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밥프록터
본 내용은 <부의확신/밥프록터>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패러다임과 사이버네틱스의 관계를
알아보자.
사이버네틱스는 동물과 일부 기계 간
제어와 소통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비행기는 예상치 못한 난기류에 부딪혀
항로에서 벗어나기도 하는데
사이버네틱 매커니즘이 개입해서
비행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사이버네틱 메커니즘의 중요한 역할은
비행기를 바로잡고 원래의 항로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마음의 작동원리를 알아야 나아갈 수 있다.
다이어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시작점이지만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사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식습관을 바꾸려고 할 때 부딪히는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열에 아홉은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만다.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했다 말았다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들은 몸무게가 빠지기 시작했을 때
평소의 습관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시 정상체중보다
많이 나가는 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 먹는다.
패러다임은 자동온도조절기나 자동조종장치와
똑같이 움직인다.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을 방해하는 적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적이 바로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느낀다.
패러다임은 어떻게 나를 지배하는가
그러나 성공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율하려면
자신이 무엇으로 통제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즉 자신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무엇이고
그 패러다임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게 되고 늘 지게 된다.
이해는 의심과 걱정의 반대편에 있다.
패러다임이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는지
이해할 때 게임을 뒤집을 수 있다.
나는 왜 내가 바뀌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 후 도약하기 시작했다.
패러다임이 무엇이고 어떻게 자신을 제어하는지
이해할 때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계속 유지하고
적당히 먹을 수 있다.
몸이 마음의 도구임을 개달았기 때문에
몸을 통제하기 시작하고 몸은 마음의 작용에 복종한다.
몸은 섬세하면서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도구로
강하게 새겨진 생각에 기꺼이 반응한다.
그리고 생각의 습관은 좋든 나쁘든 몸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에는 반대편, 즉 대립하는 면이 있다.
앎은 '이해' 의 근거가 된다.
이해를 구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바로 공부다.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이해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믿음은 공포와 대립한다.
믿음은 불안 대신 웰빙 well-being 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웰빙은 유쾌한 기분으로 표현된다.
모든 것은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생각이 그 존재를 좋은지 나쁜지 결정한다.
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지극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목표가 없고 목적이 없으면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는 다 끝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학교는 실제로 어떻게 공부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잠재의식에
새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 자기계발에는 결승선이 없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끝내는 데 익숙하지만
실은 절대로 공부하는 것을 끝마칠 수 없다.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우리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고 있고,
우리의 결과 역시 계속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뭔가를 추구할 때
불편할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정말로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그 어떤 성장도 없으리란 걸 안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는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언제나 승리한다.
만일 패러다임을 이해했다면
패러다임을 바꾸기를 게을리하거나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가능성은 완벽하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
진정으로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밟기 시작하고
그 때마다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나아지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네빌은 저서 <의식의 힘> 에서
'욕망하는 상태로부터 생각하기' 를 언급했다.
다시 말해 이미 그 상태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의미다.
이는 우리의 상상이자 우뇌의 작용이다.
욕망하는 상태로부터 생각하는 것은 창조적인 삶이다.
법이나 공학, 회계분야에서 일하는 극도로
좌뇌형인 사람은 이를 실천에 옮기느라
어려움을 겪지만 일단 이해하기만 하면 진심으로 실천한다.
좌뇌형 사람은 매우 단호하기 때문이다.
우뇌형 사람은 좀 더 유동적이다.
이들은 개념보다는 진동과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논리는 많은 사람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 중 하나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른 힐러리경은
남들이 보기에 비논리적인 일을 했다.
모든 위대한 도약은 논리에 저항하는 데서 시작한다.
흔히 사람들은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이어선 안된다.
나는 목표를 설정할 때 현실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논리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나는 어떤 일이 실용적이면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완전히 비논리적인 일을 하길 원한다.
위대한 진보는 모두 철저하게 비논리적이다.
