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6)20230815
퇴사일자를 결정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회사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성격 상 나는
마지막 근무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까지 퇴사를 실감하지 못하고
몇 년은 더 다닐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다가
마지막 근무가 끝나는 퇴근시간이 되고 나서야
퇴사를 실감할 것이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전 직장을 퇴사할 때도 그랬다.
아무렇지 않게 계속 다니다가
마지막 근무일 근무하는 공간에 불을 다 끄고
나는 눈물이 터졌다.
약 2년 간 고생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전 직장은 지금 직장처럼 100% 사무직이 아니었다.
대민도 하는 업무였는데
그 때도 인간관계의 (여러 사람들을 관리)
스트레스 때문에
(지금도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있지만 종류가 다르다)
퇴근시간이 되어 눈물을 훔쳤던 적이 몇 번 있다.
정신적으로 고양되어 있을 때,
즉 책을 많이 읽고
일을 열심히 하고
제 3의 눈이 열려있을 때
나는 주로 엔젤넘버를 보는데
얼마 전 도로에서
3333333
5555555
7777777
을 하루에 연이어 보았다.
지나가는 트럭의 전광판에서
태어나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나는 시계 종류 이외의 것에서
엔젤넘버를 본 적은 없다.
몇 주전 꿨던 커다랗고 긴 뱀의 똬리를 튼
허물을 보는 꿈과 함께
삶에 큰 변화(좋은 의미에서) 가 있을거라는
암시라 생각하고 내심 기대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전 직장은 '빡침' 이 주를 이루었다면
현 직장은 '두려움' 이 가장 큰 화두였던 것 같다.
인간관계든 업무든 전 직장보다 난이도가 높아졌지만
그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항상 다리를 동동 구르는 백조처럼
불안했다.
잘 하고 있지만, 잘 해야하는
전남친과 다닐때도 업무 외 시간에
회사 건물 근처로 가는 걸 싫어했고
빙 둘러다녔다.
특히 1달에 한 번 새벽출근을 해서
마감을 하는 것은 몇 년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출근 하루 전 날부터
올라오는 우울감에 이유 없이 운 적도 많다.
평소보다 몇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 뿐인데
마감이라는 불확실성과 더해져
(특히 아무도 없는 도로와 횡단보도를
깜깜한 새벽에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떠가며
가는 것은 외롭고 쓸쓸했다)
이제는 한창 더운 한 여름에
가장 바쁜 업무시즌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남들 여름 휴가 가고 즐기는
여름이 나에게도 여름이라는 단순한
계절의 의미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퇴사를 생각하기 전까지는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들이
새삼 참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난 이제 좀 자유롭고 싶다.
남들이 봤을 때 단정해보이고
남들이 봤을 때 돈을 안정적으로 벌어보이고
남들이 봤을 때 책임감이 많아 보이고
남들이 봤을 때 회사원 같은 것 말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머리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내가 좋아하는 걸음걸이로 걷고 싶다.
남들이 봤을 때 이상한 행동도 하고
크게 웃고도 싶고
제일 하고 싶은 건 사람 많지 않은 바닷가에
나를 좋아해주는 누군가와 둘이 가서
두 손을 하늘로 뻗고 고함지르면서 뛰는 것이다.
(퇴사가 한겨울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다 ㅎㅎ)
ANYWAY 나의 몇 년의 청춘을 갈아넣었던
회사를 떠나려고 하니까
떠나려고 결정을 했음에도
껍질을 벗겨내는 듯한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회사 사람들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다
이미 나는 그 전까지 혼자서 많이 울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는 것을 보이는 것은
낭비라 생각한다
깔끔하게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