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b n Wrestle May 16. 2020

내 집에 원숭이가 산다

미루려는 나와 이성적인 나와의 아슬아슬한 성공 스토리

이번 글은 블로그 waitbutwhy의 <Why Procrastinators Procrastinate>과 <How to Beat Procrastination>을 요약/각색한 내용이며 아래 소개되는 그림의 출처는 wait but why입니다.




1972년 스탠퍼드 연구실에서 진행한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피실험자인 어린 친구들 앞에 맛있게 생긴 마시멜로를 놓았다. 바로 먹어도 되지만 참고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주겠다고 했다. 방 안에 혼자 남겨졌을 때 앞에 있는 마시멜로 한 개를 바로 먹느냐, 아니면 미래에 주어질 조금 더 많은 보상을 위해 지금 참느냐에 따라 이들 미래의 성공에 영향이 있다고 가정했다. 마시멜로를 바로 먹지 않고 기다린 친구들이 나중에 더 높은 학업 성과와 연봉, 그리고 체질량지수(BMI) 등을 얻었다고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피실험자 어린이들의 부모님 경제능력, 학업 능력들을 변수에서 배제하였기 때문에 반쪽짜리 연구였다. 그러나 이 실험이 전제한 가정은 분명했다. 눈 앞에 놓인 만족은 인간에게 너무나 유혹적이라는 것이다.


요즘따라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많다. 분명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고 모닝콜 시간을 바꾸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더 누워있고 싶다. 아침 명상을 하려는 습관 만들기에 벌써부터 적색경보가 울렸다.


데이터 리터러시 운동에 편승하기 위해 올해 4월부터 SQL과 데이터 마이닝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제 5월 중순이 넘어가는데, 미리 사놓은 전문 서적들 위로 인문학 책들이 쌓여있다.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한 해가 넘어갈 거 같다. 이게 다 미루는 습관 때문이다. 난 도대체 내 안의 누구에게 이렇게 연약한 존재인가!


블로그 why but why에서 계획 실행을 계속 미루고 핑곗거리를 일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재밌게 풀어놓았다. 블로그의 주인 Tim Urban이 쓴 이 글은 많이 회자되어 이미 익숙한 내용이겠지만 나는 매주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에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이 글에 대해 쓸 것이다(오늘은 너로 정했다!).


Tim이 말하길 계속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미루려는 자)의 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한다(철저히 비과학적이며 공상적이다). 자기 공명 영상법(MRI) 따위는 필요 없이 이들의 뇌 속을 들여다보니 이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출처: waitbutwhy


뇌 속에는 사람을 조종하는(?)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가 홀로 조타실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본인이 무슨 일을 맡았고 뭘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방해자가 없어 자신의 이성을 100% 믿을 수 있다.


이에 비해 미루려는 자의 뇌 속에는 하나가 더 있다고 한다. 바로 원숭이다.


출처: waitbutwhy


원숭이의 정식 종 명칭은 '즉각적 만족 원숭이'로, 이름이 시사하듯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 귀여운 원숭이와 함께 있는 조타실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데, 아주 자주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가 하는 일을 망치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것은 퇴근 후 잠들 때까지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넷플릭스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세워 놓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는 이 귀여운 원숭이가 밉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매일 출근 전 아침마다 5킬로 조깅을 할 계획이지만 그 날 피곤할 텐데 뭣하러 뛰냐고 애교를 부리는 이 원숭이를 이길 재간이 없다.


원숭이의 방해에 노출되다 보니 제대로 된 조종이 될 리가 없다. 이렇게 원숭에게 너무 많은 방해를 받게 되면 우리의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암흑 놀이동산에 빠지게 된다.


출처: waitbutwhy


우리 원숭이가 마냥 좋아하는 이 곳은 공포의 놀이공원이 아니다. 재밌는 것이 많지만 여기 있는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죄책감', '불안', '자기혐오'다. 놀이공원이지만 놀아선 안 되는 놀이공원인 것이다. 얻는 것도 없고 마음마저 불편한 이 곳을 나가야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원숭이는 그리 순순히 주인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들이 자력으로 암흑 놀이동산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암흑 동산에는 원숭이가 지릴 만큼 무서워하는 괴물이 살고 있는데, 바로 패닉 몬스터다.


출처: waitbutwhy


패닉 몬스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는데 쓴다. 하지만 그가 잠을 깨는 순간들이 있는데, 최종 마감일을 하루 남겨두었거나 동료나 대중에게 창피를 당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질 때 등 상상하기 싫은 결과들이 실제 일어날 수 있을 때 눈을 뜬다.