정말로 잠재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살지말고,
스스로 겁먹을 수준의 목표를 정하자
자신이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며
법칙에 따라 노력하고 있음을 안다면
그 목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해서
항상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목표가 가리키는
주파수에 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기적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믿음은 인생의 모든 것을 형성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믿어라, 그러면 믿음이 사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라고 말했다.
지금의 자신을 다시 평가하라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꿔놓는 것은
반복 이다.
관건은 우리의 신념체계를 바꿔놓을 생각에
반복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이야기 하고
우리가 왜 그토록 훌륭한 사람인지
온갖 근거를 들어 지지하는 말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믿는 법
새로운 신념체계를 세우면서
사람들은 당장 원하는 결과를 마주하지 못할 때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믿음은 주관적인 마음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잠재의식 속에 올바르게 뿌리를 내린 후에야
성과로 발현된다.
문제는 Praxis
즉 믿음과 행동이 통합되어야 한다.
작가 조지 레너드는 저서 <마스터리> 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중하다 보면 정체기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언제 그런 도약이 찾아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에 우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통달했을 때 엄청난 변화가
충격적일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다.
나는 1년에 4000달러를 버는 수준에서
매달 1만 4500달러를 바뀔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무언가에 통달했을 때 벌어진다.
이 과정에 걸리는 기간은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그 기간이 반복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이 고심하느냐에 달렸다.
반복이 핵심이다.
의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오감을 닫고
집중하고자 하는 생각에 마음을 끌어올 수 있다.
골프선수 등 뛰어난 운동선수들은 그렇게 한다.
성과가 뛰어난 영업사원들도 그렇게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이들은 집중한다.
하는 일에 전념한다.
여기저기 방황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신은 아니지만 신의 표현이며
신과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예수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한 14:12)"
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에겐 무한한 힘이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다.
감성은 우리 마음의 주도권을 쥐고 우리를 움직이지만
지성은 감성적인 마음에 무엇이 깃들 것인지를 정한다.
잠재의식은 오직 연역적으로만 사유한다.
다시 말해 잠재의식은 받아들이기만 할 뿐
거부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의식적인 마음은 귀납적으로
사고할 수 있기에 우리는 잠재의식에 무엇이
깃들지 선택할 수 있다.
귀납적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저 동면에 빠진 듯 활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잠재의식 속에 꽂혀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 것이다.
생각하라, 무의식을 경계하라
잠재의식은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이며
우리가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러나 의식적인 마음은 무엇이 무의식에 들어갈 것인지
지시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만 보더라도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음을 알 수 있다.
잠재의식에 휘둘려 반응하지 마라
모든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대응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은 1000분의 1초 일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반응' 할 것인지 '대응'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반응만 한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에 내가 화가 났다면
나는 그에게 내 선택권을 넘겨준 것과 같다.
그가 나를 화나게 하도록 허용하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잠재의식에 휘둘린 것이다.
대응은 다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을 했다면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왜 저사람이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해.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 아니야.
나는 그가 말한 것과 달리 정말로 멋진 사람이거든.
저 말을 인정할 필요가 없어."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활용하는 몇 가지 요령이 있다.
우선 종이 한 장에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그 문제를 써본다.
그러고 나서 다른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묻는다.
'얼 나이팅게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정신적으로 나이팅게일의 기운을 받아보려고 노력한다.
'나폴레온 힐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
그 후 또 다른 어딘가에 앉아 이렇게 묻는다.
'앤드류 카네기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지?'
토머스 에디슨이나 헨리 포드 등
여섯 명을 골라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빙의된다.
곧 나는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꾼 다음에는 높은 차원에서
낮은 차원으로 움직여야 한다.
높은 차원에서 낮은 차원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영혼에서 시작해 이성으로, 육체적 범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영혼은 생각의 차원에 있다.
우리는 밖에서 안을 향해서가 아니라,
안에서 밖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