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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Nov 08. 2020

나란 사람 돈 쓰는 사람

호모 콘수무스, 소비하는 인간

나란 사람  쓰는 사람

‘포노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같이 인간을 뜻하는 라틴어 ‘Homo’ 뒤에 현대인의 특질이 붙어 통용된다. ‘지혜를 가진 인간’이란 뜻을 갖고 실제 학명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있다면,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와 같은 단어는 고고학 연구와 과학적 인정을 통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닌 인류 역사 발전에 동반하는 사회행동학적 성격(trait)을 반영하기 위해 생산되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증명된 용어라기보다 인간의 행동 성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앞서 말한 호모 콘수무스는 ‘소비하는 인간’, 혹은 ‘대량 소비 성향의 인간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에 따른 소비 패턴에 대한 인간 행동을 조명한다. 콘수메리쿠스(Homo Consumericus), 또는 호모 콘수멘스(Homo Consumens)라는 용어도 맥락을 같이 한다. 사회정신분석학자나 철학자들이 이러한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런 단어는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이런 용어도 대중적으로 소비가 된다, 아이러니하다!

현대 대중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 심리에 대한 래퍼런스로 Gad Saad 박사의 연구가 많이 언급된다. 이 분은 다윈의 진화론 관점에서 인간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데, 지역, 인종, 문화 등 지엽적 특징 위에 보편적인 변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분이 실제 수행한 실험 결과들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본능이 많은 원인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맞건 틀리건 이 분의 연구 주장이 그렇다.

 소비 활동의 사춘기

나는 내 소비 활동에 대해 굉장히 늦게 자각했다. 일하시는 아버지와 주로 ‘집사람’ 역할을 맡으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오며 소비에 대한 특별한 교육 없이 자랐다. 어려서 가계 사정은 몰랐지만, 돈 쓰는 행위를 멀리하고 과소비는 큰일 나는 죄라고 배운 것 같다. 주류 사회의 교육 수준까지 받도록 지원하셨기 때문에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극도로 방어적인 환경이었다. 매우 검소하고 절약에 미덕을 두신 두 분 덕분에 우리 형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몇 없는 재물에 대한 생각과 조심성이 너무 커진다는 게 단점이랄까, 아무튼 돈을 쓰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교우관계를 쌓고, 또 특별한 사람과 오래 교제하면서 나의 씀씀이와 소비 성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원 넘게 나오는 커피 값에 선뜻 신용카드를 내미는 내 모습에 놀란다. 한 달 지출내역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지출 건이 너무 몇 개 없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소비하는 내 모습이 나다운가 하는 물음이 종종 든다. 직장에서 돈도 벌겠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도 아니겠다, 아주 내 세상이 따로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가져본 나이키 신발 때문인지, 돈만 생기면 나이키 신발을 사고 싶은 것은 어릴 때 가진 결핍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인정하면 Gad Saad 박사를 인정하는 꼴인가?).

소비 관성의 법칙

돈을 쓰는 건 즐겁다. 내 돈과 원하는 가치를 교환하여 느끼는 효용이 클수록 짜릿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짜릿한 것을 굳이 멈출 이유를 주지 않는다. 궁극적인 결과와 무관하게 좋으면 더 하고 싶은 게 우리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아킬레스 건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습관화한 나의 소비 패턴을 끊기가 너무 어렵다. 돈이라는 재화를 (-)하는 것을 포함해, 시간을 소비하고, 나의 감정을 소비하고, 나의 정신 상태를 소비하는 일에는 궁극적으로 심리적인 원인이 있다.


My Money, My Choice

서양 격언 중 ‘You are what you eat’ 이란 말이 있다. 뭘 먹느냐가 지금 너의 몸 상태를 만든다는 말처럼, 어디에 소비하는지가 나를 간접적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소비는 나의 선택이다.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왜 이게 필요한지, 왜 이것에 자동 결제를 걸어놔야 하는지, 왜 A 대신 B를 소비해야 하는지, 아예 안 써도 되는데 왜 소비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돈 쓰는 일에 갓 재미를 붙인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확실히 돈은 쓰는 사람이 쓸 줄 안다. <돈의 속성>을 쓴 김승호 회장은 돈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좋은 돈은 주변에 자기처럼 좋은 돈을 오래 두고 싶어 하고 나쁜 돈은 있는 돈도 데리고 나간다고 한다. 인생이 죽을 때까지 돈 쓰다가 가는 것이라면 어떻게 써야 할지 매일매일 고민하고 싶다.

돈을 잘 써 본 사람이 잘 쓸 줄 안다는 말은 빈 말이다, 적어도 각자가 기록을 통해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3.60 프로젝트>는 매일 3줄씩 60일간 기록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매일 적는 세 줄에는 그 날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소비했는지 그대로 남아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의 소비 궤적을 알 수 없다. 우리는 호모 콘수무스다. 적어도 기록하는 호모 콘수무스가 되자.

What is Project 3.60? : 프로젝트 3.60은 자각하는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매일 세 줄을 기록하면서 자기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며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공동의 노력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자세히 보기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Anastasiia Rozum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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