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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디남 Nov 15. 2021

서울 사회초년생의 우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모범답안의 진실에 대해서 

  한국은 정답이 있는 사회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구해야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살아가는 것이 모범답안이라는 것이 정해져있다. 그리고 그 모범답안의 이데올로기는 생애 전반에 걸쳐 나에게 주입되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는 이 모범답안의 실체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범답안에 맞추기 위해 평생 노력했지만 이 노력을 앞으로도 평생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만나는 학교의 교사, 학원의 강사, 인터넷강의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대학에 가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신데렐라같은 이야기를 주입받았다. 어찌되었든 살면서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거나 왜인지 알 수 없는 멸시를 당할 것이라는 절망을 가지고 스무살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좋은대학 이데올로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약간 변형된 기출문제처럼 20대 초중반에 다시 한 번 나타났다. 이번엔 '좋은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이 '중소기업에 들어간다면'이라는 구절로 약간만 바뀐채 공포감을 조장했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중소기업에 들어간 지인A가 이렇게 산다더라'와 같은 근거를 알 수 없는 낭설들이 퍼져있었고 마치 거기에 문을 두드리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있었다.


  운 좋게 대기업에 들어왔지만 모범답안은 또다시 변형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서울에 집 한 채를 얻지 못하면',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하면'이라는 구절이었다. 게다가 이번 모범답안은 조금 더 독한 녀석이었다. 이번엔 '사실 좋은 대학가든 좋은 회사가든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넌 평생을 속은거야! 하지만 진짜 행복하려면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다주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하고..' 실제로 최근 20-30대에게는 이러한 담론(FIRE족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N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부동산 투자를 빨리 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가져야만 한다는 이야기)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이나 직장과는 달리 노력해서 몇억을 만들고, 수십억으로 불리라는 이야기의 무게감을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열정과 패기로 도전을 해야한다는 나이이지만 나는 이제 지치고야 말았다. 평생을 모범답안에 맞추어 살아가려 했고, 어디서부터 계속 날아드는 '이래야 행복하다'는 이야기에 동조했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이대로 생각없이 살아가다가는 죽을 때까지 주변으로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하는 삶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잠깐 멈춰 서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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