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결정은 내가 잘 아니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
G.O.A.T, 윌트 체임벌린
NBA를 보는 팬이라면 윌트 체임벌린 선수를 최소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키 216cm의 체임벌린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현역 센터 포지션 선수로 활약했다. 큰 키를 가진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몸동작이 시그니쳐였던 그는 현역때 경기당 평균 33점을 득점하는 선수였다. 역대 NBA 평균 득점 리더보드로는 2위지만(1위는 당연히 마이클 조던 것) 센터 포지션을 감안하면 경기당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준 선수다. 특히 62년 시즌에서는 경기당 평균 득점이 50점이 넘었는데,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뛸 때 뉴욕 닉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100점을 혼자 넣은 선수였다(야투 36개, 자유투 28개). 바로 뒤엔 코비 브라이언트가 2006년 1월 토론토를 상대로 넣은 81점이다.
당시 농구의 신으로 군림하며 독보적인 기록을 갈아치운 윌트 체임벌린에게도 한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자유투 성공률이었다. 그의 자유투 성공률은 40%대에 불과했다. 당시 리그 자유투 평균 성공률이 70%가 넘은 것에 비해 그에겐 꽤나 큰 약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체임벌린은 경기에서 자유투를 얻어내면 일반적인 슛폼이 아닌, ‘granny shot’이라 불리는 언더핸드 폼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자유투 방법을 바꾸자마자 그의 자유투 성공률은 거의 60%까지 올라간다. 한 경기 100점이란 대기록을 쓴 날에도 이 폼을 사용해 자유투 성공률 87.5%를 만들어냈다. 테스토스테론이 불끈거리는 체임벌린이 ‘할매 샷’, 혹은 ‘기지배 샷’으로 불리는 이 슛 폼임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40%에서 87.5%는 단순히 자유투 100개를 던지면 단시간에 얻을 성과일까? 던지는 방법을 바꾼게 결정적이었다. 2배가 넘는 성과를 낸 것은 슛 폼을 바꾸겠다는 그의 결정이었고, 그건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다.
만약 남은 현역 선수 생활동안 계속해서 이 폼을 고수했었다면 그는 아마 마이클 조던의 경기당 기록을 이미 앞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경기에서 100점을 넣은 역사를 쓴 날을 기점으로 다시 이마에서 쏘는 방법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자유투 성공률을 반토막 냈고 자유투엔 영 승산 없는 선수로 되돌아왔다. 선수로서 치명적인 악수를 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분명 자기도 폼은 이상해 보여도 자유투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팬들도 그런 그를 응원했을 것이다. 나중에 체임벌린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무릎에서 위로 올리는 자유투 폼은 기지배 같고 바보 같아 보인다 생각했다. 리그에서 Rick Barry와 같이 몇 선수들이 이 폼으로 자유투를 쏘는 걸 알고 있었고, 또 내 결정이 잘못됐다고도 생각하지만 난 그냥 더 이상 그렇게 못 쏘겠더라.”
그가 자서전에서 언급했던 Rick Barry는 스몰 포워드로 뛴 또 다른 NBA 명예의 전당 선수다. 체임벌린과 많은 해를 리그에서 만났던 선수였으며, 언더핸드 스로우의 대명사가 된 선수다. 통산 경기에서 평균 약 89.3%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한 이 선수는 모양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방법을 고수한 덕에 당시 리그에서 역사상 가장 높은 자유투 성공률을 보유한 선수로 은퇴했다.
집단행동의 역치 모델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학 교수 Mark Granovetter가 쓴 논문 <The Threshold Model of Collective Behavior>을 보면 왜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성격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하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저자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한다. 평소라면 법 잘 지키고 조용히 집에 있을 사람들이 왜 무력시위에 참여하면 깨거나 부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그는 사람별로 주변인들의 행동을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반응하는 역치가 다르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역치가 다르기에 위에서 낮은 역치에서 높은 역치를 가진 사람들 순으로 행동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내가 A라는 행동을 하게 만들려면 그 A를 나보다 먼저 해야 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이 숫자가 나의 역치가 된다. 예를 들면 내가 네덜란드로 이민을 결정하도록 만들려면 내 주위에 n명의 네덜란드 이민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이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 사람이 0명(역치가 최소인)인 사람이 먼저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역치가 1명인 사람들이 그걸 보고 행동하고, n명의 행동을 본 n명이 비슷한 행동을 하는 식이다. 어떤 사회 환경에 처해있다보면 주변 집단들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한 나의 역치에 따라 내 신념에 크게 상관없이, 또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나쁜(윤리적/경제적/사회적/개인적 모두 포함)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Wasn't typical, but it was effective.”
위의 논문이 주장하는 모델을 윌트 체임벌린이 내린 결정에 적용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은 이마에서 쏘는 ‘일반적인’ 슛폼을 가지고 있었고 언더핸드 폼은 놀림감이었다(실용성이 증명되었는데도). 그는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기집애같이 보이기 싫었다. 그는 분명 언더핸드 폼이 자신의 기록을 위한 최선의 결정임을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peer pressure 라든지 스포츠 언론들의 입을 크게 의식한 것이다. 즉 체임벌린의 집단행동 역치가 높았다. 당시에 언더핸드 스로우 슈터가 더 많았거나 리그 절반의 선수들이 무릎 아래로 자유투를 쐈으면 달랐을까? 그렇다면 Rick Barry는? Rick Barry는 중학생 때부터 자유투를 그렇게 쐈다. 주변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당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다수를 의식하는 것보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경기 능력 향상이었다. 그는 체임벌린에 비해 굉장히 낮은 역치를 가졌다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더 실용적인 방법을 고수하기 위해 같은 방법을 쓰는 선수들이 주변에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쁜 결정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나쁜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거나 비정상적인 의지가 원인이라 생각했다. 이젠 주변에서 들어오는 압박과 나와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들이 내 결정 실수에 큰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특히 인생 대소사 결정이 많다. 직업을 결정할 때, 청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지금 집을 살까 말까, 유학을 갈까 말까, 외국에서 커리어를 이어가 볼까 말까, 심지어 자살도.
우린 스스로 양질의 정보를 찾고 각자의 최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주변 대다수에게 인정을 받기보다 나에게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좋은 결정을 많이 내리기 위해서 나의 고독함을 이해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심리적 훈련이 필수다. Best advice is no advice. Take your own advice. Practice What You Preach
같은 루틴 안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광기에 가깝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객관적인 성장 지표를 발견했음에도 다시 예전의 편한 방법으로 회기 하는 결정도 결국 광기가 아닐까. 유해했던 관계를 청산하고도 비슷한 성향의 파트너를 만나는 것, 편안했던 과거의 나에 머무는 모습. 우리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을 때 꽤나 많은 부분이 어제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같은 전제하에, 별 다를 바 없는 설정으로 아예 새로운 해결책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본다.
출처: The Chamberlain Effect: Why We Make Bad Decisions, Even When We Know Better
논문: 링크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The Olympians, Qu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