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오랫동안 달러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다. USDT와 USDC가 시장을 지배하는 동안, 정작 세계 2대 통화인 유로화 기반 디지털 자산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유럽의 규제 환경이 명확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EURC는 USDC 발행사로 알려진 써클이 2022년 6월 출시한 유로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 출시 초기만 해도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었고, 단순히 유로화 수요를 타진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2024년 유럽연합의 가상자산 규제안인 MiCA가 본격 시행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MiCA는 유럽 내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에 관한 포괄적 규제 프레임워크다. 써클은 MiCA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는 전자화폐 발행사 자격을 획득했고, 결과적으로 EURC는 '규제 준수'라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유럽 금융당국의 감독 아래 투명하게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점은 기관 투자자와 기업 고객에게 결정적 신뢰 요소로 작용한다.
2026년 2월 기준 EURC의 시가총액은 약 6억 5천만 유로, 한화로 환산하면 9천300억 원 수준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비교하면 여전히 작은 규모지만, 전년 대비 300% 이상 급성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유럽 대기업들이 공급망 결제에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실제 유통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EURC의 주요 사용층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 유럽과 거래하는 수출입 기업들이다. 달러로 환전할 필요 없이 유로화로 직접 정산하면서 환율 변동 리스크와 환전 수수료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둘째, 외환 트레이더들이다. 온체인에서 USDC와 EURC 간 환전 거래를 통해 차익을 실현하거나 리스크를 헤지한다.
셋째, 유럽에서 활동하는 디지털 노마드와 프리랜서들이다. 은행의 높은 국제송금 수수료를 피하면서 유로화로 보수를 받고 지출할 수 있다.
EURC가 활용되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용도에 따라 분화되고 있다. 이더리움은 대규모 유로 자산의 수탁과 기관 간 거래가 이루어지는 핵심 허브 역할을 한다. 솔라나는 2024년 말부터 EURC 거래량이 급증했는데, 빠른 처리 속도 덕분에 실시간 결제와 소액 송금에 주로 쓰인다. 코인베이스가 지원하는 레이어2 네트워크인 베이스는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개인 사용자 송금 통로로 부상 중이다.
유럽중앙은행은 현재 디지털 유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유로가 출시되면 EURC와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간 영역의 디파이 프로토콜과 결합된 EURC는 공공 성격의 디지털 유로보다 훨씬 유연하고 범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써클이 구축한 CCTP는 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 유로화 이동을 자유롭게 만든다. 크로스체인 전송 프로토콜을 통해 기업들은 복잡한 기술적 장벽 없이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유로화를 활용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유로화 정산 표준으로 EURC를 채택하는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EURC는 단순히 유로화를 디지털로 옮긴 수단이 아니다. 규제와 기술이 조화를 이룰 때 시장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EURC를 결제 인프라의 핵심 요소로 검토해야 한다.
달러 중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유로 기반 대안이 명확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규제 준수, 기술적 확장성, 실제 사용 사례 확대라는 세 가지 축이 EURC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유럽 디지털 금융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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