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생존법은 스스로 결정하기. 섣부른 위로하지 않기.
지구에 종말이 찾아왔을 때 다음 중 어느 쪽이 더 생존율이 높을까?
단독 vs. 집단
장점:
1. 신속히 이동할 수 있다(높은 기동력). 산악 지형을 지나갈 때 나보다 느린 사람들이 있다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생존하기 어려운 곳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
2. 가지고 있는 식량을 덜 소모하고, 처음부터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자기 짐만 챙겨 들고 다니면 되므로 이동이나 은폐 등에 유리하다.
3. 본인만 조심하면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생존에 꽤나 필수적인 요소인데, 전쟁에서도 적이 내는 소리로 적을 탐지해 격파한 사례가 많다. 소리는 즉 진동이다. 괴물들은 우리보다 미세한 소리와 진동에 민감히 반응한다. 영화 콰이어트를 보라.
4. 논쟁할 상대가 없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오늘은 이것으로 대충 요기할까 아님 불을 피워 음식을 데울까 하는 식의 불필요한 사안이 없다. 에너지와 시간을 쓸 데 없이 허비하지 않는 것은 생존에 큰 도움을 준다.
단점:
1. 너무 외롭다. 계속 혼자다. 그래서 혼자 대화하거나 물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열에 아홉은 정신이 이상해진다. 영화에서도 오랫동안 홀로 생존을 한 사람이 주인공을 만났을 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2. 자기와 교대로 망을 볼 불침번이 없다. 본인의 피로도가 쌓이면 똑같이 경계심도 낮아진다. 경계는 생존에 필수인데 이 것이 오로지 나의 체력과 밝은 귀에 달렸다.
3. 혼자서 할 수 있는 경계의 범위나 사거리가 짧다. 결국 자기 주위 가시적 거리만 탐지가 가능하다.
장점:
1. 상호 보호 체계: 서로를 돕는 관계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키가 작은 동료를 위해 본인이 대신할 수 있다.
2. 추가 물자가 생긴다. 생존에 필수인 도구나 무기를 깜빡했을 때 내 동료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혹은 예비용으로 상시 구비하고 있어 든든하다.
3. 당면한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대책과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높다.
4. 임무 분할: 각자가 집단 생존의 필수 요소를 하나씩 전담하여 집합적으로 더 큰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A조가 휴식을 취할 때 B조가 망을 보며 경계 근무를 하고, C조는 정찰, D조는 식량을 담당할 수 있다.
5. 동반자 의식(집단의식): 우리는 이 어려운 상황을 똑같이 견디고 있고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말로 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단점:
1. 사람이 많을수록 기본 필수 물자가 많이 필요하다.
2. 잦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중재하고 애초에 사소한 언쟁을 차단하겠지만, 집단의 계획과 전략이 산으로 갈 확률이 있다. 이는 집단 생존율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3. 그래서 누가 대장이 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물자가 크다. 최악의 상황으로 서로가 대장이 되고 싶어 서로를 죽여 자멸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4. 소리: 단독으로 움직일 때보다 역시 소리 통제가 어렵다.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고 생각해보아라.
5. 집단 경계체계 실현의 어려움: 물론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임무를 하여 조직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지만, 그건 이 사람이 내 어릴 적 동네 친구 거나 가까이 지낸 사람일 경우에 그렇다. 만약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내가 잘 때 날 위해 보초를 서 준다? 잠이 잘 올까?
재밌는 건, 집단이건 단독이건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솔로로 모험하다 갑자기 집단을 형성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집단의 한 일원이었다가 갑자기 단독 행동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확실성 투성임에는 분명하지만 하루하루 우리에게 확실한 통제권이 주어진다. 사실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충분히 나 홀로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지만 365일 1년으로 내다보았을 때는 내 앞에 펼쳐진 불확실성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듯하다. 내가 베어그릴스가 아닌 이상 자급자족은 어려울 것이고, 우선 가장 중요한 외로움이라는 적이 너무나 강하다.
무시무시한 재난 영화들처럼 우리의 목숨을 실제로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 자체는 하나의 블록버스터 재난 생존 영화임은 확실하다. X세대 부모님 아래서 큰 성인 여성이 한국에서 커리어우먼이자 동시에 한 가정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들어와 사회인으로서 적응해가는 사람. 아직은 보수적인 한국 기득권 사회에서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사람. 지방에서 상경해 대기업에 다니며 멋진 집안을 만들어보려는 사람까지 모든 이들이 프로 생존러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혼자 생존할 것인가 함께 생존 모험을 할 것인가?
개인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발현된다. 개인의 사고 역량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와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단지성이 나오는 상황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집단 내에서 자기 1인분도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 사람의 낮은 위기의식이 전염병처럼 조직 전체로 퍼져 모든 이들의 생존율을 하락시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처한 상황에 지배당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있는 건물 아래층에 불이 나 사이렌이 울리는 상황에 옆 과장님이 '괜찮아, 곧 꺼질 거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했을 때, 당신은 이를 곧이곧대로 듣고 그냥 앉아있을 것인가?
최소 3개의 카카오톡 단톡 방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은 타인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한다. 가까운 지인일지라도 이는 매우 섣부른 행동이라 생각한다. 괜찮을 거란 말을 남용하여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홀로 생존을 꾀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본인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그 사람만의 판단력을 망칠 수 있다. 실제로는 안 괜찮을 수 있다. 괜찮다는 말은 의도와 다르게 오작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니 어려운 상황이어도 단순한 위안을 건네는 것에 조심하자.
조직이라 해서 거창할 것 없다. 항상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아도 그 집단에 있으면 나만의 생존 전략을 조정할 수 있고 또 좋은 생존 팁을 공유받을 수 있는 모든 그룹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서클을 찾자. 없다면 직접 만들자. 굳이 나를 잘 아는 친한 친구들끼리의 모임일 필요는 없다. 좋은 모임은 실제로 내 일과 그 외 생산적인 활동에 도움이 된다. 이런 모임들을 만들고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한다. 당신의 생존이 걸렸으니까.
구글 트렌드를 통해 'Crisis'와 'Help' 키워드를 넣고 지난 5년간의 검색량 추이를 확인해보았다.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키워드는 거의 대부분 같이 움직인다. 위기가 고조되면 주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 특징인가 보다.
13년 전 미국에 있을 때 보이스카웃을 했다. 거기서 내가 경험하고 배운건 한국에 있을 때 활동한 보이스카우트 및 우주정보 소년단의 활동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자연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불을 피우는 법, 목적에 맞게 로프를 묶는 수 가지 방법, 장비의 도움 없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내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 등, 아직까지 몇 개는 기억난다. 그때부터 재난영화나 생존 영화를 많이 찾아보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나의 올타임 최애 생존영화는 <나는 전설이다>다. 이 영화뿐 아니라 할리우드 재난 영화들의 결말은 혼자 모험하는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아 사람들이 있는 피난처에 도착한다. 결국 집단 생존율이 더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essay by Jun W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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