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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30. 2021

문을 여시오~!

[몬스터 주식회사]와 문 여는 법

자고로 인간은 주기적으로 디즈니 영화를 시청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오메가 3을 먹고 홍삼액을 섭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디즈니 영화가 가진 효능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10대 때 본 감흥과 30대에 느낀 기분이 다른 것처럼, 디즈니 영화는 세대를 관통하는 영양분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몬스터 주식회사> 영화가 처음 개봉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어린아이들이 갖는 공포심은 몬스터 세계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쓰인다.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몬스터 주식회사 비명 소리 수집 부서 직원들은 밤마다 아이들 방에 들어가 아이를 놀래켜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회사는 아이방의 문과 똑같이 생긴 문짝을 만들어 인간 세계의 아이방으로 통하는 포탈로 삼는다. 주인공인 설리번과 와죠스키는 수십 개의 문을 열어가며 악당의 손아귀에서 Boo를 구해내 다시 아이의 방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이야기다.


Boo의 문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문들이 재밌는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명 소리 수집 담당 직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비명 에너지 양을 맞추기 위해 주어진 문을 묵묵히 열고 과업을 수행한다. 야망이 넘치는 직원은 게걸스럽게 문을 열며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수집한다. 이들에게 문이란 고용의 유지, 즉 생존의 대상이 되며 문을 여는 행위는 각오에 충만한 직업적 의무감이다. 또한 문은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통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빨간 불이 들어와 활성화가 된 문들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공간에 입장하고, 또 다른 문을 통해 나올 수 있다. 문은 곧 또 다른 문으로 이어진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구간은 악당이 도망치는 주인공 무리를 쫒는 ‘Door Chase’ 장면이다


 동생 얘기를 잠깐 하자면, 동생은 작곡과를 졸업해 현재는 상업 음악을 작곡하는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국내 Big 3 소속사 보이 그룹의 수록곡에도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소속사의 인하우스(in-house) 작곡가가 아니기에 길고  불확실성을 안고 고독히 일해왔다. 다행이라면  업계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알려가고 있다는 점이었으나,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 동생의 곡이 선택될 유일한 기회이자 통로였다는 점이 걱정이었다. 내로라하는 인하우스 프로듀서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데다, 회사에서 다음 아이돌 그룹의 컴백/데뷔 계획에도 자잘한 차질이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동생이 보낸 인고의 시간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번민이 있었을 것이고, 여러 잡생각들이 괴롭혔을 것이다. 그래서 동생은 본인이 머릿속으로 수립한 장기적인 계획 안에서 ‘가능할법한기회들을 놓고 고민했다.


그런 상황에서 <몬스터 주식회사>를 매우 감명 깊게 본 나는 동생에게 문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문들이 내 앞에 등장하는데, 얼마나 주변을 돌아보고 인지 하느냐에 따라 내가 팔을 뻗으면 닿을 문고리들이 몇 개인지 알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네 앞에 주어진 문들을 보이는 대로 힘껏 열어재끼라고 말했다. 문을 열어봐야 들어갈만한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은 미지의 공포 대상이 아닌 것, 가장 실재하는 기회의 대상이라 생각하고 용기 있게 열어보라고 응원했다.


예술을 하거나 몰입해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시야가 좁아져 내 주변에 문들이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건 맞다. 그래서 나는 각성의 의미로 문 얘기와 함께 손에 있는 것(계속 하던 것)을 고집스레 놓지 못하는 뭇 동료 작곡가들을 생각해보라 했다. 항상 내 주변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일상 struggle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언도 줄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도 말했듯 예술가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돈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술가일수록 돈이 되는 기회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동생에게 이 얘기를 건넨 게 2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동생은 당신이 손 닿는 거리에서 열리기만 기다리는 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것 같다. 지금 동생은 신생 소속사에서 곧 데뷔하는 11인조 보이 밴드의 곡들을 작곡하였고, 현재 그 친구들의 녹음 세션을 디렉팅 중이다. 아이돌 그룹의 메이킹 영상에 나올 것이다. 이와 별개로는 광고 음악 제작가로부터 간단한 하청 의뢰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불과 한 달이 조금 넘어 나타났다. 문고리를 돌려 활짝 문을 열고 들어갔던 피드백이 이렇게 빠르다. 얼마 전 동생이 내게 그랬다, 큰 기대 없이 힘 빼고 해본 것이 이렇게 일이 진행될지 몰랐다고. 때론 이렇게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삶의 path를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용기와 그 습관이다. 문은 또 다른 문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Dima Pechurin, Pix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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