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두산 고영민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스코프를 연재중인 제이스입니다.
오늘의 브런치 글은
올해 시작과 함께 찾아온 소식인데
'고제트', '2익수'라는 별명으로도
익숙한 前두산 고영민 선수 은퇴소식입니다.
프로야구를 조금 보셨다는 분들은
고영민 선수를 아실 것 같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
2009 WBC 기적의 주인공.
2익수라는 넓은 수비 범위의 창시자.
고영민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참 많았습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33534
그런 고영민 선수가
올해 1월, 은퇴를 발표하였습니다.
짧지만 두산의 지휘봉을 잡았었던
KT 김진욱 감독이 코치직을 제안했고
이를 수락하며 코치로서
새로운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고영민 선수는 입단부터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두산의 2루에는 안경현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특유의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 엄청난 운동신경 등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모습을 보입니다.
2007년과 2008년에 최고의 모습을 보인
고영민 선수는 각각 이듬해에 열렸던
올림픽과 WBC에서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영민 선수의 활약은 국가대표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기습번트로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가하면,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펀치력으로
장타를 날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최고는 아직도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입니다.
9회 1사 만루 수비때,
공을 받아 러닝 스로우로 1루에 던져서
병살로 연결한 것입니다.
특유의 범상치 않은 수비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하였죠.
하지만 그의 영광의 세월은 길지 못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과 WBC라는 대회를 치른
후유증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2009년은 너무나도 부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국제대회 후유증에 따른
체력 문제로 일시적 부진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0년에는 전체적으로
성적이 더 나빠졌습니다.
일시적인 부진인 줄 알았던 성적이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에 잠시 전성기와 비슷한 스탯을
회복하는가 싶었지만
2012 시즌 이후에는 평범한 백업선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이 그 이유 중 하나였는데
수비를 하기 어렵고, 전력 질주 후에도
허리에 통증이 있어 주루에도
방해를 받았습니다.
2015년에는 1루수로 변신하기도 했는데,
1루수 출전 경기에서 서건창 선수와의 충돌로
서건창의 후방 십자인대파열 부상을 입히며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 이후 고영민이라는 이름 세글자는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뉴스에
이름을 올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고영민 선수는 올 초, 14년간 정들었던
두산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급격한 기량저하로 다른 팀으로의
이적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선수 고영민은 은퇴했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수비 시프트가 익숙치 않던 KBO리그에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를 구사하던 선수.
국가대항전에서 더 힘을 내던 선수.
두산의 '육상부'를 이룩해낸 선수.
두산팬이나 KBO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 고영민 선수가
코치로서는 어떤 인생의 2막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 사진 출처는 네이버 뉴스
선수 기록은 스탯티즈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