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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Aug 24. 2017

인생의 기로에 서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나열해본다.

남자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현재 따로 출근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에는 명확한 장단점이  있다. 출근할 일이 없다는 것의 장점은 하루 동안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수입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최근 돈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남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돈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늘 말하곤 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돈이 없다면 불행할 것이다.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가방에 읽을 책 기사단장 죽이기 1권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사 - 문학동네), 노트북, 담배, 핸드폰 등을 넣고,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집 열쇠와 지갑을 넣고 집을 나섰다. 남자는 지갑을 살짝 열어보았는데, 짙푸른 색의 천 원 몇 장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카페를 향해 걸어가며, 남자의 돈에 관한 고찰은 계속되었다.

남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전에, 일단 남자는 하나의 생물체이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소속된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첫째로 일단 음식을 먹어야 했다. 남자는 도시에 살고 있고,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탓에 모든 음식은 화폐로 구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남자의 덩치는 꽤 큰 편이었기에 매 끼니마다 거의 2인분에 가까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렇기에, 돈이 필요했다.

둘째로 남자는 의식과 주체를 가진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먹고 싶은 음식이 존재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좋은 옷을 입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캔버스, 물감, 붓, 종이 팔레트 등의 소모품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는 등 문화를 향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좋은 전자제품. 가령 예를 들어 노트북과 데스크톱, 핸드폰, 이어폰 등 다양한 것들이 필요했고.

좋은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해야 했다. 책은 참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데, 소설이 있었고, 만화가 있었고, 에세이가 있었고, 실용서도 있었다. 남자는 책을 자주 구입했다.

셋째로 남자는 가끔 활력이 필요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탓에 피시방을 자주 들리는 편이었으며, 주량이 아주 큰 편인 아니었지만 술자리를 좋아했고, 담배도 좋아했다. 가끔, 아주 가끔 모르는 여성과 만날 때도 있었으며 그때도 남자의 기준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피시방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술을 마셨는데. 그것에도 돈이 필요했다.


돈은 어떻게 해서 얻는가.


남자는 자신의 그림과 글을 돈을 주고 팔고 싶었으나, 남자는 남자의 포부에 맞는 실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 같았고, 그 포부에 맞는 실력을 가지기에는 더 많은 노력과 연습,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돈을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남자는 최대한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고 싶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고찰의 흐름이 이쯤 되었을 때, 남자는 카페에 도착했다. 남자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과 책을 꺼냈다. 

잠시 후에, 아이스 카페라테가 나왔고 남자는 카페라테를 빨대로 마시며 하스스톤을 몇 판 하고는 흡연실로 지정된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한 개비 피우고 앉아 브런치로 들어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 했던 고찰을 작성하고, 고찰을 이어간다. 샷이 세 개 가 들어간 카페라테가 제법 쓰다.



때문에 남자는 직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세상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덕에 이리저리 주워들은 것이 많았다. 그 얄팍한 지식으로, 남자는 며칠 동안 자신이 택할 만한 직업을 추려내 보았다.



1. 카페 매니저


월급 : 약 200~230만 원(세후)

하루 근무시간 : 10~12시간

휴무 : 주 1~2회(단, 평일만 쉴 수 있음)

노동강도 : 60/100

장래성 : 60/100

안정성 : 40/100

위험도 : 20/100


남자는 카페일을 꽤 오래 했다. 모두 합치면 약 4년 정도 될 것인데 체인점과 개인 카페를 모두 경험해 보았고, 체인점도 직영점과 가맹점을 모두 일해보았기에 사실상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모두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니기에, 어느 카페에 매니저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의 판단아 카페에 근무자로서의 가망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최근만 해도 남자가 근무하던 카페가 매출 부진으로 인하여 폐업을 하였고,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게다가 이번 정부의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폭을 보았을 때 앞으로 점점 영세한 카페들이 폐업을 많이 할 것이라는 것은 꽤나 신빙성이 있는 의견이었다.