패닉 몬스터가 깊은 잠에서 깨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면 원숭이는 무서워 나무 위로 숨는다. 그렇게 돼야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가 조타실로 돌아와 오롯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패닉 몬스터가 잠에서 깰 때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렇게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Tim Urban은 미루려는 자들이 원숭이를 조련해야 할 이유 세 가지를 꼽았다.


1. 암흑 놀이동산은 즐겁지 않다.

이 곳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이 곳에 있는 일분일초의 시간이 아깝다.


2.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는 자기 능력의 50%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패닉 몬스터가 깨어날 때만을 기다리면 제 능력의 반도 쓸 수 없다. 잠재된 능력을 써 보지도 못해 경쟁에 뒤쳐지게 되고 결국 남는 것은 후회와 자기혐오뿐이다.


3.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외에는 성과가 없다.

미루려는 자라고 해서 모든 이들의 커리어가 퇴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회사 업무들만 어찌어찌해나갈 뿐 일 바깥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은 시작하지도 못한다. 패닉 몬스터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쉽게 잠에서 깨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마다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본다거나 자신의 이름을 딴 유화 작품을 그린다거나, 노후를 위한 집 도면을 설계하는 등 삶을 윤택하게 하는 활동들은 깊은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계속 미루기를 반복하다 보면 6개월, 혹은 6년 뒤에는 이룬 게 하나도 없다.




원숭이 제압하기 필승 전략


본인도 지독한 미루려는 자라고 하는 Tim Urban은 세 가지 원숭이 필승법을 소개했다.


1. 변화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 갖기

미뤄서 잘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굉장한 미루려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루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 그럼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이 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삶을 통제할 수 있음을 믿자.


2. 계획

미루려는 자들은 사실 계획하기 좋아한다. 문제는 이 계획들이 너무 장대하고 막연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계획이라는 것을 했을 때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착각을 한다. 듣기만 좋은 이러한 계획들은 원숭이만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성취감이 높을 것들과 중요한 것들을 상위 목록에 올리는 작업이다.


출처: Jab & Wrestle


그리고 우선순위 중 1~2개를 선정해 구체적 실행 가능한 계획을 촘촘하게 짠다. 아래는 내 RUNNING FITNESS 프로젝트 계획이다. 나는 유산소 뜀박질이 좋다.


출처: Jab & Wrestle


3. 하기


이제 실행한다. 세밀하게 계획을 했으니 한 발짝 한 발짝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계획상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참 쉽죠? 하나도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미루려는 자들의 성공 시나리오에는 원숭이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원숭이가 즉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다시 우릴 방해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매번 질 수만은 없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선 귀찮아도 노트북 뚜껑을 열어야 한다. 노후를 보내기 위한 멋진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삽을 떠야 한다. 계획은 실행의 어머니다.


출처: waitbutwhy


항상 처음이 어렵다


Tim Urban이 그린 이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간 원숭이의 농락으로 암흑 놀이동산에 머물렀던 우리가 패닉 몬스터의 등장 없이 행복 놀이동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둡고 침침한 숲을 지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숭이는 끝까지 암흑 놀이동산에 남기 위해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출처: waitbutwhy

이 숲의 반쯤 왔다면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자존감이 상승한다. 이때, 숲 속에서 바나나가 한 개씩 떨어진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원숭이는 바나나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 암흑 놀이동산으로 돌아가자고 보채지 않는다.






출처: waitbutwhy

이제 슬슬 행복 놀이동산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목적지가 보인다는 것은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우리 원숭이는 앞에 보이는 행복 놀이동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 또한 깊은 성취감을 선사해 줄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이는 마치 마라토너들이 골인 지점을 향해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것과 같으며 산봉우리 거점 탈환을 앞둔 기동대의 민첩한 작전 수행과도 다름이 없다.




행복 놀이동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출처: waitbutwhy

행복 놀이동산에서는 원숭이이성적인 의사 결정자가 한 팀으로서 성취감을 즐긴다. 어려운 일을 함께 해낸 동지애가 생겼기 때문일까,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고 계획 실행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저녁 식사도 잊을 만큼 깊은 몰입에 빠지게 되면 거기에서 나오는 쾌감이 이 둘을 감싼다. 하지만 잊지 말길, 원숭이의 기억력은 굉장히 낮아서 주인과 함께한 이 멋진 기억을 금방 잊는다. 월요일에 5킬로를 완주했지만 수요일에는 치킨으로 유혹하며 내 계획 실행을 언제든지 방해할 수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매일매일 첫 삽을 뜬다는 각오로 어두운 숲 길을 지나가야 한다. 우리의 인내와 자제력에 모든 것이 달렸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essay by Jun Woo Lee

photos and original blog post by Tim Urban of waitbutwh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