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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y 12. 2017

29 -1-

한 해를 정리하며

'생각보다 달지 않았던 케잌'을 완성하고 나서, 남자는 그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처음에 목표로 한 

'책 표지의 제작'

이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림 자체에 주제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넣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은 남자에게 소설과 큰 틀에서는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지금까지 그려온 세 개의 캔버스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림을 배우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림을 일 년 반 동안 배우면서, 소설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완성하며 첫 번째 꿈을 달성했고, 표지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완성하면서 두 번째 꿈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이상형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한 여인을 만났고,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직장을 세 번 옮겼다. 직장을 옮기면서도 그림을 배우고, 소설을 써 가며. 살아가며 돈을 계속 써야 했기 때문에, 늘 돈에 허덕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분명 기쁜일도 있었지만, 힘든 날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남자는 애인과의 헤어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쓸쓸하고, 힘든 한 해였다.


"선생님."

"네?"
"이번에는 정말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일단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이었으면 좋겠고, 더러 누군가는 제가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그림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래서..이번에는 제 올해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늘 성호씨는 독특한 그림을 그리네요."

선생님이 방긋 웃었다. 남자는 간단한 스케치를 그려 선생님에게 그림을 설명했다.

"올해는 정말 힘들었죠...일터를 두번이나 옮겨서 지금은 세 번째 직장에 있고..완성한 '멀라이언 스노우볼'은 표지까지 준비했지만 삼십 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고, 그 보다 더 많은 공모전에서 탈락하고..사랑했던 애인은 뜬금없이 이별을 고하고 말았고..어느덧 서른이 다가오고 있어요...정말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려고 합니다."




남자는 일단 캔버스에 검은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푸른색으로 바람의 결을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갈 것이기에, 그림이 진행 되는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이어야 했고, 마찬가지로 바람의 결의 방향도 왼쪽에서 오른쪽이어야 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손의 움직임을 신경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붓질을 했다. 음. 좋아. 결을 완성한 남자는 오른쪽 위에 달을 그렸다. 달은 주인공의 희망이 될 것이다.





달과 결을 완성한 남자는 왼쪽위에 별들을 그리고, 눈이 덮인 땅 위에 나무들의 기둥들을 그렸다. 남자는 나무들의 기둥을 그리며, 옛날 싱가포르에 있던 아쿠아 리움에서 본 바닷뱀의 일종이 생각났다. 몸을 땅에 박고 흔들거리며 근처에 오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종류였다.




너무 큰 기둥만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들은 남자는 몇 개의 자그마한 나무들을 그리고, 왼쪽의 큰 나무들 중 두개를 묘사해보았다. 

"와우."

"?"

어느새 남자의 뒤에 도착한 선생님이 낸 소리에, 남자는 붓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좋아요. 계속하세요."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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