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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y 27. 2017

꺼지지 않을 횃불 -1-

태동하는 생각

남자는 '29'를 완성하고, 어떤 생각이 자신의 안에 움트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손에서 태어나는 멋진 그림들과, 그 그림들을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이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몇 년전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완성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소설과 그림이 공존하는 남자만의 세계.

안될 것은 없었다. 다행히도 남자는 늘 투잡을 하는 것에 익숙해있었고, 그 두 개의 일상들이 남자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은 남자의 생각을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술자리, 또는 커피를 두고 앉은 자리 등에서 남자의 생각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 경우가 많았다.

"너 소설도 몇 년 동안 한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출판도 못했잖아."

"완성한지 이제 일 년 째야. 여기저기 공모전은 넣고 있고, 최근에는 자가 출판도 생각하고 있어."

"자가 출판은 별 의미가 없지 않나? 그리고 너도 이제 나이가 좀 있으면 서른이야. 네 꿈만 쫓을 나이가 아니지. 언제까지 그렇게 변변한 직장없이 그러고 살거야?"

"..."

등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남자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주위 사람들이 남자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모두 맞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먼 싱가포르에서 겪었던 사건 하나로 이루어진, 오래되고 맑은 꿈과 그 꿈으로부터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꿈...모두 안고 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을거야. 비록 언제 밝은 빛이 비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을 향해 살겠어.


남자의 생각은 점점 또렷해졌고, 그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캔버스에 스케치를 해보았다. 커다란 파도가 다가오고 있고, 풍랑에 시달린 주인공이 자그마한 나룻배에 서서 횃불을 치켜들고 있다. 횃불은 작고, 파도는 크다. 주인공이 가진 것은 풍랑에 시달려 낡아빠진 옷 하나와 나룻배 뿐이다. 그것만으로 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와, 폭풍우로부터 횃불을 지키려고 한다.




남자는 선생님과의 상의 끝에 주인공의 크기를 조금 키우고, 상체만 드러내기로 했다. 




남자는 주인공이 횃불을 잡고 있는 장면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아, 자신의 손을 사진을 찍어서 스케치를 해 보기도 하였다.



기본 스케치를 끝낸 남자는 바다와 하늘을 묘사해보았다. 폭풍우가 치고 있었기에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격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멀라이언 스노우볼'때 배운 붓터치보다는 조금 더 과격하고, 조금 더 활기차게 붓질을 해서 하늘을 완성시켰다.

하늘을 완성시키고 난 후에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를 묘사해보았다. 남자는 파도에도 좀 더 빛이 비추는 부분과 덜 비추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파도의 두께가 두꺼운 쪽도 있을 것이고, 얇은 쪽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듬성듬성 붓질을 했고, 남자의 의도대로 파도 사이에 흰색이 조금씩 드러나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이게 되었다.

막 넘어오기 시작하는 제일 윗 부분은 조금 더 밝을 것이고, 그 끝에는 포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탄 배에 조금은 안정감을 주기 위해, 주인공의 배가 떠 있는 바다도 그려주기로 했다. 그것은 선생님이 보았을 때, 그림이 너무 절망적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주인공이 절망을 헤쳐나가길 바랬던 것이지, 절망에 무너지는 광경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남자는 파도에 좀 더 생동감을 주기 위해 넘어오는 부분을 추가했다. 주위의 평가에 의하면 파도가 너무 벽 같아 보인다는 조언에 따라 추가한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배가 떠 있는 파도에도 약간의 포말과, 명암을 추가했다.





하늘이 너무 어두워 보였기 때문에, 약간은 밝게 처리를 해주고, 파도 끝의 묘사를 조금 더 깔끔하게 다듬어 주었다.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있어야 했다. 구름을 그리고, 번개를 그렸다. 남자는 조금 더 바람에 대한 묘사를 하고 싶엎지만, 너무 상세한 묘사가 들어가면 시선이 주인공이 아닌 하늘로 집중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마음을 바꾸었다.



그날 미술학원을 나서고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이번 달 카드 통지서를 문자로 받았는데 그 금액이 마치 다가오는 커다란 파도처럼 보여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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