직영점에 들어가면 장래성과 안정성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될 것이지만, 그것도 완벽한 보장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었다.


2. 카페 알바

월급 : 약 80~120만 원(세후)

하루 근무시간 : 6~10시간

휴무 : 보통 주에 1~2회

노동강도 : 20/100

장래성 : 60/100

안정성 : 20/100

위험도: 10/100


다시 알바로 들어가는 수도 있었다. 이 쪽은 매니저보다 책임감, 부담감이 훨씬 적고 일하는 시간도 적을 것이었지만 그만큼 월급도 적을 것이다.

게다가, 매니저보다 안정성이 훨씬 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거의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다.


3. 카페 사장

월급 :?

하루 근무시간 :?

휴무 :?

노동강도 : 90/100

장래성 :?

안정성 :?

위험도: 10/100


마지막으로 카페 사장이 있겠다. 남자는 카페에 오래 일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아이템도 개발하는 등 어느 정도 카페 사장의 역량은 갖춰졌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가끔 자신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적이 있었다.

때문에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그곳에서 정직하게 장사를 하며 남자의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손님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그 지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사는 것을 가끔 꿈꿨다.

그러나 카페를 열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돈이었다. 남자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입안이 턱턱 마르고, 입맛이 써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카페라테를 한 모금 들이마셨으나 역시 느껴지는 것은 쓴 맛이었다.


4. 목조 주택 건설업

월급 : 월급으로 추산하긴 힘들고, 일당으로 쳤을 때 초보 기준으로 약 10만 원~13만 원

하루 근무시간 : :8~10시간

휴무 : 비가 오거나, 기타 등등.

노동강도 : 90/100

장래성 : 80/100

안정성 :?

위험도 : 80/100


남자는 최근 지방에서 목조 주택 건설업을 하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약 4일 정도에 걸쳐 어느 회사 건물의 옥상에 정자를 건설하는 일이었는데, 꽤나 육체적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굳이 남자의 인생에서 비유할만한 일을 찾자면 군대에서 꽤나 힘든 작업을 할 때의 느낌이었는데 육체가 못 이겨낼 정도의 극한의 노동은 아니었으나, 하고 나면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 정도.

어르신(약 오십 줄을 넘기신)분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쪽 일은 꽤나 전망이 있다는 이야기였고, 팀장이 되면 하루 일당 30만 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비가 오면 일단 일을 못했으며(그 이유는 전기를 이용한 공구를 많이 쓰는 편이었는데 야외에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공구가 비를 맞으면 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일거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팀장이 일거리를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남자가 만약 팀장이 된 들 일 년 내내 일거리를 받아 올 수 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남자가 팀장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의문.

단순 금액의 수치로 봤을 때는, 꽤나 매력적인 직업이었고 며칠 동안 일을 해 본 결과 남자의 적성에도 그럭저럭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매우 거친 편이고 남자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꽤나 반발이 심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사용하는 도구들이 매우 날카롭고, 위험한 편이라 부상을 당한다면 가벼운 경상으로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이 쪽일을 한다고 하면 작은아버지를 따라 전라남도 진도(남자가 사는 부천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에 가서 일을 배우거나, 아니면 회사를 들어가 일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5. 웨딩홀 or 호텔 직원


월급 : 약 250~280(세후)

하루 근무시간 : 10~12시간

휴무 : 보통 주에 1~2회 (평일에 쉬어야 함)

노동강도 : 80/100

장래성 : 40/100

안정성 : 60/100

위험도: 10/100


남자는 웨딩홀과 호텔에서도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일의 육체적 노동강도는 크게 힘들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일이었다. 남자는 주로 결혼식의 파트를 맡았는데, 보통 인생의 한 번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인지 신랑과 신부, 그리고 혼주 측은 상당히 신경의 날이 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일도 많았고, 데리고 일을 해야 하는 인원이 매우 많은 것도 꽤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어딜 가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었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남자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면 반발을 하고 일을 안 나오는 등 남자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회식이 매우 잦았는데 남자의 주량이 많지 않아 그것도 매우 힘든 요소였다.

