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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Aug 31. 2017

인생이 쓰다.

쓴 것은 익숙해진다.

남자는 오늘도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로 카페 일을 그만 둔지 이 주가 지났다.


어느덧 서른이다. 남자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연결하며 다시 생각해보았다. 얼마 후면 서른 하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에는 샷이 세 개 들어간다. 약 3 쓴맛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남자는 그동안 카페에서 오 년을 일했지만, 사실 그렇게 쓴 맛을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그나마 쓴맛이 덜 느껴지는 카페라테라던지, 카푸치노를 마시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쓴 맛을 제법 즐기게 되었고, 그 덕에 샷 세 개가 들어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찾게 되었다.


남자는 인터넷을 켜서 열심히 구직 자리를 찾아보았다. 인크루트, 잡코리아, 사림인, 알바몬 총 네 개의 사이트를 켜서 계속해서 검색조건을 바꿔가며 일자리를 찾았다. 남자는 전문학교에서 항공비파괴검사를 전공하고 졸업까지 했지만 전문학교는 노동부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최종학력은 '고졸'이었다.

검색조건을 '고졸'로 바꾸자, 육천 개에 달하던 구직광고가 팔 백개로 줄었다. 그중에 '신입'을 추가하니 삼 백개로 줄었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의 글들은 '생산직', '영업직', '현장직', '서비스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텔레마케터가 압도적이었고, 식당이나 카페, 주점 등이 있었고, 중고차 영업들이 간간이 섞여 있었다. 남자는 그 글들을 한참 동안 클릭해보다가 검색을 그만두고 담배를 피우러 테라스로 나갔다.


담배를 배운 것은 군대에서의 일이었다. 남자는 상병쯤에 분대장을 달았는데 하나의 분대를. 남자의 아래로 아홉 명을 이끄는 것은 남자의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직을 볼 때면 약 팔십 명을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해야 했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꽤 힘든 일이었다.

어느 날, 정말로 꼬인 일들이 있었다. 후임들은 사고를 쳤고 선임들은 남자를 불러 계속해서 갈궜다. 군대에서는 마음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었고, 일과가 끝나고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켤 술도 없었다. 남자는 그날 PX에서 난생처음 돈을 주고 담배와 라이터를 구입해 막사 뒤에 그늘진 곳에서 혼자 처음 담배를 피웠다. 인생 처음 피웠던 담배에서는 매캐한 쓴맛이 났다. 처음에는 헛구역질을 불러일으키던 담배가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 신기했고, 담배를 피울 때 믹스커피를 곁들이는 것이 뭔가 좋다는 것도 배웠다.

남자는 전역 두 달 전에 군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는데, 군의관은 지금 의가사 제대를 신청하면 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동안 한 군생활이 아깝지 않으냐고 물었다. 남자는 아깝다고 대답했고, 남자의 의견을 들은 중대장과 군의관은 왠지 모를 미소를 지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커피와 담배였다.

전역날, 남자는 군대에 와서 얻은 것은 허리디스크와 담배 피우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게 그날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도 입안에서 지독한 쓴 맛이 느껴졌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남자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계속해서 구인광고를 검색해보았다. 너무나 많은 일자리가 있었지만 모든 일자리는 불명확했고, 거의가 비정규직이었다. 남자는 더 이상 비정규직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전망이 좋고 자신이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계속해서 찾았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고, 설령 그런 구인광고를 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경험을 한 남자의 눈에는 그것이 허위 광고의 냄새를 풍긴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다시 한번 담배를 피우러 테라스로 나갔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는 것은 담배와 핍박, 멸시뿐이다.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오. 방금 문장 괜찮은데. 남자는 방금 문장을 어떤 소설에는 꼭 쓰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그림과 글을 사랑했다. 감히 남자가 그 둘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둘에게 많은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제조건에는 꼭 '희생'이 붙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 조건을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삼 년 동안 정진했다. 일 년 동안 선릉에 있던 문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삼십육만 원의 수강료를 내고 왕 복 세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일주일에 A4 세장 분량의 단편 소설을 썼다. 학원비와 교통비, 식사비등은 카페베네에서 마감일을 하며 번 돈으로 충당했다. 그렇게 쓴 단편 소설이 열두 편이 되었을 때, 남자는 장편 소설을 하나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이 년을 장편 소설에 하나에 희생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이 주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숙식하며 몇 천장의 사진을 찍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비행기 값과 숙식을 하며 쓴 돈은 거의 오백 만원에 달했다.

