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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r 20. 2017

퇴사

끝, 그리고 시작

(음주를 하며 쓴 글입니다.)

남자는 퇴사했다.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유니폼과 교재, 그리고 매장 열쇠를 반납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사물함에 있던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문을 나섰다.


밤 아홉 시. 남자가 매장문을 나선 시간이었다. 이제  무르익기 시작한 밤에 사람들이 흥청거렸다. 남자는 거의 서로 애무하듯이 붙어있는 커플들을 피하며 길을 걸었다.

언제 마지막 연애를 했던가. 이 년 전이구나.


남자는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손길에 마음을 담고  여성의 살을 맞잡고 부벼본적이 그렇게나 오래 됐던가. 퇴사를 하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이렇게나 지난것들이 많구나.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자는 혼자 연애라도 해볼까. 하고 혼잣말을 해보았으나, 갑자기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최소한 남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늘은 왠지 술이 한 잔 하고 싶은데. 남자는 거리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렸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을 때, 남자는 가끔 칵테일 바를 들리곤 했다.

대부분의 칵테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남자는 쿠바 리브레 라는 칵테일과 블랙 러시안, 그리고 싱가폴 슬링이라는 칵테일을 좋아했는데, 쿠바 리브레가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것의 재료를 알게 되었을 때는 으음-. 하고 낮은 신음을 낼 정도였다. 싱가폴 슬링은 남자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의 제일 맑고 아름다운 순간을 잠시나마 되돌이켜주는 매개체였다. 남자는 칵테일 바에 싱가폴 슬링이 있기를 바라며(한국에는 진짜 싱가폴 슬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길을 옮겼다.


남자의 시야에 칵테일 바가 하나 들어왔다. 출퇴근을 하며 몇 번 봤던 곳인데, 늘 다음날 출근을 걱정하며 지나치던 곳이다. 남자는 주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숙취도 심했다. 내일 아침에 전시회장으로 그림을 가져가야 했지만, 그 정도야 괜찮겠지. 시간이 넉넉하니까. 퇴사도 했으니까.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칵테일 바로 향했다.


칵테일 바에 혼자인 손님은 남자 하나였다. 가게에 들어선 남자는 집게 손가락을 들어 혼자임을 알리고, 바에 앉았다.

아쉽게도 쿠바 리브레와 싱가폴 슬링은 메뉴에 없었다. 남자는 아쉬운대로 블랙 러시안을 시키고, 갑자기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의 목록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시간 순으로.


호텔 연회장 (주말에만 근무함)

경기장 경호원 (해당 종목의 시즌에만 근무함 EX.축구,농구)

경기장 기념품 판촉사원(위와 동일)

엑스트라(영화,드라마,CF등)

조선소(회사에 근무, 군대가기 전까지 근무)

까페베네(평일 마감조. 군대 갔다 온 후)

웨딩홀(알바로부터 시작 직원까지. 약 2년을 근무)

죠샌드위치(샌드위치 제조 및 음료 만들고, 도보로 배달을함)
개인 까페(핸드드립을 전문으로함. 혼자 매장에서 근무함.전 여자친구를 만남)

롯데렌터카 단기렌탈담당직원(하루에서 일주일 정도 짧게 차를 빌리는 고객을 담당함)

빌리엔젤(케이크 전문점. 매니저로 일함)

커피빈(가장 최근에 일함.인턴부터 정직원 바리스타까지 근무)


기록할 만한 것은 열 한 개 정도 되나...남자는 몇가지 짜잘한 일들은 목록에 넣지 않았다. 마침 목록을 작성하는 도중에 칵테일이 나왔다. 남자는 기쁘게 칵테일을 마시고 글을 이어갔다.


남자가 갑자기 해온 일들의 목록을 작성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자는 사실 회사를 퇴사하고 불안해 하고 있었다. 비록 화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남자는 비참하게 살다 간 화가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아. 남자는 방금 잔을 다 비우고 사장님이 주신 메뉴판에서 싱가폴 슬링을 발견했다.아까는 왜 발견 하지 못한 것일까. 남자는 기쁜 마음으로 싱가폴 슬링을 주문했다.



여튼, 남자는 불안했다. 안정된 정규직을 버리고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주위의 비판도 있었다. 특히 부모님의 비판이 컸다. 최근에 부모님은 부천 외곽의 초라한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는데, 그것은 어서 남자가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의사의 표시기도 했다. 부모님은 남자가 차라리 사고(?)를 치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직장도 있고 집도 있는데 도대체 왜 결혼을 하지 않는 거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직장은 없어졌으니 한 가지는 줄은 것인가. 술기운 탓인가. 남자는 괜히 기분이 좋아 글을 쓰다 웃엇다.


남자는 몇 번이고 부모님에게, 또는 주위 사람에게 설명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연애는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 만난 여자와 어느 일이 생겨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남자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남자도 그들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남자는 글을 쓰며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남자에게 예술이란 남자 자신, 그리고 보고 읽고 느끼는 사람들의 치유였다. 그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이 시작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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