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손

by 심준규 Jace Shim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스스로 금고를 운영하지 않는다. BNY 멜론(BNY Mellon)이나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처럼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수탁 은행에 자산을 위탁하는 구조로 움직인다. 이 구조가 흔들리면 1달러의 가치도 흔들린다.


커스터디(Custody, 수탁)의 핵심은 단순한 보관이 아니다. 발행사의 자산과 고객 준비금을 완전히 분리된 계좌에 넣어두는 '파산 절연(Bankruptcy Remoteness)' 구조가 핵심이다. 발행사가 경영난에 빠지더라도 고객이 맡긴 준비금은 법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보관된다.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부터 수탁 은행의 역할은 시작된다. 발행사가 "오늘 1억 달러치 90일물 국채를 매입하라"고 지시하면, 은행은 해당 지시가 사전에 합의된 투자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지부터 확인한다. GENIUS 법안 같은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지 검증하는 단계가 실행보다 먼저다.


검증이 끝나면 채권을 매입하고, 발행사 명의의 수탁 계정에 전자적으로 기록한 뒤 보관 증명을 발급한다. 동시에 채권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과 레포(Repo) 거래 수익을 정확히 계산해 발행사 계좌로 입금하는 행정 업무도 은행이 담당한다. 국채를 고르는 것도, 수익을 정산하는 것도, 서류를 관리하는 것도 모두 수탁 은행의 손을 거친다.


2026년 현재 이 프로세스는 실시간 연동 수준으로 진화했다. API를 통해 발행사의 온체인(On-chain) 발행량과 은행의 오프체인(Off-chain) 준비금 잔액을 실시간으로 대조하는 체계가 갖춰졌다. 블록체인 위의 숫자와 은행 서버 안의 숫자가 동시에 검증되는 구조다.


BNY 멜론은 2025년 11월 한발 더 나아간 선택을 했다. '드레이퍼스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펀드(Dreyfus Stablecoin Reserves Fund)'를 출시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만을 위한 전용 머니마켓펀드(MMF) 형태의 수탁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기존에는 발행사가 직접 채권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했다면, 이제는 은행이 규제를 100% 충족하는 포트폴리오를 대신 설계해준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운영 리스크의 분산에 있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규제 적합성을 스스로 판단하는 부담을 덜고, 전문 기관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커스터디 은행이 단순 금고지기에서 컴플라이언스 파트너로 기능이 확장된 셈이다.


발행을 직접 준비하는 사업자라면 수탁 계약서에서 파산 절연 조항을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법적 분리가 명확하지 않은 구조에서는 발행사의 재무 위기가 곧바로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조항 하나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뢰를 담보하는 시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블록체인 코드가 아니라 오프체인의 신뢰 인프라 위에 서 있다. 커스터디 은행이 발행사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산을 투명하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될 때 비로소 1달러는 1달러로 남는다. 기술보다 먼저, 제도와 신뢰가 스테이블코인을 떠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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