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 현남면에서 3일간의 기록
휴가 전까지 반드시 완료하리라 계획한 프로젝트를 끝마쳤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잔업까지 해치운 후 퇴근길에 올랐다. 마곡에서 서울역까지 와준 친구와 함께 해방촌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와 짐을 부랴부랴 싸기 시작했다. 가서 입으려고 했던 운동복들을 깜빡하고 세탁하지 못 한 바람에 급속으로 돌린 후 뜨끈한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도 여행 출발에 임박해 준비하는 악습관을 미처 퇴치하지 못했다. 새벽 2시가 되어 겨우 짐을 다 챙기고 잠에 들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양양행 아침 버스를 탔다. 양양을 거쳐 속초까지 가는 이 버스는 약 2시간 반 정도 걸려 나를 양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주었고, 아주 운이 좋게 12번 시내버스를 바로 잡아 탔다. 강원도 토박이 기사님의 화끈한 운전으로 난 금방 죽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순박한 사장님 커플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나무로 짜인 보드 보관함들이 길게 쭉 늘어져 거실과 안뜰로 이어지는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주었다.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는 기분 좋은 향이 났고 얼마 전 새로 만들었다는 샤워장은 매우 깔끔했다. 마침 남자 사장님이 서핑을 하러 바다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 사장님과 먼저 인사를 했다.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친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이 멋진 공간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왼쪽 페달이 없는 오래된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고 남자 사장님이 도착해 나를 반겨주었다. 이 아늑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난 이틀을 묵게 된다.
이 게스트하우스에 치즈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이 고양이는 주인 사장님들의 말엔 재빨리 반응하지만 낯선 이에겐 시큰둥하다. 이 동네도 여느 해변 도시처럼 길고양이가 많은데, 사장님에게 들어보니 치즈는 길고양이들과의 영역다툼에서 져 동네를 전전하다 지금 게스트하우스 주변까지 밀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온몸에 성한 데 한 곳 없이 온통 흉터 투성이었던 이 친구는 거친 털을 날리며 사료를 얻어먹고 가던 나그네 신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다리가 번개모양으로 휘어 절뚝절뚝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왔다. 심상치 않게 본 사장님 커플은 치즈를 강릉에 있는 동물 병원에 데려가 치료시켰고 이때부터 치즈는 이 곳에 눌러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수놈의 공격성과 영역 본능을 그대로 두면 이 친구가 제 명에 못 살거라 생각하셨는지 치즈를 중성화 수술을 시켰고 치즈는 이 게스트하우스의 마스코트가 되기로 했단다.
이날은 마침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여행자가 두 명 더 있었는데, 사장님의 제안으로 각자 2만 원씩 각출해 함께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오후 서핑을 마치고 들어와 샤워 후 고기 먹을 준비를 했다. 산속에 사는 서퍼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장님의 친구분은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라며 상추를 한 소쿠리 가지고 오셨다. 그는 키가 컸으며 벌겋게 익은 얼굴에 새까만 머리카락이 어깨에 살짝 닿는 장발의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고 그냥 가만히 앉아 고기를 기다리는 게 자기를 도와주는 것이라면서 멋쩍게 자리 주변을 서성거리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호탕하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각자 여행을 온 두 명은 매우 조용했다. 오히려 수줍음을 탄다고 느낄 정도로 내가 무슨 얘기를 건네면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곤 했다. 그중 A 씨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의 인연이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장님의 오랜 아는 동생이었다. 왼쪽 귓불에 작은 피어싱을 하고 희끗희끗한 머리와 수염을 기른 A 씨는 약 1년 만에 이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고 했다. 오히려 사장님보다 서핑을 시작한 시기는 더 빠르다고 하는 A 씨는 자신의 서핑 장비들을 게스트하우스에 보관하는 VIP 손님이었다. 그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한 살집을 가지고 있어 바로 다가가기 쉽지 않은 첫인상이었지만 웃을 때만큼은 그리 순진해 보일 수 없었다. 이제 예전처럼 타지 못 하겠다며 오늘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있었지만 그중의 반은 해변에 누워 잠만 잤다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A 씨는 말 수가 적을 뿐 아니라 굳이 나서서 대화 주제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날 저녁은 남자 사장님이 계속해서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고기를 다 먹은 우리는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노라 존스 음악과 함께 각자 준비한 술을 마시며 밤까지 취해갔다.