회사를 다니며 퇴근을 하고 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썼다.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데 일 주가 걸린 적도 있었다. 막혔던 글들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야 흘렀다. 술을 마셔야 흐르는 일도 있었고, 담배를 피우다 보면 흐르는 때도 있었다. 심지어 이별을 하고 나서야 흐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남자는 그 모든 과정을 외면하지 않고, 오직 소설을 쓰는 것에만 집중했다.


원고가 완성된 날. 2016.02.04. 남자는 파일명에 -최종 원고-.라고 적었다. 남자는 드디어 완성한 소설을 여기저기 출판사와 공모전에 제출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기억에는 약 사십 곳이 넘는 곳에 응모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여덟 곳 정도가 아주 정중하지만 완곡한 말투로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다. 나머지는 메일을 확인했으나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날도 입맛이 지독하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남자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만나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림도 삼 년 동안 정진을 했다. 남자가 쓰던 장편 소설이 완성되어갈 무렵, 남자는 소설의 표지를 자신이 직접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남자의 집 근처에 위치한 취미미술학원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선생님이 혹시 어떤 이유로 그림을 배우로 오셨는가. 하고 묻자 남자는

"제가 사실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의 표지를 제 손으로 한 번 그려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의 남자는 아직 자신감이 넘치고, 무모하다고 할 만큼 용기에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대로 세상을 살아갈 그런 용기가.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매우 신기해했고, 남자는 그 선생님 아래에서 그림을 열심히 배웠다.

소묘 과정을 거쳐 남자가 생각했던 소설의 표지를 그리는 수준에 이르기까지에는 약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술학원의 수강료는 수업을 네 번 듣는 조건에 십 삽 만원이었다. 남자는 미술학원을 다니기 전에는 전혀 미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림도 매우 못 그리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기에 일주일에 세 번씩 수업을 듣고 했다. 미술은 소설과는 다르게 재료비도 제법 들었고, 육체적으로도 꽤 힘든 일이었다.

남자는 표지를 완성하면 미술학원을 그만 다니려는 생각이었으나, 표지를 완성했을 무렵에는 자신의 가슴에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열망이 남자를 이끌었고, 이 년을 더 학원에 다니게 하고, 추가로 일곱 점의 작품을 그리게 하였다.

그 와중에 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남자는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그림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수많은 거절을 당했고, 다시 한 번 진하디 진한 쓴맛을 맛보았다. 남자는 최근 다니던 카페를 그만 둔 후에,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옛날의 용기와,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남자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가, 그동안 피워왔던 담배 연기에 그 모든 것들이 날아가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입에 힘을 모아 담배를 세차게 빨아들이는 남자.


남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이번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투 샷으로 주문했다. 오늘의 구직은 끝났고, 이제 브런치에 글을 쓸 생각이었다. 남자는 삶에 대해서 느끼는 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내며 살고 싶었다. 지금 남자가 구직을 하면서 느낀 어려운 점이나 그 직업에 대한 나쁜 것, 좋은 것들을 적어서 다른 사람들이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남자는 글을 쓰면서 주로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는데, 사실상 직업의 장점은 거의 비슷했으나 단점은 다양하고, 그 정도가 지나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숙노'에 대해서 약 세 편의 글을 쓰고 통계를 통하여 그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지를 확인해보았는데, 남자의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을 확인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막일'에 대해서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이 많구나. 이렇듯 열심히,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째서 세상은 이 사람들에게도 똥 떼기를 시전 하는가. 세상은 왜 이리 가혹한가. 남자의 입맛에 또 쓴맛이 감돌았다. 남자는 입에서 느끼는 이 쓴맛이 부디 아메리카노로 인한 쓴 맛이기를 바랐다.


카페를 나서고 집에 돌아와서도 남자의 입에는 어떤 맛이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담배를 반 갑 피운 것이 그 맛의 원인이었으리라. 남자는 혀를 몇 번 굴려서 그 맛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느껴보려고 했으나, 너무나 익숙한 맛이라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그래. 이게 쓴 맛이었지. 남자는 이미 쓴 맛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남자는 잠시 그 익숙함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 두려움도 곧 익숙함에 파묻혔다. 너무나도 익숙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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