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국채가 되는 순간
누군가 1억 달러를 입금하고 스테이블 코인을 받는 순간, 발행사의 장부에는 두 가지가 동시에 기록된다. 하나는 부채, 즉 발행된 코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 즉 수취한 현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발행사의 실제 작업은 바로 이 시점부터 시작된다.
수취한 현금은 은행 계좌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발행사는 이 자금을 즉시 수익 자산으로 전환하는데, 그 핵심 수단이 바로 단기 국채(T-Bills)다. 만기 93일 미만의 초단기 국채는 현금과 거의 동일한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연 4~5% 수준의 수익을 제공한다. 준비금이 단순히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운용'된다는 점이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의 수익 모델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발행사가 직접 채권 시장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수탁 은행을 통해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프라이머리 딜러로부터 대규모로 채권을 매입하는 구조다. BNY멜론이나 스테이트 스트리트 같은 수탁 기관이 이 과정을 중개하며, 발행사는 규제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운용 수익을 확보한다.
규제는 이 운용 구조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있다. 2026년 현재 미국의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비롯한 글로벌 규제 가이드라인은 준비금 투자 대상을 초단기 국채와 역레포(Reverse Repo) 등 극히 안전한 자산으로 제한한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발행사들의 운용 방식은 더욱 표준화되고, 투명성은 높아진다.
이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비교 대상이 있다. 기존 카드 결제 시스템에서 유통사는 결제 금액의 약 2%를 수수료로 지출하고 이틀 뒤에 정산을 받는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에서는 수수료가 없을 뿐 아니라, 고객이 코인을 보유하는 기간 동안 그 자금이 단기 국채에 투자되어 수익을 만든다. 비용 구조가 수익 구조로 뒤바뀌는 것이다.
이 개념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조차익(Seigniorage)의 현대적 변형이다. 과거에는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 스테이블 코인 시대에는 민간 발행사에게로 넘어왔다. 고객이 코인을 보유하는 매 순간이 발행사에게는 수익 창출의 시간이며, 유통 규모가 클수록 이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테더(USDT)가 왜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내는지 이제 구조적으로 설명이 된다. 1,400억 달러 이상의 유통량에 5%의 국채 수익률을 적용하면 연간 수익은 단순 계산으로도 70억 달러를 넘는다. 운용 인력이 수백 명에 불과한 회사가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과 비슷한 수익성을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이 모델이 무결한 것은 아니다. 준비금 운용의 핵심 리스크는 '기간 불일치(Duration Mismatch)'에 있다. 고객은 언제든지 코인을 상환 요청할 수 있지만, 자산은 국채 만기에 묶여 있다. 93일 이내 만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이 유동성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며, 발행사들이 포트폴리오 평균 만기를 수십 일 이내로 관리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실무 흐름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법정화폐 입금 → 수탁 은행 예치 → 단기 국채 매입 → 온체인 토큰 발행. 블록체인 위에서 코인이 생성되는 화려한 과정 뒤에는, 수십 년간 검증된 초단기 채권 투자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금융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결국 24시간 운용되는 초단기 국채 펀드다. 기술적 혁신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수익 구조의 본질은 금리 차익과 유동성 관리라는 전통 금융의 오랜 원칙에 기반한다. 디지털 자산 시장을 이해하려면 블록체인 기술만큼이나 이 기초적인 자금 운용 메커니즘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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