 가격대는 전세로 나온 집이 몇 없다. 지금 사는 동네 주변으로 알아보자니 선택지가 몇 없다. 좀 더 반경을 넓혀 알아봐야 하나 하고 슬슬 머리 아파지려 하는데, 동생은 같이 살 집인데도 본인만 알아보러 다니고 나는 그저 '괜찮네 어쩌네' 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래서 며칠 전 대판 싸운 이후 관계가 미적지근해졌다.
요새 회사일이 바빠서 집안 일도 미루곤 했는데, 오늘에야 큰 고비를 넘기며 머리를 비우기 위해 조깅을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식료품을 좀 샀는데, 가장 머리를 쓸 일이 없는 일을 찾다가 도시락이 갑자기 떠올랐다. 동생이 하는 일은 음악 프로듀서라 매일 개인 작업실에 가다 보니 어떻게 끼니를 때우는지도 몰라 처음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어 싸주기로 했다. 유부초밥 만드는 세트(?)가 잘 나와있어서 4인분용 하나를 샀다. 아주 간단하게 잡곡밥 햇반 2개를 돌리고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하는데, 썩 재밌었다.
뜨거운 밥을 숟가락으로 떠 유부 피에다가 넣는 게 즐겁더라. 아무 생각 없이 금방 12개의 유부 피 속을 채웠다. 그리고 오늘까지 서먹서먹했던 동생과의 사이가 굉장히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소처럼 내 동생이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고 힘내라는 마음으로 유부초밥 도시락을 싸준 게 아니었다. 우리는 큰 말다툼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상해있었고 서로 말도 안 하고 있었다. 근데 이 짧은 10~15분의 시간 동안 참 신선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환기되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만드는 순간은 오직 동생을 생각했다. 간단한 도시락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내가 느낀 것은 여운이 길었다. 굳이 시간을 내 남을 위한 유부초밥 도시락을 만들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누군가를 생각하는 데에 더 썼음에도 다시 꽉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게 아침 점심 저녁마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었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이걸 본다면 동생은 질색하고 싫어하겠지만 한 번씩 자식 한 명 키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죽 이런데 실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 꼴 보기 싫을 때도 밥을 하는 그분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그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도시락을 싸는 행동은 좋은 일이고 남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 것은 영적인 행위다.
이 세상 모든 프로 도시락(특히 아내, 남편, 여친, 남친 등 타인을 위한) 준비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ssay by Jun Wo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