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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Feb 28. 2021

제 꼬임에 빠지는 법

적대심을 갖고 세상에 역행하기

“인생의 꼬임은 단순한 실수처럼 시작한다.”


제 꼬임에 빠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적대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공격적인 상태에서 인식하는 세상과 덜 공격적인 상태에서 인식하는 세상은 다르다고 한다. 어떤 감정으로 예민한 상태에선 집중해서 볼 것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공격적인 사고가 강화되면 나를 향한 외부의 모든 에너지에 자극되어 어떻게든 반응하게 된다. 눈 앞의 상황이 과대 해석되어 현상을 돌파할 홧김의 결정을 내리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삼국지에서 여포나 장비 같은 다혈질의 장수들을 상대할 때 적군은 왜 도발 같은 심리 작전을 이용했는지 생각해보자. 피로 얼룩질 전쟁터는 공격성을 드러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군졸을 지휘하는 장수의 마음에 평정이 없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싸움에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쪽은 가장 이성적이고 환경에 감정을 싣지 않는 쪽이다. 적이 스스로 꼬임에 빠지게 하는 것이 자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책 중의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죽고 죽이는 전쟁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 속에 섞여 나만의 세상을 완성하는 과업을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상반되는 인생관이다. 공격성은 숙주로 삼은 생명을 단명시킨다. 분노와 연관된 감정들은 우리 몸에 큰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독을 만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을 적대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매사가 피곤하다. 철인 황제로 불렸던 로마 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부의 환경은 나에게 아무 관심 없기 때문이다.” 난세에서 로마를 집권한 황제이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주변 환경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공격성을 경계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력에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이기려 드러봤자 열불만 나는 게임이다. 비난 분노뿐 아니라 기쁨, 슬픔 등 모든 감정이 마찬가지다. 우리 삶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지각을 가진 것들이 아니다, 사사롭게 받아들일게 하나도 없다.


나는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 같은 생활관을 쓴 입대 동기가 그랬다. 나와 같은 대학 출신에 아는 친구도 겹치는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군생활에서 나의 존재가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군생활 중 반목할 이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나의 잠재적인 위협으로 항상 불안해했던,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인간이었다.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 으르렁거렸고, 나를 자극하기 위해 스스로의 꼬임에 빠진 사람이었다. 지금에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돌이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로 인해 굉장히 피곤했다. 문제는 피해 의식으로 당한 피해자들은 영문을 모른다는 점이다.


자기 미래를 꼬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순리에 역행하려 할 때이다.


생긴 대로 살라는 순종적인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얼핏 들릴 수 있지만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은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한답시고 무리한 방법을 행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 상황은 네가 겪은 상황과는 다르니까.. 또 나는 너보다 상황 판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하니까.. 여기서 이미 스스로의 꼬임에 빠진 것이다. 세상이 작동하는 큰 힘을 나의 의지로 대항하려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스로의 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었네요ㅎㅎ”. 이렇게 이미 일어난 일들을 깔끔하고 단순하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당위적인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당위적인 사고(should thinking)는 ‘나는 당연히 ~ 해야 한다’ 거나 ‘타인은 당연히 ~해야 한다’ 거나, 혹은 ‘세상은 이래야 한다’라는 왜곡된 기대심리에 기반한 강박증세를 말하는 개념이다. 이 사고방식도 어찌 보면 세상의 순리에 역행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상황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잘 못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애초에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걷는 것이 순리이자 용기 있는 행동일 수 있다. 항상 부딪히는 것이 삶 자체는 아닐 것이다. 처음엔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엔 괜찮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할 때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지만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더욱 인정하기 싫은 조언이 있다. 또 지금은 받아들이기 편하지만 곱씹어 보면 나중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 조언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듣겠는가?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으로부터 내게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난 이걸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알량한 머릿속 계산법은 배려를 배려 그대로, 이익을 이익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내 마음은 나에게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에 대비한답시고 내린 내 결정은 오히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려움을 스스로 자초했다. 쉬운 일을 한 번 더 꼬은 것이다. 감사하게도 결국 잘 풀렸지만(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ㅎㅎ) 나의 직관을 믿어야 할 때는 내 마음의 손을 확실히 들어줘야 한다. 얄팍한 계산은 내 앞 길만 꼬이게 만들 수 있다.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Varvara Grab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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