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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y 17. 2022

꼭 성공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

혹은 이기지 않아도 성공하는 방법

인터넷에서 재밌는 밈을 찾았다. ‘Task failed successfully.’ 모든 밈이 젊은 세대의 정서와 시대정신을 대변할 수 없지만 많이 보이는 밈들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패 자체를 발생한 경험 그 이상, 혹은 이하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일까, 혹은 실패라는 결말까지 도출해낸 나 자신에 대한 자조적 칭찬일까? 세상에 있는 실패 중 99%는 남들이 논할 자격이 없다.


나는 세대별로 개인 노력의 절대적 총량이 이전 이후의 세대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첫 째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당 시대 개인들의 노력 수준을 비교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구식이라 할지라도 부모님 세대도 주류와 비주류의 삶이 있었을 테고, 그 비주류의 삶을 산 선생님들은 미개척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둘째 이유는 경쟁과 양극화는 심화되었지만, 그만큼 이전 세대에 비해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선택의 몫은 내 것이지만, 선택 자체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공들인 탑을 다시 지어야 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1/ 장독대형 인간, 바가지형 인간


이어령 선생님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장독대 같은 사람과 바가지 같은 사람이다. 장독대는 무언가를 담기 위해 빚어졌다. 물을 담 든 김치를 담 든, 목구멍까지 채우고 있으려는 것이 장독대의 역할이다. 장독대는 담는 것(컨텐츠)과 함께 독 자체(컨테이너)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담고 있는지, 얼마나 비어있는지는 보기만 해서 알 수 없다. 허한 공간을 참지 못해 뭐든 채우기에 급급한 장독대는 뚜껑을 깠을 때 부조화를 이뤄 썩어있을 것이다. 반면 세월을 견디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을 소중히 품고 있는 사람은 인격과 능력이 함께 숙성될 것이다.


바가지는 무언가를 퍼다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가득 채워졌으면 다시 비워져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 큰 박은 속을 비워낸 후 그릇으로 쓰였고 작은 박은 바가지로 쓰였다. 담는 목적이 세분화되었을 뿐 똑같이 담았다 비우는 운명인 것이다. 바가지는 순간순간 무엇을 담느냐에 집중한다. 서민들의 도구였던 바가지는 컨텐츠 중심의 도구였고, 장독대보다 더 짧은 호흡을 가지고 그때그때마다 담아야 할 것들을 담았다, 비웠다.


2/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장독대형 인간은 한 개의 탑을 공들여 쌓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주춧돌 하나부터 쓰이는 돌 하나하나에 부여된 의미들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장독대형 인간이 만든 탑은 오래 봐야 그 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탑 모습(컨테이너) 자체가 그 스토리(컨텐츠)를 갖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이라는 말은 바가지보다 장독대에 더 어울린다. 반면, 바가지형 인간은 탑의 마지막 층을 올렸다면 곧 다른 곳에서 다른 탑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바가지형 인간에게 한 개의 탑을 완성했다는 것은 경험(컨텐츠)적인 성격이 강하고, 탑 자체(컨테이너)에 대한 의미 부여에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디테일에 약하거나 세밀함이 떨어질 수 있고, 또 모르는 실수를 만날 수 있다.


두 형의 인간들 모두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쌓던 탑의 모습이 내가 처음에 목적한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일 수 있고, 또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탑 쌓기의 결말(혹은 완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들였던 탑을 무너뜨려야 다음 탑을 쌓을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너진 탑이 하나의 과정이거나 결과라면, 그 자체가 성공적인 잔해(debris) 아닐까?


3/ 내가 평생 가질 수 없는 것


저번 주 금요일 <My Friend, Hugo> 파티를 정리하면서, 나는 성공하진 않았어도 이겼다고 자평했다. 주춧돌부터 꼭대기에 있는 돌까지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 올려놓은 탑이었기 때문이다. 수익적으로 실패했어도, 내 시간이란 시간은 다 썼어도 말이다. 중간중간 많은 과정들이 쉽게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준우하고 싶은 거 다 해’를 되뇌며 미완성의 방법으로 이길 수 있었다. 내가 평생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 그게 장독대형 인간이든 바가지형 인간이든, 완벽한 파티를 끝내고, 완벽한 글을 쓰고, 완벽한 성공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짓고, 또 짓는 이유다. 계속해서 담았다가 비워낸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경험 자체를 좇는 이유는 그 과정이 내가 이 세계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임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적으로 실패했다면 인생의 미로에서 새로운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잃었던 길에서 사잇길이 보인달까, 그게 낭만이 살아있는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4/ 업적보다 스토리, 사람


작년부터 내 본업을 벗어나 여러 일을 벌여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부류에게는 내 마음을 더욱 닫았고, 어떤 부류는 더 신뢰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완벽한 타인이다. 거의 매일 보는 가족도 내가 이틀 전에 면도한 사실을 모를 수 있지 않은가. 자의든, 당시 상황 때문이든, 타인을 향한 기대는 살면서 많은 탑을 세우려는 나의 목표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 것 같다. 특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기대할 때. 나만의 성취를 타인과 함께 이뤄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심지어 회사 안에도 장독대형 인간과 바가지형 인간이 있고, 또 그의 교차종, 혹은 끔찍한 혼종들이 섞여 있는데.


평생의 업적이란 완벽한 성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나긴 탑 쌓기 시도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 과정을 즐겨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함께해주는 사람들 각자의 스토리에도 참여할 수 있는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관계는 내 마음부터 시작한다. 근데, 아직도 성공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지, 이길 수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Just because I’m losing,

doesn’t mean I’m lost

doesn’t mean I’ll stop

doesn’t mean I’ll cross”

<Lost!> Coldplay



essay by 준우

photo by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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