우리의 저녁 대화는 서핑으로 시작했다. 서핑을 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바다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A 씨보다 서핑을 시작한 시기는 조금 늦었지만 매일 타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세 가지 능력을 연마해야 하는데, 페달링, 균형 감각, 그리고 파도를 읽는 눈이 그것이라 했다. 본인은 나이도 있고 힘이 달려 페달링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강한 페달링이 필요한 숏 보드보다는 롱보드를 주로 타며, 약 1년 전부터 숏 보드를 조금씩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장님은 위 세 가지 능력을 레벨 업하듯 하나씩 쌓아가는 전천후 서퍼가 진정한 서퍼라고 얘기했다. 소위 탄다는 서퍼들을 보면 유독 페달링 힘이 좋거나 균형 감각이 탁월해 파도를 오래 탄다고 한다. 물론 하나의 능력이 두드러지면 다른 두 능력을 보완하겠지만 파도는 내 힘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혈기왕성한 서퍼보다는 노련미가 출중한 서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장님은 페달링이나 균형감각보다 좋은 파도를 읽을 눈을 집중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좋은 타이밍에서는 아주 적은 힘으로도 파도를 눌러 올라탈 수 있고 파도가 깨지기 전까지 더 오래 탈 수 있다고 했다. 두, 세 번째 오는 파도를 힘으로 눌러 잡아 멋지게 타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파도의 꼭짓점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얘기는 흘러 국내 3대 서핑 대회로 이어졌다. 여름 제주도 대회를 시작으로 부산에서 두 번째 대회가 곧이어 진행되고 가을에 양양에서 대회를 마친다고 한다. 이때야말로 바다에 오롯이 혼자 들어가 파도를 탈 수 있는 기회라 말하며 즐거워했다.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의 마음은 참으로 순수하다.
한국에서 처음 서핑을 하기 시작한 곳은 어디일까? 사장님과 사장님 친구분은 제주도가 근원지라고 했다. 제주도민인 미국 교포가 제주도에서 처음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그게 약 20년 전이라고 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부산에서 서퍼 1세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대중화된 것이다. A 씨가 서핑을 시작한 7년 전에는 인터넷에 서핑을 검색하면 만리포와 양양이 뜰 정도로 이 두 스팟은 이미 서퍼들의 오랜 고향이었다.
파도 어플을 통해 일반인들도 이제 좋은 파도가 언제 오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때에 어느 곳의 파도가 좋다는 프로 서퍼들끼리의 꿀 정보 공유는 이러한 어플이 등장하면서 무의미해졌다.
양양에서 서핑 샵을 하는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실제로 서핑을 즐기는데, 강습도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파도를 탈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있었다면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 5시쯤인데, 예전에는 이때쯤 가면 적어도 30분은 혼자 파도를 즐기며 당시 군부대 보초병들의 아침 교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어둑어둑할 때 나가도 벌써 두 세명이 바다에 나와있다니, 한국인의 첫 빠(?) 경쟁은 대단하다.
실제 바다에 나가 있을 때도 혼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렌탈 보드를 타는 초보들은 저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저 편에 있는 형형색색 자기 보드를 가진 무리와 구별되었다. 렌탈보드를 타는 나는 잘 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그쪽에서 기웃거렸다. 그 사람들은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갔다 올게!" 외치며 파도에 올라타곤 했다. 파도를 타기 위해 페달링을 시작하려는데 초보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앞에 있을 때 그들은 불편한 짜증의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위축되었고 괜히 미안했다. 동시에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장님과 사장님의 친구도 죽도해변은 더 이상 자기들 수준의 서퍼들이 편히 탈만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 옆 인구해변이 그나마 조금 없는 편이라고는 했지만 이미 이 주변에서 맘 편히 서핑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보드 렌탈과 강습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샵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초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가게 영업과 취미생활의 절대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인 것이다. "Surf or Die!"를 외치는 사장님들도 매일매일 행복한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파도가 아예 없는 날에 죽도를 찾은 커플이 서핑 강습을 하고 싶다고 오면 '오늘은 파도 없어서 못 타요~' 라 하지 않는다. 저 멀리서 여자 손님이 탄 보드를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면서 '업~!'이라 외치는 강사님의 파이팅 넘치는 구호가 들린다.
죽도에 자리잡기 전 사장님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건축을 전공했다는 사장님은 우연한 계기로 양양 죽도에서 놀러 와 서핑을 처음 시작했다. 그 후 무엇에 홀린 듯 서핑 샵에서 기숙하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A 씨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장님은 지금의 게스트하우스 자리에 세를 얻었다. 원래는 개인 작업실 공간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멋진 게스트하우스를 탄생시켰다. 건축학도의 실력을 120% 발휘하여 직접 게스트하우스를 디자인하였고 시공사의 견적이 부담돼 거의 모든 부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본인을 죽도 서퍼 2.5세대라고 칭한 사장님은 자신이 죽도에 정착할 때만 해도 4개 정도의 서프 샵만이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외부인들이 차린 서프 샵이 폭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해 지금의 상권이 자리 잡았다. 상권이라고는 하지만 동네가 작아 앞 차 번호판만 봐도 어느 가게 사장님인지 금방 알 정도라 하니 조밀 조밀하게 붙어있는 해변세권(?)이라고나 할까.
