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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Dec 11. 2017

일상 - 2017.12.03

집이 주는 온기와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는 지에 대하여

추웠다.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잤으나 남자의 신장이 큰 탓에, 몸 여기저기가 이불의 밖에 나와있던 탓이다.

남자는 새삼 원룸과 아파트의 차이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어제 입었던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시흥으로 떠난 지 두 달이 지났기에, 그 동안 못 본 사람들이 떠올랐다.

집 근처에 아직도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옛날에 일했던 카페들, 다녔던 미술학원등..

일단 남자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 집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가기전에 씻어야 했기 때문이다.


씻고 거실로 나오자 어머니가 아침을 차려 주셨다. 버섯, 숙주나물, 청경채, 소고기 등이 준비된 샤브샤브였다. 남자가 좋아하는 식자재들이 많았다. 남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샤브샤브를 먹었다.


아들. 잘 지내지?

네. 잘 지내죠.

아들이랑 이렇게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여자 친구는?

소고기가 맛있네요.


남자는 괜히 소고기를 뒤적거렸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남자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 후  동네 피씨방으로 향햤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 두 어가지를 하고, 저녁을 먹으며 근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게임은 재밌었지만, 왠지 오래 할 수 없었다.

남자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게임을 하는 시간을 점점 줄였다.

허무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임안에서 남자는 축구선수가 되고, 협곡을 누비는 강력한 챔피언이 되었고, 멸망한 세상을 가로지르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남자가 아님을 알았기에 더 이상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어쨌든, 남자는 해가 지는 거리에 서서 또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보았다.

문득, 남자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너희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냐.

한 친구가 대답했다.
나이트를 가지.

나이트?

뭐 가서 술먹고 춤추고 놀고 있으면 웨이터가 여자 손목을 잡고 데려와. 이쁘다 싶으면 이야기 나누다가 밖에 나가서 술 더 먹고. 그 다음은...으흐흐.

친구는 괜히 혀를 날름거렸다. 남자는 웨이터에게 손목을 잡히고 남자의 테이블로 다가오는 광경을 상상했고, 그 여자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나이트는 남자처럼 먼저 여자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괜찮은 장소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비록 술을 잘 하지도, 춤을 잘 추지도 못하지만 나이트를 가보기로 했다.


남자는 부천 상동에 있는 나이트를 가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구에 도착하자 현란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남자를 맞았다.

어유. 형님. 어서 오세요! 몇 분?

혼자요.

혼자?

사람들의 반응이 뭔가 매우 놀란 눈치였다. 음. 뭐지. 혼자 오면 안되는 것인가.

찾으시는 웨이터는 있으시고?

없습니다.

마흔정도 되 보이는 현란한 정장을 입은 한 웨이터가 남자를 안내했다. 웨이터의 뒤를 따라가다보니 커다란 문에 도착했고 그 문을 열자

엄청나게 커다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의 끝에 있는 스테이지에는 무지막지하게 현란한 조명과 음악이 흩뿌려지고 있었고, 그 앞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테이블과 의자가 줄을 서 있었다. 남자는 웨이터를 따라가 그 중 한 테이블에 앉았고, 웨이터가 말하는 기본셋팅의 가격 6만원을 지불했다.

잠시후에 둥그런 철판위에 올려진 몇 가지 과일 안주와 자그마한 맥주 세 병, 그리고 유리잔이 약 5개 정도가 테이블이 놓였다.

세팅을 끝낸 웨이터가 맥주를 따 남자에게 따라주며

잠깐만 기다려. 언니들 데려올게.

라고 속삭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재떨이를 발견하고는 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 공간에 비해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 다섯 테이블 남짓인가. 그 중에 두 테이블 정도는 남자만 있는 테이블이었고, 여자는 세 테이블 정도 있었다.

잠시 후에, 한 여자가 웨이터에게 손을 붙잡혀 남자의 테이블로 왔다. 웨이터는 유리잔 하나를 집어 여자의 손에 쥐어주고 남자의 손에는 맥주병 하나를 쥐어 주었다.

남자는 여자의 잔에 맥주을 따라주며 여성을 살폈다. 흰 피부에 콜라병을 닮은 좋은 몸매. 귀여운 눈웃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남자는 술도 잘 못하고, 춤도 잘 못췄기에 그나마 자신있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남자는 자신을 설명했다. 시흥에 살고 안산에서 일을 하며 공장에서 생산직을 하고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남자는 글을 쓸 때 익명이고 싶었기에).

여자는 남자의 그림에 관심을 보였고, 남자는 핸드폰으로 그림들을 보여 주었다. 여자는 그림들을 보더니 이쁘다고 칭찬해주고 자신은 건축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는 재밌었다. 남자는 여자가 마음이 들었고, 여자도 남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여자는 남자에게 친구는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 저 혼자 왔어요.

네?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저 친구가 있어서..이만 가볼게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웠다. 이런 제기랄.


아무래도 혼자 나이트에 오는 것은 영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번 정도 더 웨이터가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왔으나, 혼자 왔다는 남자의 말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남자의 테이블을 떠났다.

후...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나이트도 남자의 외로움을 달랠 수단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주 가던 바나 가야지. 남자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 외투를 입으려고했다.....

그런데 웨이터가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기에. 이 여자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저. 혼자 왔어요.

남자는 먼저 선수를 쳤다. 차라리 처음에 이야기 해버리는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대답은 여태까지 들어 왔던 말과는 달랐다.

왜 혼자 왔어요?

괜찮을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출신 고등학교 이야기도 하고, 직업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다가 결국, 남자에게 그 여자도 친구가 있다는 말을 했다.

아. 그렇구나.

남자는 고개를 떨구었다. 역시 안될 것 같아.

그런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남자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남자는 여자가 마음이 들었기에, 연락처를 주었고 서로 연락처를 저장했다.

오늘은 친구가 같이 있어서 안되고, 다음에 봐.

여자는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나이트를 나섰다.

남자는 나이트를 나와 집으로 걸어가며 여자와 카톡을 주고 받으며 생각했다.

나이트는 참 신기한 곳이다. 조명과 음악 사이에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외로움을 달랜다. 어쩌면 그날 밤 뭔가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남자의 친구가 낸 의견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뭐랄까. 인연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남자는 집에 도착할 때 쯤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이 여자와 언제 다시 만날 것인가. 와 나중에는 친구와 함께 가 볼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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