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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08. 2021

가질까? 말까?

줄어드는 시대의 소유 철학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이 지났다. 확실히 아침 해가 포근해졌음을 느낀다. 외출할 때 걸쳐야 할 옷가지 수도 줄고, 또 가벼워졌다. ‘봄’이라는 글자가 한껏 움츠러들었던 우리에게 새로 다가올 미지의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갖게 한다.


올해는 서울에서 산 지 만 10년째 되는 해다. 새벽 밤하늘을 올려 보며 홀로 고민을 나누었던 많은 밤들이 떠오른다. 20대의 나에게 이 도시는 가능성 자체였다. 도시의 야경과 청년들로 붐비는 골목은 지금보다 훗 날의 희망을 왜곡시켜 보여주었다. 주머니에 든 몇 푼의 돈은 나중에 많이 벌면 될 정도의 사소한 문제였다.


한국 나이로 3호선에 접어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가끔 실감한다. 막역한 관계 사이에서도 항상 햇빛을 받지 못하는 나만의 그늘은 언제나 거기에 존재한다. 남들이 유약한 내 바운더리를 침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타인에 대한 진정 어린 관심이 아닌 비교 대상으로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는 않았나. 몇십, 몇 백, 몇 천, 그리고 억 단위의 가격들이 대수롭지 않게 내 입에서 오르내린다. 살아가며 여기저기 붙는 가격표에 눈길이 먼저 간다.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고. 삶은 저렴하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은 내게 여전히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다. 말 한마디 필요 없이 내 감수성을 교란시키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기숙사에서 보낼 수 있었다. 첫 독립생활에 신이 난 나머지 연필보다 술잔을 들어 올리는 일이 훨씬 많았기에 난 그 학기에 바로 기숙사에서 쫓겨났고, 급하게 학교 주변 고시텔을 계약했다. 여전히 그날도 친구들과 술을 거하게 마시고는 한 친구를 우리 집에 재운답시고 데려왔다. 고시텔인데 +1 명을 재울 곳이 어디 있었겠느냐마는 당시 스무 살 남자들에게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는 크기는 주거 공간의 머스트-해브(must-have)는 아니었다. 내 고시텔 방문을 연 내 친구는 내 집(?)이 닭장이라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와 참으로 멋진 학창 시절의 낭만들을 나눴다.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낑겨대는 삶에 대해서도 몰랐으면서, 그저 같이 킥킥거리며 웃어넘기면 될 때였다.


10년을 빨리 감기 해서, 어젯밤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천장 너머 내가 모르는 사람이 누워있다. 10년을 아등바등 살았지만 결국 조금 넓은 닭장 신세를 면치 못 했구나!


얼마 전 기사 하나를 읽었다. 서울에 사는 인구가 32년 만에 천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30년이 넘도록 이 곳에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니. 서울 면적은 605 제곱 킬로미터니까 평수로 약 183,000,000 평 정도라고 쳤을 때, 서울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약 18평 정도를 공평하게 나눠 쓰는 셈이다. 도시의 공용 면적이 그중 대부분임을 생각해보면 두 평이 조금 넘는 집에 사는 사람부터 백 평의 집에 사는 사람까지 있으니, 서울 하늘 아래 다양한 평수의 삶이 있다.


공간은 우리가 주변과 재화를 인식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거 공간은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포함해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가.


인간은 개척 시대부터 주인 없던 땅에 정착해 이름을 붙이고 소유를 주장해왔다. 인류의 삶은 뺏음과 뺏김의 역사였다. 있던 것들 안에서 투쟁해왔다. 산업혁명 이후의 도시 사회에서는 공간 소유가 지금보다 쉬웠다. 공간의 안전이 확보되니 자식을 그만큼 낳아도 공간상에 제약이 크게 없었다. 무엇보다 노동 소득으로도 재화의 소유가 어렵지 않은 시대였다. 가장 큰 자산인 집을 소유하고 나서부터는 보유 시점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자동차와 같은 다른 상징적인 재화들도 사서 갖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높지도 않았다. 공유의 개념이 거의 없을 당시에는 소유 외엔 선택지가 없었긴 했다. 성장의 시대에서는 다들 있는 건 나도 있어야 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적 심리가 컸다면, 이제는 JOMO(Joy of Missing Out) 심리가 나의 최대 효용을 위한 중심에 있다.


인구와 도시의 성장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 하나의 성장이 다른 성장을 촉진하는 식이다. 인프라가 확충되고 도시 경제와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함께 증가하던 인구였지만, 무제한적으로 늘어날 순 없었다. 삶의 질 측면에서 하방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어제 소유하던 것들이 오늘의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유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의 총량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했고, 모두 나와 비슷한 재화를 소유하게 된다면 평균 효용은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모두 덜 행복하게 될 것이다. 소유욕은 안전에서 시작되었고, 안전이 확보되니 남 집 마당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심리적 경쟁심(사회적 욕구)이 생겼고 지금은 굳이 마당 자체가 내게 꼭 필요한지 고민하게 되었다. 미래에는 인간 생활의 궁극적인 무소유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서울 경기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에는 일할 청년이 점점 줄어든다. 전원생활보다 도시 생활이 당연히 편하기 때문에 앞으로 전 세계 도시권으로 인구가 계속 유입될 것은 확실하다. 서울시 인구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인구 성장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의 인구 성장률 추세를 보면 2023년쯤부터 마이너스 성장률로 돌아설 것이고 한 번 더 인구 쇼크를 겪게 되면 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될 것이다.


생선 뼈에 붙은 살을 싹싹 발라 먹듯 자투리 땅처럼 보이는 대지에 오피스텔이 올라선다. 저 공간은 누가 소유할까? 소유가 짐이 되는 시대는 이미 시작했다. 우린 이미 미래의 자식들이 짐으로 느껴지는 사회상을 목격한다. 줄어드는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pawel czerwinski, vlado paun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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