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Kim May 11. 2017

생각보다 달지 않았던 케잌

사랑의 아픔에 관하여

남자가 지금까지 그린 '멀라이언 스노우볼'과 '바다로부터 바다로'는 이미 예전에 남자의 머릿속에 심어져있던 이미지를 그린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바다로부터 바다로'를 완성할 무렵, 새로운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는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그리고 있었을 무렵에, 사귀고 있던 애인과 결별을 했다. 아직 날씨가 추워 혹여나 애인이 감기에 걸릴까봐, 그녀가 좋아하는 자몽청을 담아 그녀가 살고 있던 기숙사로 보내기 위해 주소를 물어봤을 때, 그녀가 남자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어떠한 이별의 징후도 없었고, 남자는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심장이 잘게 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혼자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었나. 헤어질 거라면 왜 어떠한 언질도 주지 않았나. 나의 아픔을 치유해준다고 나에게 약속했었는데.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했으면서.


그 기분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말했었다.

"생각보다 설레지 않았어."

마침 남자는 케잌을 위주로 판매하는 카페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카페에서는 체리소스를 얹은 케잌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붉은 액체가 흰색의 치즈 케잌을 따라 흐르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을 수 있었다. 남자의 마음을 날카로운 칼과 나이프로 베어먹은 여자. 그리고 생각보다 맛이 없었던 남자의 마음을 형상화한 심장. 


남자는 커다란 캔버스에 주황색을 칠해 테이블을 나타내고, 접시에 담긴 남자의 심장과 나이프, 그리고 칼을 스케치했다. 남자는 심장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인터넷에 '심장'이라고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심장의 이미지는 아주 많고, 자세히 나와 있어 참고하기 아주 좋았다. 심장이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은 고등학생때 접한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림으로 그리려니 더욱 더 복잡했다. 여러가지 근육과 혈관이 존재했고, 그것은은 각기 다른 모양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심장을 최대한 섬뜩한 붉은 색으로 칠하고 싶었다. 그래야 남자가 겪었던 고통이 더욱 더 자세히 표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심장을 채색하는 것은 매우 섬세한 붓질을 요구했다. 심장의 근육들과 그 근육들 사이에 존재하는 판막, 그리고 혈관들과 근육들의 명암(명암은 정말. 그림의 기본이었다.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그림의 완성은 생각보다 오래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려온 어떤 그림보다 남자에게는 아픈 그림이었다. 붓을 놀릴 때마다, 그때의 아픔이 전해져왔다. 몇 달이나 지난 상태였고,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흘렀지만 여전히, 그 때의 통화에서 듣던

"생각보다 설레지 않았어."

그 한 문장이 남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잘려진 케잌의 단면에서 흐르는 피, 체리 소스 같은 그 피를 그려낼때, 남자의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 아픔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생각보다 달지 않았던 케잌.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로부터 바다로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