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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취로운생활 Mar 23. 2019

혼자 사는 사람에게 청소란...?

안 하면 안 할수록 더 하기 싫어지는 너, 청소.

나는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누워서 유튜브 보는 것을 좋아하고, 누워서 넷플릭스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고 바로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항상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바닥 쓸기는 1주일에 한 번이면 자주 한 것이고, 화장실 락스 청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했다. 설거지는 음식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을 때 했고, 창틀 청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살았던 집은 점점 돼지우리 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창틀 본연의 색은 화이트이지만, 한 번도 닦아 본 적이 없어 어두운 회색 먼지가 쌓여있었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뒹굴었다. 며칠에 한 번씩만 하던 설거지 거리에는 회색을 띤 초록색 곰팡이가 물 위에 떠다니곤 했다. 주방 가스레인지 부근 타일에는 주황색 때로 물들었다. 전자레인지 문을 열면 사방으로 튄 음식물 찌꺼기가 있었다. 냉장고를 열면 고기 핏물이 떨어져 그대로 굳은 자국이 있었다. 바로바로 청소를 했다면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청소를 안 하면 안 할수록 손대기 싫을 만큼 더러움은 쌓여만 갔다.


지난달 이사를 준비하며 집 정리를 시작했다. 1년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을 모두 버렸다. 맥도널드 해피밀을 먹으며 모았던 먼지 묻은 피겨들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철제 옷장을 분리해서 버렸다. 이케아 TV장을 분리해 친구에게 주었다. 내가 집에 있으며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버렸다. 


조금은 휑 해진 집을 돌아보니, 내가 머물고 있던 공간이 더러웠음을 깨달았다. 이 상태로 이사를 갈 수 없었다. 소파와 침대 밑에 있는 먼지 덩어리를 치우고, 주방 타일에 껴있던 묵은 때를 지우고, 냉장고에 있던 핏물을 닦았다. 화장실 세면대에 낀 노란 물때와 타일 사이사이에 낀 검은곰팡이들을 제거했다. 창문을 열고 창틀에 낀 3년 묵은 먼지와 때를 없앴다. 하루 만에 깨끗 해 질 집이 아녔기에, 며칠 동안 청소에 매달렸다.


청소를 하며 지날 날의 나 자신을 원망했다. 

'하루에 5분만 청소에 투자를 해도 이지경 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요리가 끝나고 주방 타일을 바로 닦았더라면 청소에 힘을 들이지 않았을 텐데...'

'화장실 환기를 매일 해줬더라면 곰팡이가 이 정도로 끼지 않았을 텐데...'

'누워서 멍 때릴 시간에 1분만 창틀을 닦았더라면, 창틀만 1시간씩 닦을 일이 없었을 텐데...'

'음식을 데워먹을 때 랩이나 뚜껑을 씌웠더라면 전자레인지가 이지경까지 더럽지는 않았을 텐데...'


과거의 나를 원망하는 것은 잠깐이었다. 청소를 하며 더러웠던 곳이 점점 깨끗해지고 빛이 날 때, 마음이 개운 해 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깨끗한 공간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이전보다 편안 한 마음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지낼 수 있었다. 사람은 역시 좋은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이사 하루 전, 이사 갈 집으로 향했다. 전 세입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상태였고, 입주청소 업체에게 더 꼼꼼히 청소할 부분을 요청하기 위해 사전 탐색을 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싱크대 하부장에는 노란 기름때들이 끼어있었고, 냉장고는 말도 못 하게 더러웠다. 화장실 샤워부스 쪽 타일에는 검은색보다 더 검은곰팡이들이 타일 사이사이 끼어있었다. 하얀색 타일은 노란색도 아닌 주황색으로 변하기 전 상태였다. 화장실 배수구는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아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있었다. 상태가 심각했기에, 청소업체에게 7만 원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간 더러운 공간을 보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과거의 나를 제삼자의 입장으로 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고 하루 5분씩 청소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집 계약이 끝날 때 까지는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고, 다음 세입자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머리를 말린 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바로 치운다. 요리가 끝나면 주방 타일에 튀긴 음식물을 닦는다. 설거지는 음식을 먹고 나서 바로 하지는 않지만 하루에 한 번은 한다. 바닥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닦는다. 내가 10%만 부지런 해 지면 되는 일이다. 이사를 한 후 2주가량은 이런 생활을 했다. 천성이 게을러 이런 생활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지내고 있다.


청소는 안 하면 안 할수록 더 하기 싫어진다. 그렇지만 청소를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 청소란 그런 츤데레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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