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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Apr 25. 2020

끝장 내는 것의 아름다움

알파와 오메가 반복 법칙

시작의 미학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성경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세상 창조 과정을 보면 가장 처음으로 하신 일이 빛이 있게 함이었다. 빛을 시작으로 여섯 번째 날에 모든 천지 창조를 마치셨고 제7일은 안식일로 지정해 지금의 일요일, 교회 가는 날이 되었다. 무언가 시작했으면 끝을 보신 창조자의 피조물이라서일까, 그 피가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은 삶을 잘 '끝냄'이다.


2010년 페이스북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사 벽에 'Done is better than perfect'를 써 놓았을 때부터 이 알파+오메가=성공 공식에 큰 믿음이 생겼다. 이제부터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일을 빠르게 끝낼 수 있느냐이다.


끝장을 낸다는 것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A를 '완료', '완성', '종료'할 수 있고, 혹은 B를 '중단', '만료', '구독 취소'하는 것도 똑같이 무언가를 끝내는 행위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우리가 느끼기에 시작은 절대 반이 아니다.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 정도 될 것이다. 시작 단계는 아주 소소하고 귀여울 정도로 작은 것이다. 이 귀여운 단계에서 시작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게임 만랩을 찍었고 도티가 되었으며 또 손흥민이 되었겠지. 요즘은 성공 스토리가 많아져 이 사람들처럼 될지 못하는 것 뭐하러 시작하냐라는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쉽게 포기해버리는 quitter였다. 세상을 너무 몰라서인지,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대학 시절 전공과목 중 높은 수준의 수업은 집중하기를 포기했었다. 또 연애가 이게 다겠지 싶어 쉽게 안녕을 말했고, 멋진 몸을 갖고 싶었지만 15kg 덤벨도 겨우 드는 내가 인스타그램 몸짱들을 보면 이건 시간 많은 사람들의 리그라 단정했다.


그중 가장 기억이 선명한 경험은 2015년 대학 생활에 시작했던 의류 사업이다. 호기롭게 아버지에게 차용증을 쓰고 투자받은 300만 원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망했다. 망한 이유는 내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수십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내 머릿속에 있었다. 내가 쉽게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억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요즘도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미미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쉽게 포기하는 그때의 나를 또 마주하게 될 까 봐 시작 단계에서 주저한다. 그래서 나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요하는 장기 계획 실행에 유독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또 무언가를 멋지게 끝내는 것도 어렵다. 아깝다, 무언가를 쉽게 끝내기가. 하는 과정에서 느끼던 것을 더 이상 못 느끼가 된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지금이라도 다시 하면 잘할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 사실 2016년에 폐업 정리한 티셔츠 재고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왠지 버리자마자 꼭 쓸 일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요새는 1년 이후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은 과감히 끝내려고 한다. 근데 확실한 것은, 나 스스로 아름다운 종료를 외친 것들은 내 귀중한 자산이 되었고 떳떳하지 않은 끝냄은 내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것으로 남았다.




2018년 Wholgrain Digital에 기고한 Tom의 글 <Is done really better than perfect?> 에는 완벽함이란 매번 움직이는 과녁이라고 말했다. 완벽함이란 사막에서 신기루를 찾는 행위이며, 인간 생활에 있어 거의 모든 것이 하루하루 변하는 마당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없다고 했다.


나도 꽤 오랫동안 타이밍과 완벽함을 믿었다. 마치 사랑에 타이밍이 있는 것처럼. 이직에 적정 타이밍이 있는 것처럼. 근데 우리 인간은 완벽한 것에 반응하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우리는 마치 스펀지처럼 계속되는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유입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며 산다.


이봐, 해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 정주영 님의 어록이다. 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이 생전에 해냈던 일들 뒤에는 이렇게 그의 패기에 지릴 수밖에 없는 어록들이 많다. 깊은 울림을 주는 명언들은 단순하다.


어쨌든 뭔가를 만들어 냈느냐, 해내 봤느냐가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해봤냐, 시작한 것을 끝내봤냐'가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굉장한 내공의 소유자들을 보라. 다들 인생의 굴곡이 남다르다. 행복했든, 아팠든 과감히 해보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 본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시작은 단순하게, 끝은 확실하게.


나이키가 1988년에 처음 시작한 슬로건 "Just Do It."이 떠오른다. 저 온점(.)만큼이나 파급력과 호소력이 있던 게 있었을까 싶다. 저 온점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진지하지만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은 쉽다, 그 아이디어의 힘을 믿고 현실로 탄생시키는 과정은 결단코 다른 세상 얘기다. 무언가 끝장을 본다는 것은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모든 단계와 어려움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에서 소위 일 잘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완벽하기 위해 일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은 죄악이다는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한다고 하지 않은가. 일 마감의 속도가 곧 실력과 연결되고, 엘리트와 평범한 직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더 과감하고 빠르게. 결국엔 더 정확한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많이 끝장 내보고 확실하게 실패하자.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이란 완전한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제품의 필수 기능만 넣고 빠르게 공개해 고객의 피드백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중요 전략 중 하나로써 자원이 적은 스타트업, 혹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회사들이 많이 채택하는 방법이다. 자원을 최소로 투입하여 높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가성비가 높은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 제품 기획-출시 사이클을 짧게 가져가 시장에 대응하기가 훨씬 유연해지기에 제품 생존율도 결국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이 전략은 빠른 실행 후 중간 점검들을 통해 최종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끝내 무언가를 완성했다면 세상에 0.000000000001만큼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영향력을 조금씩 양의 숫자로 바꿔가는 긴 과정이다.


인생 모든 게 확률 게임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성공률을 높인다기보다 확률 게임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공상(daydreaming)만 하다가 뒤쳐질 것인가? 과감히 시작하고 확실히 끝장을 내자.


"To finish first, you have to finish." - Murray Walker
“The reason that we start things is to finish them.” - Seth Godin
“Continuous improvement is better than delayed perfection." - Mark Twain


disclaimer: 위 도입부의 창세기 인용과 저자의 종교적 신념과는 관련이 없음을 알립니다.



essay by Jun Woo Lee

photo by Matt Benson, Jan Genge, 미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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