장래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 남자가 직원으로 일하던 삼사 년 전보다 결혼식이 매우 줄었다. 앞으로도 점점 결혼식이 줄고 인구가 줄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썩 좋지 않은 장래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6. 조선소


월급 : 약 300~330(세후)

하루 근무시간 : 10시간

휴무 : 보통 주에 1~2회 (평일에 쉬어야 함)

노동강도 : 100/100

장래성 : 90/100

안정성 : 50/100

위험도: 100/100


남자의 전공은 꽤나 희한한 전공이다. '비파괴검사'라는 이름의 전공이었는데. 현장에 가서 용접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그 물건을 파괴하지 않고(한자로 아닐 비 자를 써서 파괴하지 않고 검사한다는 뜻이다) 검사를 하는 방법이다.

꽤나 다양한 검사법이 있는데, 눈으로 검사, 침투액을 써서 검사, 자기장을 이용해서 검사, 초음파를 이용해서 검사, '방사선'을 이용해서 검사.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중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자기장을 이용해서 검사(대부분의 검사체가 자성을 띄는 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사선'을 이용해서 검사를 많이들 한다.

남자는 옛날에 조선소에서 이 전공을 살려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수입은 매우 높지만, 위험도에 있어서는 따라올 직업이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남자가 주의한다고 해서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주위의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커다란 폭발 같은 사고가 일어날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무자들의 안전불감증은 덤이라고나 할까.


7. 대기업 생산직


월급 : 약 220~300(세후-야근 수당 포함)

하루 근무시간 : 10~12시간

휴무 : 보통 주에 1~2회 (평일에 쉬어야 함)

노동강도 : 30/100

장래성 : 50/100

안정성 : 50/100

위험도: 10/100


남자가 최근 주위에서 많이 권유받는 직종이다. 남자는 생산직에 대해서 어떤 낡은 공장에서 위험한 용접이나 기타 등등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모양이다.

건물 안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생산하는 것인데 대기업에 속한 생산직 같은 경우는 월급이나 안정성도 보장되고, 심지어 1인 1기숙사도 보장하고 하루 세끼를 모두 보장하는 등, 근무조건이 다소 괜찮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단점이라면 반복 작업을 계속해서 하는 일이라 정신적인 면에서 다소 힘들 수 있을 것 같았고(한 가지 일을 계속해서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지루할 것 같았다) 언제든지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불안한 점이었다. 남자는 최근 자신이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인한 카페 폐업이 이 생산직에서도 일어나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이 단순노동은 크게 잘하고 못하고 가 있을 수 없어 보였다. 이것은 고난도의 작업이 아니라는 장점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몇 년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이 되기 힘들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즉, 연차에 비해 제대로 된 연봉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기까지 글을 쓰고 빈 커피잔을 버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추가 주문하러 카운터에 갔다가, 남자가 좋아하는 TWG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는 아이스 얼그레이를 주문하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잠시 후에 음료를 가져와 다시 글을 이어서 썼다.


여하튼, 남자가 지금까지 알아본 선택지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직업들이 있었다. 남자의 나이가 서른인 탓에 이제 어떤 일을 정한다면 다른 일로 갈아타기에는 아마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았다.

남자가 며칠 동안 고심하고 주위 사람들과 토론을 통하여 정한 제일 안정적이고, 제일 현명(이 현명이라는 기준은 따로 없다. 다만 사람들 입에서 '현명한 선택이라'라는 말이 자주 나온 의견이라는 것이다)한 방법은


1. 대기업 생산직에 들어간다.

2. 아직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의 자그마한 상가를 대출받아 매입한다.

   (약 3~4억 정도의 가격을 지닌)

3. 약 오 년 동안 나 죽었소. 하는 생각으로 대출을 갚아나간다. 상가에서 들어오는 월세와 함께.