도보로 이동 가능한 밀집 상권이기에 바쁘지 않은 날엔 서로의 가게를 놀러 다니며 매상도 올려주며 친분을 쌓는다. 그날도 저녁 이후 친한 사장님의 바(Bar)에 가기로 했었다. 해가 지고 나서는 자리가 없을 정도의 핫플레이스 라 소개한 이 곳의 사장님은 얼마 전 집주인과 재계약을 했다고 한다. 세가 3배 올랐단다. 그래도 그 사장님은 갱신해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까지 키워놓은 가게를 세가 올랐다고 비울 수는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주인 할머니가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고 사장님 보고 나가라 하면 짐 싸야 한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여기서 양양군의 주요 서핑 스팟인 죽도, 인구, 동산, 남애 등에 대해 짚고 가야 한다. 이 해변들도 일반 해수욕장이지만 여타 해수욕장들과는 다르게 해수욕객들보다 서핑 여행객들이 우선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상권이 이렇게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상권의 토대를 만든 서퍼들은 어쨌든 세입자일 뿐이다. 이 곳 대부분의 사장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나이가 지긋한 토착민 집주인들이 언제 가겟세를 올릴지 모른다. 여기도 결국 홍대나 신사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사장님 친구의 말엔 뼈가 있었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님은 중심 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는 옛날 집들을 알아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젊은 사장님들이 이렇게 가게를 처분하고 안 쪽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나올 수 있는 거리까지 들어간다. 손으로 무에서 유를 일군 사람들은 돈 냄새를 맡은 집주인들에 의해 더 이상 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야 하는 상황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왜 돈을 못 벌지?' 하고 장난처럼 얘기했던 여자 사장님의 말이 사뭇 무섭다.
사장님이 지금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기 전 잠깐 기숙하며 신세를 진 서프 샵 사장님은 게스트하우스 옆 건물을 사면서 이 곳에 몇 안 되는 서퍼 건물주가 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도 주위에서 만류할 정도로 높은 호가로 산 그 건물에는 핫한 서핑 샵과 음식점이 들어섰고 유명 편의점이 활발히 영업 중이다. 그 사장님은 이제 처지가 180도 바뀐 건물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자본도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인구 해변으로 가는 목 좋은 곳에 인구 호텔 공사가 한창이다. 죽도섬 근처에는 한화 라이프 플러스가 짓고 있는 호텔앤드리조트도 주황색 가림막을 치고 공사 중이다. 이 두 건물이 완공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두 곳 모두 4층 높이 이상으로 지어질 것 같은데, 기업 자본의 숙박시설들이 이 곳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까 걱정이 된다. 게스트하우스와 서프 샵을 함께 운영하는 가게들에 분명 타격이 있을 것이다.
웻수트만 있으면 수온이 차가워도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비수기는 분명히 있다. 겨울은 서핑 손님이 뚝 끊긴다. 그래서 겨울에는 많은 서프 샵들이 VIP 멤버십으로 운영한다. 이 곳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몇 없는 손님들을 위해 겨울 내내 가게를 지키기는 않는다. 열쇠를 숨겨놓고 예약 손님에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자율 숙박 영업(?)을 하고 있다. 여름 동안 쌓아온 서퍼와 서핑 샵 사장님들 간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양양 서프 샵 사장님들은 여름 한철 영업을 하고 겨울에는 스노보드 샵을 하거나 따뜻한 나라로 간다고 한다. 겨울이 오면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장기 휴가를 떠난다. 사장님도 주로 발리로 여행을 떠난다는데, 올해 겨울에는 가까운 시공사 사장님을 통해 알바 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를 말할 때 흔히 낭만을 떠올리고 운신의 자유로움을 얘기한다. 한 철 장사라는 말은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여름 반짝 벌어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사장님은 많이 없다. 예전에는 베짱이 라이프가 가능했다 해도 이제는 진짜 얼어 죽는다. 특히 올 해는 더욱 쉽지 않았기에.
아침 5시면 해가 높게 뜬다. 양양 밤바다를 벗 삼아 즐거운 주말을 보낸 젊은이들이 떠나간 뒤 월요일 이른 아침은 등이 굽은 노인들이 해변 자리의 잔해를 천천히 줍고 다닌다.
거리도 한산하다. 주말 관광객은 빠지고 공사장 인부들만 남아 굴착기 소리만 요란하다. 웬만한 서프 샵과 카페는 문을 닫았고 이 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곳은 건설 노동자들이 점심을 해결할 작은 백반 정식 식당뿐이다. 카페인이 부족했던 나는 터벅터벅 걷던 중 통창으로 된 멋진 카페를 발견했다. 인구 해변가에 자리한 이 카페의 사장님은 그랬다. 이 곳은 강릉이나 속초와는 다르다고, 지금의 양양은 이렇다.
essay by Jun Woo Lee
photo by Jun Wo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