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악마가 나타나 물었다.
“살면서 저지른 가장 나쁜짓이 무엇이냐”
잘못 답했다간 큰 벌을 받을 것 같아 두루뭉실하게 알렸다.
“초등학생때… 친구들에게 상처를 줬어요.”
“그렇구나. 그 이후에는 그와 같은 나쁜짓을 하지 않았느냐.”
진주를 품었으리라 기대케 하는 조개처럼 내 입이 꽉 닫혀 열릴 생각을 안했다.
그틈에 악마가 사라졌다.
얼마뒤 악마가 다시 나타나 물었다.
“살면서 가장 슬픈 사실은 무엇이냐.”
동정을 사면 여생은 눈물 없이 살게 해줄거라 믿고 세세하게 알렸다.
“아버지가 자살했어요.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렸구요. 친오빠는 교대로 일하다가 기계에 팔이 끼여서 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저는 아직 학자금대출도 갚지 못한 빚쟁이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러한 사실이 해결 된다면 진정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
대답한 것 말고도 슬픈 사실은 길게 깔린 융단처럼 끝이 없었다. 그래서 저것들에 대한 해결만 바라기엔 또 아쉬웠다.
그틈에 악마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악마가 나타나 물었다.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아무것도 얻지 못한 두번의 대면입니다.”
“그렇구나. 이제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진실하게 임할 준비가 되었느냐.”
“예.”
악마가 뜨거운 입김을 후-불자 시뻘건 연기를 내며 사람의 형체가 바스라졌다. 아직 열기가 남아서 타는 종이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악마가 물었다.
“네가 내게 얻을 수 있는건 이것뿐이다. 그럼에도 후회 없느냐.”
갈기갈기 찢은 종이가 된 사람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대답을 들은 악마가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