4. 오 년 정도 후에 대출을 다 청산한 후에, 상가로 돌아와 자신만의 카페를 여는 것.

5. 아니면 또 다른 자그마한 상가를 또 대출을 받아 사서 첫 번째 상가에서 들어오는 월세와, 두 번째 상가에서 들어오는 월세와, 남자의 생산직 월급을 모아 또 대출을 갚아 나가고... 반복.


이것이었다. 


이 의견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아주 좋은 의견이야. 다들 그렇게 살잖아. 잘 생각했어. 그냥 나 죽었네. 하고 한 십 년만 고생하면 상가도 생기고 네 집도 생기고 아주 좋아. 그렇게 해. 만약 대출을 받는다면 우리도 조금 도와줄게."

정도였고, 친구들의 반응은

"음. 일단 대기업 생산직이 월급 쌔잖아. 나쁘지 않은 듯." 

이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남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기업 생산직은 사람들의 약간의 편견을 극복한다면 남자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꽤나 괜찮은 자리라고 느껴졌다. 

아마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남자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약 십 년 정도 나사를 조립하거나, 어떤 물건이 잘 생산되었는지 잘 지켜보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루에 약 열두 시간 정도 하고. 쉬는 날에는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가끔 상가에 들러 월세의 수령에는 문제가 없는지, 세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점점 줄어가는 대출을 보고...


썩 나쁘지 않은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우려되는 점도 많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일을 해보는 것이고, 한 가지 일을 반복해서 열 시간 정도 한다는 것이... 글쎄.

남자는 생각해보았다. 하루에 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을 만든다는 것..... 어떤 것일까.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직한 노동을 해서 돈을 받는 것은 꽤나 괜찮아 보였고, 1인 1기숙사에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챙겨준다는 것은, 남자가 남는 시간에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괜찮은 환경으로 보였다.


그러나 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남자는 결정을 내릴 때 최대한 많은 예상을 해보는 편이었다. 아무리 조사를 열심히 하고 각오를 하더라도 현실은 늘 예상보다 약 20% 정도 가혹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어떤 식으로 돈을 벌어먹고살아야 할까. 어떤 삶의 방식을 지향해야 할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남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수많은 갈래의 길이 펼쳐졌다. 미국의 유명한 프로스트의 시의 한 구절처럼 두 길중에 한 길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기에 길에 대한 선택은 늘 신중해야 했다.

사실 돌아보면 남자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도 않았고, 끝이 좋지도 않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인생을 서비스직을 하면서 보냈으나 금전적으로 많은 돈을 번 것도 아니었고 좋은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났기에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상처만 늘어갔다. 몇 번의 짧은 연애도 모두 남자에게 깊은 슬픔과 아주 얕은 행복을 안겨주었고 밤마다 그때의 얕은 행복과 아주 짙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 오고 나가는 통에 점점 잠을 이루는 것이 힘들었다. 나이는 속절없이 늘어갔고 몇 년 동안 틈틈이 작업했던 글과 그림은 아직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도대체 언제쯤 나의 세상에 빛이 내릴까. 남자는 가끔 자신의 꿈이 끝없는 어둠 속에 묻히는 꿈을 꾸었다. 온 힘을 다해 가느다란 동아줄을 그 짙은 어둠 속으로 내려 꿈을 정신없이 끌어올리다 보면 잠에서 깨고는 했다.

그러나 남자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길을 선택해서 삶을 지탱해나가더라도, 그림과 글을 놓지 않기로 했다. 포장되지 않은 순수하고도 거친 땅을 걸어가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 모든 것을 글과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 남자의 기쁨이었고 그것이 남자의 인생을 사는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글을 쓰니 남자의 배가 고파온다. 남자는 배가 고플 때마다 생명의 위엄을 느낀다. 끝없이 밥을 먹고, 무언가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살아간다. 어떤 한 생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숭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일지라도.


남자는 글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바빠 채 챙겨보지 못했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고, '기사단장 죽이기'를 조금 읽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발행'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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