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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23. 2021

중력이 그린 무지개

LH 직원의 블라인드 글과 트렌드 분석

자취궤적


내가 지금 하는 그 자취(自炊) 말고, 물리학에서의 용어 ‘자취’는 위치, 장소를 뜻하는 loc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즉 어떤 것이 지나간 자리를 의미한다. 반면에 궤적(Trajectory)도 이동 중인 물체가 연속적으로 지나간 점들을 연결한 공간상의 선이라 정의된다.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서 운동하는 점이나 선이 그리는 도형. 도형은 점, 선, 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두 단어는 서로 궤를 같이 한다. 기하학에서의 궤적이란 특정한 필요충분조건에 들어맞는 모든 점(정점)들의 집합이다.


LH 직원들의 개발지역 땅 투기 의혹이 실제로 밝혀지며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투기 행위를 한 직원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조직 자체를 발본색원해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국민을 위해,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 믿었던 공기업의 배신이라는 사실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힘을 쑥 빠지게 만든 작은 공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 LH 직원이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었다.


그 직원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정당하지는 않지만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동은 문제시된 적 없이 계속 있던 내부 관습이며, 오히려 내부 직원들에 대한 혜택이자 복지라 인식되어왔다. 많이 알고 있는 우리 조직이 우월한 조직이며, 이 사건을 통해 외부인들이 갖는 반응은 질투, 혹은 단순히 돈을 못 번다는 배아픔이다.


이 문제의 글은 LH라는 조직이 그동안 한국 사회와 경제에서 어떠한 자취를 남겼으며 또 어떤 궤적을 그리며 존재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증언은 그 궤적 내 하나의 큰 점을 보여준 사례다. 궤적 안의 점들은 같은 특성을 공유하므로 이 점들을 이어본다면 이 조직의 과거사가 어땠는지 유추해볼 수 있고 앞으로 그대로 두었을 때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측해볼 수 있다.


중력이 그린 무지개를 잇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는 궤적을 그리며 세상에 존재하다 스러진다. 다시 한번 궤적은 여러 점들이 연결된 선분 혹은 도형이다. 스타트업을 로켓이라 부르는 이유도 추진력을 가진 발사체로서 포물선(궤적)을 그리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트렌드도 궤적의 형태를 띈다고도 확대해 이해할 수 있다. 트렌드라는 궤적 안에는 무수한 점들이 현상으로 일어난다. 정적인 값인 이 데이터 포인트들을 함께 모아 분석해보면 다음 점의 벡터 값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왼쪽: 회사의 라이프 사이클 그래프 / 오른쪽: 발사체의 이동 궤적 그래프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에서 Benoit Blanc 형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Gravity’s Rainbow... It describes the path of a projectile determined by natural law. Et voila, my method. I observe the facts without biases of the head or heart. I determine the arc’s path, stroll leisurely to its terminus and the truth falls at my feet.”


자연법칙인 중력의 힘을 받는 포물체가 그리는 궤적의 모습을 중력이 그린 무지개(또는 중력의 무지개)라고 표현했다. 나열된 팩트(데이터 포인트)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 궤적 혹은 트렌드가 그리는 호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력이 그린 무지개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무지개의 저편에 다다르고 발 밑에 떨어진 진실을 마주하리니.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Ana Cr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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