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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un 26. 2021

잃어본 사람만 보세요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

욕심이 자제력을 잃는 순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소탐대실. 얕은꾀를 부리다가 당한 참패이자, 내게 100% 과실 책임을 묻는 사고이다. 과욕과 과신이 브레이크가 아닌 악셀을 밟게 만든 것이다.


소탐대실은 이론으로만 배운다고 대비할  있는  아닌  같다. 당해봐야(?) 제대로 배울  있는 레슨이다. 순식간에 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실수들에 비해 만회할  있는 가능성이 매우 작다. 이미 늦은 경우가 많은데, 상대방의 반응에 ‘아차’, 했을 때는 늦었다. 욕심이 자초한 지금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방법이 적고, 내가 엎지른 물을 다시 주어 담으려 해도 이미 병이 깨져 있다. 안타깝지만 당장 해결할 방책이 거의 없다. 이렇게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것들을 넘보다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친다. 정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들을 반복할까?


소탐대실 이유  하나가  열매를 100%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이뤄냈는지를 봤을  그렇지 않은 경우다. 예를 들어 30 노력을 하면 45 만큼을 확실하게 얻을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노력에 비해  열매(reward) 어느 정도 확정된 상황에서,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욕심으로 상황 판단이 흐려지고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된다, 50,  넘어 60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즈니스든, 사랑이든, 우정, 파트너십이 됐든, 상대방이 욕심을 부린다고 느껴지는 순간 상대에 대한 믿음이 추락한다. 상대방의 탐욕스러운 눈빛과 몸짓을 확인한 순간, 내 옷깃을 여미고 방어적으로 변한다. 그러다 중대한 실수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어떤 설명과 변명도 쉽게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된다. 선물의 금액이나 액수 등이 문제가 아니다, 정이 떨어졌거나 감정이 상한 게 더 큰 문제다. 그렇다면 이제 이걸로 모든 게 끝이라고 보아야 할까, 혹은 알량했던 욕심 부림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주 작다. 이미 등을 돌린 상대에겐 무리한 연락과 제스처는 독이 될 것이다. 시간과 진심 두 가지의 방법 외엔 없다. 허리를 완전히 굽히고(조건을 팍 낮추고) 조심스레 다가가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재협상은 무리한 시도가 될 수 있으니 수지타산은 과감히 잊고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일말의 신뢰를 되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상대가 갑이다.


소탐하든, 대탐하든 결국 그 마음 가짐


소탐대실을 경험함으로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든 크든, 탐하는 마음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탐하다: ‘어떤 것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


동사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녹아 있다. 높은 벼슬을 탐하거나, 재물을 탐하거나, 주색을 탐한다고 쓴다. 따라서 지나친 욕심이 이끄는 모든 행동은 탐하는 행위이다. 탐하는 대상은 세상에 있는 모든 유무형의 것들인데 탐하는 마음은 앞뒤 안 가리고 빨리 얻고 싶은 마음이다. 급하다. 급하면 기존의 합의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거나 죄의식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탐하는 과정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Easy come, easy go다.


탐하는 행위의 반대말을 생각해본다. 욕심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 욕심은 아직 조련되기 전의 맹수와 같아서, 욕구하는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훌륭하게 성장해 집을 지키는 든든한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 반면, 맹수의 요구에 오냐오냐 하다 보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무는 짐승으로 클 수 있다. 인간성에 반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자체는 건강한 욕구라 생각한다. 내 욕심을 들여다보는 일은 명상만큼 진지한 훈련이고, 이는 나이를 먹는다고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탐함의 반대말은 ‘무욕’이 아니라 ‘도모하다’가 알맞아 보인다. 도모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세우는 행위’다. ‘추구하다’의 의미도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쫓아 구하는 행동’이다. 이 두 단어의 어감과 쓰이는 상황에는 부정적인 느낌보다 건설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적이라는 단어와 방법이라는 말에는 계획과 진정성이 담겨있고, 탐하는 말에는 맹목성과 거짓, 요행이 숨어있다. 이 단어들을 쓸 때 우리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욕심 비용


내가 눈앞의 이익과 손만 뻗으면 누릴 수 있는 안위만을 쫓았는지 생각해본다. 돈 몇 푼을 탐하다가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는가. 지금 상황이 내 뜻과는 정반대로 돌아간다 해서 바로 차를 돌리려 하지는 않았는가. 무언가를 그저 빨리 얻고 싶은가?


세상은 탐할수록 오히려 잃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탐함에는 욕심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 비용(시간)은 크다.


지난 14일 자본시장 연구원은 ‘코로나19 국면의 개인투자자: 투자행태와 투자성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중 신규로 계좌를 개설한 2,30대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됐는데, 이들의 자산 규모는 1천만 원 이하가 가장 많았다. 장기보다 단기 투자 비중이 높았는데 특히 하루 단위로 거래하는 초단타 투자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이 팬데믹 기간에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다. 하루 거래 회전율이 너무 높아 수수료만 커진 것이다. 사고파는 행위가 너무 잦아 거래 비용만 키운 셈이다. 이렇듯, 빨리 벌고 싶은 욕심은 오히려 돈을 잃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라는 가장 큰 가치를 무시한 결과다.


같은 의미에서,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신뢰를 얻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행을 바라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접근하는 것일 수 있다. 정석의 길을 조심스레 도모할 때다. 소나기처럼 사과(apology)를 퍼붓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 달라는 것은 말이 부탁이지, 상대방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요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너무 답답하더라도 우선 상대방은 대화에 참여할 의지가 없는 상태다.


손해 볼 각오 하기


애초에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는 내가 더 큰 이익을 보려는 욕심이 들켜서, 혹은 그 방법이 근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모든 주도권을 넘겨라. 그것이 최선이다. 모든 관계는 계속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또한 시간을 갖고 미래의 기회를 도모하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하던 일들이 안 풀리는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내게 어떤 리소스가 있고, 어떻게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공을 들여 고민해보았는가? 당장 다음 달 매출에 욕심을 낼 것인가, 그 해의 매출 계획에 집중할 것인가.


기회가 떠나갔음을 인정하기


위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떠난 버스는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다. 가장 힘든 일이지만, 나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 입장을 바꿔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쳤을까, 혹은 일을 하는 나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곱씹어본다. 실수에도 마무리가 필요하다. 나의 오판으로 미래의 기회를 상실했으니 그 손실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한다. 그 기회는 더 이상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마음의 정산을 마쳤으면 다시 길에 오르자. 앞에 펼쳐진 내 갈 길은 멀고, 기회는 또 온다. 욕심을 내되 탐하지 말자. 공수래공수거라 했다. 이 말은 아마 더 많은 세월을 맞이할수록 와닿는 세상의 지혜일 것이다.



essay by junwoo

photo by N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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