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사라진 도널드 트럼프
지난주엔 게임이나 영화에서만 나올법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미국 워싱턴 D.C. 에 있는 의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다. 세계의 패권을 진 미국의 의회가 극우주의자들과 폭력적인 무리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생각나는데, 1917년 10월에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군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겨울 궁전을 습격한 일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 두 국가가 나란히 비슷한 일을 역사에 담게 되었다. 피를 본 정치 사건으로 후세에 회자되겠지만, 그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침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폭동을 스스로 생중계했다는 점이다. 정말 기상천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의 개표 조작을 주장하며 끝까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트럼프였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나를 위해 이러한 불의에 싸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라다운 나라에 살 수 없을 것(You're not going to have a country anymore)이라고 말하며 지지자들이 미 의회로 향하도록 꽤나 명료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트럼프는 디지털로 흥했고 디지털로 망했다. 트럼프는 선거 시절부터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가진 엄청난 힘을 알고 있었다. 임기 1년 차에 Fox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솔직히 소셜 미디어가 없었다면 아마 당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직접 인정할 정도였으니. 그는 8천8백만 명의 팔로워 베이스를 가진 트위터 헤비유저다. 그의 트윗은 곧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문이었다. Trump Twitter Archive에서 트럼프가 쓴 트윗의 개수를 집계했는데, 2009년 가입을 시작으로 얼마 전 계정이 정지될 때까지 쓴 트윗은 5만 6천 개가 넘는다. 마지막 4년 차 임기 때만 하루 30개, 총 만 2천 개 이상의 트윗을 쏘았다! 이 트윗들은 전파되고 재전파되어 전 세계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핸드폰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루에 30개면 긴가민가했던 사람들이 충분히 설득당할 수 있고, 동조하던 사람들은 그만큼 더욱 확고해질 수 있는 집요한 횟수다.
집권 중 그가 남긴 말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갈등과 변동성을 증폭시켰는가?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를 이용하여 왜곡된 주관을 주입시켜 얼마나 많은 선동과 차별, 그리고 극단주의자들을 양성했는가? 발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지만 개인 소셜 플랫폼을 가진 폭군은 이래서 위험하다. 그의 손가락 몇 마디 움직임으로 세계 각지에서 증오 범죄를 모의하게 만들고 대학살을 조장했다. 만약 트럼프가 극단적 채식주의자였다면 아마 지금쯤 미국 육가공 업체 대부분이 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 CEO 잭 도시가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했다. 본인의 정치적 커리어에 로켓을 달아주었던 믿던 트위터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이에 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도 증오와 차별 콘텐츠의 대대적 삭제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된 이상 트럼프가 우익 성향의 소셜 플랫폼 앱 <Parler>로 넘어가 다시금 존재감을 떨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아마존 웹 서비시즈(AWS)에서 그 앱의 호스팅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도 그 앱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트럼프의 계정이 사라지니 한껏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지 않은가? 디지털 생태계에서 자신의 계정이 차단되는 것은 곧 가상 세계에서의 사망 선고와 같다.
이는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계정 하나 지우는 게 마치 사람 하나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효과를 주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클릭 한 번으로 누구의 인생에서 사라질 수 있다(잊힐 수 있다).
이를 최근 경험한 나로서는 트럼프 트위터 계정 정지 소식이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들의 소통이 얼마나 일방통행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귀를 닫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 디지털 기술이 정말 온전한 소통 경험을 제공한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물음에 아직 회의적이다. 보통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그러한 한계를 해결해주는 것 같아 보였지만, 사람 간의 연결을 철저히, 그리고 영원히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오해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조차 상대방으로부터 박탈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디지털 도구를 다룰 줄 아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모두 '마음의 눈'이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의 눈에 항상 가까이 보이는 사람은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누구의 이야기는 흥미롭기 때문에 계속 듣고 싶고, 또 누구의 말엔 독성이 강해 언팔을 하고 싶다. 이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뭐라 못 할 권리다. 하지만 점점 팔로잉-언팔로잉(선호도)이 편협해지고 그로 인해 예측이 쉬워지는 하나의 단순한 디지털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 두렵다.
마크 주커버그는 과거 페이스북의 유저 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쓰인 것을 방조한 혐의로 오랫동안 청문회 자리에 서야 했다. 트럼프 계정 정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의 주가는 6.4% 하락했다. 그렇기에 이번 트위터를 포함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등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들이 나름의 해독(디톡스) 조치를 내린 결단에 대해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에어비엔비는 곧 있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있을 워싱턴 D.C. 에 있는 모든 예약을 막아버렸다. 취임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위험 요소를 제거함이다. 이미 예약한 사람에겐 100% 환불을, 호스트에겐 에어비엔비가 보상했다(주가는 5.7% 상승했다).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는 소셜 플랫폼의 유저 활성화 알고리즘이 정치 혹은 사상적 양극화를 야기한다는 중대한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들이 금전적 희생도 감수하면서 공공의 선을 지키려는 결단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아예 안 쓰는 것 외엔 딱히 답이 없기 때문이다.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jeremy bishop & mayer mag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