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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an 23. 2022

검은 머리 짐승

블록체인 사회의 인간 신뢰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내 피로 연결된 자식 외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말라는 말이다. 성선설을 믿는 사람으로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내장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위 옛말은 어쩌면, 조상님들은 사람이 너무 좋아 도움을 청해 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었기 때문에 저런 속담이 생긴 게 아닐까? 공감력과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검은 머리 짐승은 사람을 비하한 표현인 만큼 우리는 (머리) 털 달린 동물이 맞다. 우리의 원시 조상들의 사진을 보면 유인원과 매우 유사한데, 두개골의 진화가 두드러지게 일어났으나 몸 털도 거의 다 사라졌다. 1850년대 독일 의사 칼 분더리히는 2만 5천 명의 겨드랑이 온도를 측정했는데, 이때의 인간 평균 체온은 37도였다. 우리는 인간 평균 체온은 36.5도이다. 2150년대에는 평균 체온이 36도가 될 수 도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마당에..


동물들은 체온을 조절하는 방식에 따라 나뉘는데, 그중 인간은 내온성 항온 동물이다. 체내의 물질대사를 통해 일정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생존을 위해 외부 기온에 상관없이 일정 체온을 유지하는 동물이란 뜻이다. 반들반들한 피부를 가진 인간은 얇은 지방층과 조금의 털을 가지고 단열을 한다. 포유류와 조류는 털과 깃털로 공기층을 품어 열을 가두고, 고래 같은 바다 포유류는 두꺼운 지방으로 추운 심해에서 체온을 유지한다. 동맥과 정맥이 서로 바로 옆에서 흐르는 것도 신기한 신체의 단열 설계이다.


거대 항온성


단열은 작은 동물보다 큰 동물들이 유리하다. 그 이유는 물리적인 사실에 있다. 몸길이가 2배 증가하면 체표면적은 4배, 체구는 8배 증가한다. 몸집이 클수록 일단 몸이 따뜻해지면 쉽기 식지 않는다. 몸 자체가 거대한 단열 기능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거대 항온성’이라 한다.


털은 효율적인 단열재다 보니,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진화하면서 털을 탈락시켰다. 보온에는 좋지만 더울 땐 더워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고 소중한 동물들(내온성 항온 동물)은 털이 있다. 몸집 크기 표면적이 넓어 체온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동물들이 큰 동물들보다 체중 대비 음식 섭취량이 많다.


그래서 작은 동물들에게 추위는 생존에 직결된다. 그래서 많이 먹는 것 말고도 인공적(?)으로 ‘거대 항온성’을 만든다. 펭귄이 대표적이다. ‘허들링’이라 불리는데, 다 같이 붙어 있음으로써 거대한 하나의 펭귄이 되는 것이다. 황제펭귄은 수컷이 알을 품는다. 알을 낳은 암컷은 바로 바다로 출가하는데, 새끼가 태어나기까지의 약 115일 동안 수컷 펭귄이 따뜻이 알을 품는다. 이때 수컷들은 밥도 안 먹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데, 살인 추위를 버티는 방식은 ‘허들링’이다. 가장자리에 있는 펭귄이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훈훈한 ‘허들링’을 운영한다.


21세기 허들링


예전에는 마을 회관이 있었다. 마을 공동체의 운영을 주관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온기를 전해준 기관이었다. 이제는 네이버 카페가 있고 트위터가 있다. 이제는 메타버스 안에서 여러 개의 본인(multi-ego)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허들링을 한다. ‘거대 항온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며, 장수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커뮤니티다.


위 옛말(‘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을 다시 생각해보면, 옛날엔 남의 도움을 들어주기 전, 그것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럼에도 믿어야 했다. 왜냐면 그게 당시 본인과 가족의 생존에 연결되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마을 내 집안의 명예라던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서 등.


나의 생존의 위해서 남을 신뢰해야 하는 것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과거에는 이를 타인의 인간성에 오롯이 의지해야 했지만 이제는 기술이 있다. 메디치 가문을 낳은 이탈리아는 일찍부터 공증인들이 활동했다. 모르는 상대와의 거래가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증해줄 법적 대상을 지정함으로써 한 층의 신뢰성을 돈으로 샀다는 뜻이다. 즉 기술이 없었을 때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추가 계약이 필요했다. 이제는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컨트렉트를 통해 공증인이 했던 일을 거래 참여자들이 직접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탈중화 자율기관(DAO)들은 존재 목적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거대 항온성’을 제공할 것이다. web3.0에서는 검은 머리 짐승들이 마음 놓고 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어야 하고 효율적인 허들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

LG Science Land - 과학이야기



essay by 이준우

photo by Marco Bianch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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