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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Apr 27. 2022

내 마음 있는 곳

네덜란드 재방문 여행기

도착한 지 5일 만에 네덜란드에 온 것을 실감한다. 그 이유는 5시 무렵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자전거 페달 소리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며, 정오 이후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시키는 젊은 아빠들과 많이 마주친다는 것이고, 또 골목골목 카페(바)들이 오픈 준비를 하는 모습 때문이다. 여행 계획에 들인 노력이 의도적으로 매우 적었음에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비일상적인 일상의 모습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다. 네덜란드를 유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주한 관광지를 벗어나기만 하면 네덜란드 일상의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다.



묻혀있는 일상


하이데거는 일상적인 것은 묻혀 있다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것들은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익숙한 것들은 사건들에 가려져 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일상적인 시선으로 비일상적인 것들을 재관찰하고 사유할 기회를 준다. 낯설지만 묻혀있는 일상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함에 있어 큰 보람을 가져다준다. 망각의 반대는 진실이라 하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가 그동안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핑계로 무엇을 덮어두고 살았는지 심심하게 깨닫는다.


5년 전 네덜란드에서 잠깐 살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인들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서나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살면 하루가 충만했음을 많이 느끼면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안전한 거리, 즐거움을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생기 있는 아이들, 그런 건강한 정신을 양육하고 응원한 가정교육 등.


또, 내가 길에서 본 노인들, 환갑이 훨씬 넘은 그들은 멋진 구두를 신고 걸었다. 색은 조금 바랬으나 멋지게 주름 잡힌 구두나 부츠를 신고 허리를 세우고 멋지게 걷거나 자전거를 탔다.


자연


공원을 거닐며 벤치에 앉아 사색하는 노인들을 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풍경에 녹아든 것 같이 자연스럽다. 노인과 자연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것들과 이별해오면서 서로의 색깔을 입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가장 오랜 침묵을 나눈 벗이며 동시에 어머니일 것이다. 생존의 무게를 지고 많은 풍파를 겪어낸 것만으로도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할만하다. 그 과정에서 피고 진 여러 감정들에 대해 자연도 스스로 모습을 바꿔가며 동조하듯이 말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자연>에서 자연을 ‘내가 아닌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은 나의 본성이자 정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또, 새로운 삶을 가르치는 훈련장인 자연은 인간과 친밀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은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충족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순리를 따르는 자연은 그것이 본성인 것이고,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자연 속의 사물들이 제 운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성의 빛을 통해 자연 속의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자연은 창조와 동시에 소멸의 존재이다. 그것은 죽음과 이별이다. 화마로 인해 불탄 숲도 자연적 치유를 통해 새로운 모습의 자연을 이룰 것이다.



내 마음이 있는 곳


한국 정부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면서  팬데믹 기간이 끝이나나보다. 네덜란드에선 마스크 쓰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했다. 에어비엔비 호스트 아주머니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내가 불편할까  대화할 때마다 마스크를 써주었지만, 이미 이곳은 바이러스가 종식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오래된 모습이다. 한국에선 이놈의 마스크를 벗지 못해 안달이 나있지만, 막상 마스크가 없어도 되는 삶을 경험하니 삶이 월등히 나아진  같지는 않다. 이제는 무엇이 새로운 일상인지 모르겠다. 정부의 거리두기 전면 해체 이후 당신의 오늘과 내일에서 무엇이 크게 변할?


17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노곤해진 몸으로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한국에 남겨둔 결정 거리가 있었고 그저 가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여행길에 올라서 그런지 내 마음도 현지에 있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비일상적인 일상들을 보며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익숙지 않지만 일상적인 것들을 보며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5년 전에 갔던 곳들도 몇 곳 다시 방문했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 이질적인 장소에 있어도 그리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 여행이란 보통 새로운 것을 찾고 얻기 위해 떠나기 때문에 역설적이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이 느낌이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일탈이었고, 지겹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 나는 먹고 마실 것을 찾고, 지친 몸을 누일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낯설지만 이질적이지 않은 곳, 그러나 정말 새롭지는 않은 정신. 결국 내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은 장소를 초월한 것들이었고, 내가 오늘 먹고 마신 것, 본 것들은 꽤나 무관했다. 결국 마음이 있는 곳에 내가 있었다.


"Running away is easy, it’s the living that’s hard"



보통명사, 고유명사


여행을 하면 구글 맵을 자주 켠다. 가이드 없는 초행길이라 내 주변에 뭐가 있는지, 뭐가 더 나에게 나은 곳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검색창의 첫 입력은 보통명사를 친다. ‘카페’, 혹은 ‘바’, ‘중고서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결과창 속에는 고유 명사들이 내 클릭을 기다린다. 내 마음에 드는 상점은 이렇게 고유명사로 소개되어 추가로 검색된 후, 대명사(‘그곳’, ‘거기’)가 되어 내 방문을 기다린다.


인간은 세상의 유일한 대상인 고유 명사로 태어나지만, 일반명사의 집단들 속에서 살다 간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다면,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유 명사가 되고, 또 자기에게 매우 특별한 몇 사람에게 대명사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


고유 명사는 보통 명사들과 대립된다. 또한, 이름을 모르거나 이름이 없는 대상은 대명사로도 지시할 수 없다(두산백과 두피디아). 즉 누군가의 기억에 반드시 실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 누군가에게 대명사로 불린다는 것은 얼마나 존귀한 일일까!



photo by 준우

essay by 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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