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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Aug 16. 2017

기행문 - 속초, 첫째 날

낙산사와, 아픈 추억의 장소

남자는 강릉에서의 짐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다음 목적지인 속초로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을 뭘 먹어야 할까. 어제 꽤나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남자는 해장을 하기 위해 다소 얼큰한 음식을 찾았고, 마침 숙소 앞에 '짬뽕해물순두부'라는 이름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짬뽕해물순두부. 조그마한 오분자기와 쭈꾸미 한마리 바지막 조금 순두부와 두부의 중간형태를 띈 두부가 내용물이다.



해산물이 들어가있고, 국물이 아주 얼큰해 해장으로는 더할나위 없었다. 남자는 순두부를 다 먹고 편의점에서 헛개나무와 커피를 사서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어느정도 정신이 들고 나자 남자는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시간과 지금 시간을 확인하고(법률상 음주운전의 기준은 마지막 술을 마신지 9시간이 지나야 음주운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가 마지막 술을 마신 시간은 새벽 2시, 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식사를 마친 시간은 약 12시정도였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남자는 네비게이션으로 다음 목적지인 속초를 검색했다. 예상소요시간은 약 1시간 20분 정도였다.  지금 시간은 12시, 속초에서의 체크인은 약 3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하던 남자는 남자가 이동할 경로에 '낙산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낙산사'와 속초는 근처에 위치해 있었기에 남자는 낙산사에 들렸다가 속초로 가기로 하고 출발했다.


낙산사는 꽤나 붐비고 있었다. 남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렬한 햇볕을 느꼈다. 정오의 햇볕은 남자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간만에 떠난 여행에서 하릴 없이 시간을 버리는 것은 더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 표를 구입하고, 커다란 문을 지나자 사천왕이 입구에서 남자를 맞았다. 사천왕은 보통 절의 입구에 많이 있는 구조물이었는데,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명의 사천왕이 절의 입구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많이 세워져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가 불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불교에 대해 아주 야트막한 지식이 있었다. 남자는 사천왕들에게 한 번씩 합장을 하고, 낙산사로 들어섰다.




낙산사를 오르는 길은 뭐랄까. 운치있었다. 유명한 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엄한 이미지보다는, 아담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길이었다. 남자는 아버지를 따라 옛날에 이름 난 절을 몇 번 다닌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큰 절은 구조물이 사람을 압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었다. 크고, 견고하고, 웅장한 느낌.

그러나 낙산사는 대부분의 것들이 오밀조밀한느낌을 주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비록 길의 경사면은 꽤 높은 편에 속했지만 그 오밀조밀함 덕분에,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길을 올랐던 것 같다.


길을 오르던 남자는 먼저 대웅전에 들리기로 했다. 아버지는 늘 남자에게 말했다. 절을 들리면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에게 절 세번을 하고 나오라고. 남자는 대웅전으로 들어섰고,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은 젊은 남자가 반팔과 버캔스탁 차림으로 대웅전을 들어서자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남자는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방석을 가져와 부처님을 향해 세 번 절하고 대웅전을 나섰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의 눈에 '해수 관음상'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로 가보자.


'해수관음상'은 낙산사의 거의 정상에 있었다. 해수 관음상은 산의 정상에서 바다쪽이 아닌 내륙쪽을 바라보고 있는 관음상이었는데,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절을 하고 있었고 더러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해수 관음상을 등지고 해변쪽을 바라보면


이 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남자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앞으로 남자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지금까지 남자가 했던 일들이 무의미한건 아닐까. 열심히 살았지만, 그것들이 모두 허송세월은 아닌가. 남자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등등 고민들이 남자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남자는 다시 길을 내려오다가 다시 대웅전을 들렸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한 시.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남자는 간만에 백배를 해보기로 했다.

남자는 다시 대웅전에 들러 방석을 깔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나, 둘, 셋..남자는 절을 한 번 할때마다 횟수를 세어갔다. 삽십배가 넘어가자, 남자의 머릿속에 있던 고민들이 점점 형태를 갖춰갔고, 남자는 그 고민들을 더욱 더 파고 들어갔다. 그동안 일하며 겪었던 수많은 손님들의 갑질과, 사장들의 불공정한 대우, 받지 못했던 돈들과 이상한 근무형태등. 원래 그런거야. 라며 넘겼던 이해할 수 없는 관행들과 스쳐지나갔던 여성들과, 깊게 얽혔던 인연들. 아픔과 행복. 그리고 하나를 선택하며 포기했던 하나들과 앞으로 하기로 한 아주 새로운 길.

