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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26. 2022

쉽게 믿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쉽게 믿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믿어야 했던 것은 아마 기독교 사상과 신의 존재였을 것이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교회 생활은 내 신앙과 사회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서울살이를 시작하며 홀로서기를 한 지 12년째인 내게 신앙이란 기독교리가 주는 의미는 약해졌다. 그 대신 세상을 스스로 헤쳐나가며 마주친 내 신앙적 울림, 그리고 통제 불가한 것들에서 어렴풋 보이는 신의 존재가 내 신앙이다.


독실하신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의 신앙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대신 그 신앙을 실천해오셨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남에게 증명해보라는 것, 즉 예수를 어떻게 믿어왔는지는 지극히 개인적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믿음이란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작년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 하는가 | 리처드 도킨스>를 읽으면서 종교는 과학계가 쓰는 논증법으로는 설득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비해 창조론은 지적설계론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아직 ‘일단 믿고’ 시작해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믿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목사님이 “믿쑵뉘까~?” 하면 말로는 얼마든지 “아멘~!”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불확실함을 느꼈다. 사람마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 믿을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성경 구약의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함께 애굽을 탈출한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covenant)을 발표하는 장면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방법을 돌판에 적어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십계명은 스스로 상상할 필요가 없는 확실한 방법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믿기 어려운 것을 직접 보여주며 믿으라고 했다.


의심 많은 도마(Thomas)


예수가 복음을 전파할 당시의 로마제국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자리를 넘겨받은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유대 지방의 로마 관할 지역을 다스리던 5대 주지사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예수를 구속해 심판을 통해 십자가형을 내린다. 죽은 지 3일 후 부활한 예수는 자신의 12제자 중 한 명인 도마에게 가장 먼저 등장한다. 슬픔에 잠겨 있던 도마는 살아 있는 예수를 보고 믿지 못한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생긴 손바닥 못 자국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한다. 예수는 도마에게 그 못 자국을 직접 보여주니 그제야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이다!”라고 소리친다. 서양에서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비유적 표현으로 ‘doubting thomas’ 라 한다.


성경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가 있다. 성경에는 의심하는 여러 부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보따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엔 다양한 모습의 믿음과 불신, 그리고 고뇌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해결이 기독교 복음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진심을 다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이 가진 믿음의 연약함을 알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역사하면서 믿는 법을 가르쳤다.


알 수 없는 미지(The unknown unknown)


유일하게 2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한 사람은 도널드 럼즈펠드(13, 21). 그의 가장 유명한 어록은 아마 2002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WMD) 보유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일 것이다(유튭).


“Reports that say there is something hasn’t happened  are always interesting to me because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ings that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is some thing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Known knowns: 일어날 일과 그 시기를 확정해 알 수 있는 것들. 예측 수준은 높고 불확실성은 낮음. 예) “지금 나는 대학교 3학년이니 1년 후에는 졸업한다. 내일 아침에 소나기가 내릴 예정이다.”

Known unknowns: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일지 그리고 언제일지 불확실한 것들. 예) “1년 후에 졸업하고 바로 구직하면 어느 회사에 가게 될지. 혹은, 내가 여행을 떠나면 누구를 만날지. 창업을 하게 되었을 때 누구와 함께 일하고 고객으로 상대할지.”

Unknown unknowns: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언제 일어날지 아예 예상조차 되지 않는 것들. 그러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님. 우리는 가용성 휴리스틱으로 인해 발생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기 때문에 취약하다.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대부분 이 세 가지의 총합이다.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대비하거나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우리가 자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 것에 약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선지자임을 믿는 것, 부활해 영생을 사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만큼 어렵다.


불확실함은 무지함과 다르다. 랄프 왈도 애머슨은 ‘부러움은 무지함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지만, 불확실함 투성인 우리의 앞 날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믿지 않는데 남의 성공을 온 맘 대해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우리는 보고 만져봐야 믿는 인간들이다. 남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떤 성공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 친구의 밝은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과연 나는 그의 성공을 100% 믿을까? 내 스스로도 제대로 믿지 않는 상황에서.


Seeing is believing


천생 의심이 많던 도마는 부활한 예수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겠다는 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목격했을 때 비로소 그 사건이 정말 일어났음을 믿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보거나, 직접 듣거나, 직접 느껴야 한다.


베이지안으로 살기


<신호와 소음 | 네이트 실버>의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소음 속에서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예측이란 활동에 객관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베이지안 추론법이다. 즉,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사전 확률을 세운 후, 앞으로의 사건들을 예측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새 증거를 확보해가면서 예측 확률을 조정하는 것이다(추가 자료​).


믿음은 애초에 정적(static)인 것이 아니라 변덕이 심한 것이다. 아무도 처음 가졌던 믿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은 없다. 그 믿음이 약해지거나 더 강화되는 경우 둘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스핀오프 하는 신사업에 전문 경영인 A를 영입하려 할 때, 그의 과거 트랙 레코드와 레퍼런스 체크를 통해 훌륭한 경영을 할 사전 확률을 설정한다. 그리고 부임 이후 A가 실제 만들어내는 성과와 일련의 사건들을 추가하여 경영을 잘할 확률을 업데이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기거나, 임기 후 교체할 수 있다.


우리는 봐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계속해서 상기되어야 한다. 내가 더 나은 삶(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에 대한 예측(믿음이라 말한다)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목격되는 크고 작은 성취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믿을 수 있고, 또 그 믿음이 강해질 것이다. 때로는 적당히 겁을 없앨 필요가 있다. 용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기는 불확실함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왜 자기 신뢰를 언급하는가? 자기 영혼이 여기 우뚝 서 있는 한, 말로 하는 힘이 아니라 실제로 활동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신뢰에 대하여 말만 하는 것은 신뢰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보다는 실제로 존재하고 지금 여기서 활동하며 작용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을 말하도록 하라. 이 힘에 나보다 더 많이 복종하는 이가 나를 지배한다. 비록 그분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애머슨


“그분의 감추어진 의미는 우리의 노력 속에 깃들어 있지. 우리의 용기가 곧 우리의 가장 좋은 신이지.”

- 희곡 <본두카> 플레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 히브리서 11장 1절


#trusttheprocess

#donotgogentleintothatgoodnight



essay by 이준우

photo by Caravaggio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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