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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an 16. 2022

하지 않을 이유

피하려는 의지

하지 않을 이유


약 7년 전 이벤트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되게 즉흥적(spontaneous)이었다. 휴가 중 본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내레이션으로 묘사하는 파티 문화가 시작의 이유였다. 이상하겠지만 정말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개츠비의 맨션 파티에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개츠비 본인은 맞은편에서 반짝거리는 옛 애인 집의 초록 불빛에 가까이 가기 위해 일생을 바친 불나방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개츠비의 파티에 있는 찰나의 욕망과 쾌락의 순간에 매료된 불나방들이었다.


할까? 말까? 의 결정이 삶 자체다. 해도 살고 안 해도 잘 살 수 있다. 왜냐하면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류 사회의 평균 근사치에 가까이 가려다 보니 굳이 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중학생 때 일진 그룹에 끼기 위해 굳이 담배를 배우지 않아도 되었던 것, 굳이 문과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졸업 직후 취업 레이스에 굳이 바로 합류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사실 이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기로 결심한다. 주변인들이 의문을 갖거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것들이다. 동시에 왜 하냐는 그들의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할 의무가 없는 것들이다. 내가 결정한 것이니까. 내가 이벤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 영화 개츠비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말 안 하느니만 못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 외엔 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남들에게 힘써가며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사람들도 그걸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들을 위해 이것을 하는 이유를 준비한다. 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배려를 베푼다. 내 결정에 대한 값은 내가 지불하는데, 굳이 남들의 인정(validation)을 구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마치 지나간 일들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처럼 나름 멋진 객관적인 비평을 남기려는데, 거의 다 궤변(bullshit)다. 창작자들이 비평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뭘 안다고?


‘하려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감이 생기면 실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애초에 포기하는 게 편한 거다. 그러니까 포기하기 싫다면 사람들에게 말을 안 하면 된다. 내 결정에 도움이 1도 되지 않는다.


피하려는 의지


Drake의 음악 중 <Jungle>이라는 곡이 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These days, I’m letting God handle all things above me /

(요즘엔 모든 일들을 신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기고 있어) /

The things I can’t change are the reasons you love me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신이 날 사랑하신다는 이유야)


강력한 자존감이 느껴지는 시적인 구절이다. 내 통제 밖의 일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세. 그 결과 또한 나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마음이 강한 사람들은 세상의 큰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거스르려 하기보다, 본인의 달란트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피하는 행동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충돌하려는 의지와 피하려는 의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무엇을 상책이라 여기고 무엇이 겁쟁이의 결정이라 여겨지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평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까?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분명한 이유가 있는 선택과 그 일을 이루려는 행동에 주의를 모으려는 사람은 ‘피하려는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 내린 결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통제 밖에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금방 불안해지고, 두렵고 불안정해질 것이다.”


남들이 통제하는 것들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남들이 통제하는 것(타인의 결정)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 계속 찾아내어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충돌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나를 조금씩 죽이는 일일지 모른다. 어떻게든 외부 환경을 내 편으로 만들어 놓고 싶다면 나는 평생 불안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 될 수 있고, 또 용기 있는 결정이 될 이유는 그 힘이 단단한 내면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은 스스로의 결정과 판단의 결과라는 것이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과거와 무의미한 주변의 평가를 피하려는 의지를 갖자. 주의를 내 안으로 돌리기 위해 힘쓸 것이다. 그것이 진정 강한 사람들의 결정이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Nike, Dmitry Ratush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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