팔십 배가 넘어가자, 고민들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남자는 부처님을 좋아했으나, 믿지는 않았기에 답을 바라진 않았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남자는 부처님에게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부처님을 향해 계속해서 절을 했고 백 배를 다 마치고 나서 한동안 부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다가, 합장으로 마무리 하고 대웅전을 나섰다.


대웅전을 나서고, 낙산사의 출구 근처에 이르자 남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뭉쳐진 실타래에서 실 한가닥이 쑤욱-. 하고 나오는 이미지였다. 그렇게 돌출된 한 가닥의 실이 계속해서 풀려져나왔고 두통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상상속의 실은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며 실타래는 점점 줄어들었고, 남자가 차에 탑승하여 시동을 걸 때쯤, 실타래는 모두 풀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난 후였다. 남자는 머릿속이 텅 빈 상태로 속초로 향해 엑셀을 밟았다.


남자가 묵기로 한 게스트 하우스는 '제임스블루'였다. 남자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체크인을 마치자 정확하게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는 그 당시 한 여자를 만나고 있었는데, 태안에 살던 그 여자가 보고 싶었지만 바로 그 여자에게 그녀를 만나러 태안을 가겠다고 하기가 어려워, 자신이 속초에 여행을 왔는데 온 김에 들려도 되겠냐. 라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제안에 좋다고 대답했고. 남자는 여자에게 도착하기 전, 며칠 동안 속초를 서성이며 들뜬 마음으로 태안으로 가는 날을 기다렸었다. 남자가 기억하는 속초의 이미지는 곧 다가올 사랑에 들뜬 마음으로 해변을 거닐던 도시였던 것이다. 그래. 나중에 여자와 함께 이 속초를 와야지. 그 여자에게

사랑하는 너를 만나기 전에 들뜬 마음으로 나는 이 속초의 해변을 거닐었었어. 

하고 말해줘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와는 속초를 오지 못하고, 몇 년만에 다시 혼자 속초를 찾았다.




남자가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물회를 먹는 것이었다. 속초의 물회는 신선하고, 넉넉했다. 물회에 곁들어진 매콤한 국물도 적당하게 얼큰했다. 남자는 국수를 말아 물회를 야무지게 먹고, 잠시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숙소를 나섰다.



속초의 해변은 여전히 멋있었다. 남자는 강릉의 해변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속초의 해변이 더욱 더 마음에 들었다. 같은 동해지만, 속초의 해변은 더욱 더 넓어보였다. 파도가 높고, 비가 자꾸 오락가락 하는 탓에 파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출입금지 팻말을 걸어놓은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해변이었다.

쏴아아-. 쏴아아-. 커다란 파도가 오고 가며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파도에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남자는 싱가포르에서 해변을 바라보다가 운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연인과의 헤어짐을 겪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오고가는 파도를 보며 남자에게 이상한 이별을 선사한 그 여자가 생각났고, 그동안 이해되지 않은 것을에 대해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래서 울음이 터져나왔고 그녀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마음 한 조각을 파도에 실어 떠내려보냈었다.


이번에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이제는 이별에 덤덤해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남자는 속초의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에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던, 그 최근의 여자친구에게 남아 있던 부서진 마음을 한 조각씩 꺼내어 떠내려보냈다.


그렇게 해가 졌다. 남자가 지난번에 속초에 왔던 때는 가을이었고 그때는 성수기가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속초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십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돗자리를 깔고 해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양초에 불을 밝혔다. 여기저기서 술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다가가 너무나도 흔한 멘트로 같이 놀자고 헌팅하는 모습이 보였고, 간간이 남자처럼 혼자 와서 파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는 그 흥청망청한 해변에서 오랫동안 혼자 파도를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잠에 들기전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고, 아직도 흘려보내지 못한 마음 조각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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