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요. 얘기를 할 때는 두괄식으로 해야해. 요점을 먼저 말하고 이후에 설명을 덧붙이면 의미전달이 더 잘돼. 라고 했던거 기억나셔요? 흘러가는 물처럼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를 그말이 지금은 대뜸 생각나네요. 아, 이렇게 주절거리다가는 두괄식 말하기를 또 놓쳐버리겠어요.
동호회에서 많이 기다려요. 다들 왜 오빠가 갑자기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얘기만해요. 시간이 지나면 관심을 거둘줄 알았는데, 갈수록 이유 찾기에 대한 소재가 더 풍부해져요.
저도…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각자 내놓는 그럴듯한 소재에 오빠를 대입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그리고 자기전에 누워 다시 정정하고 다음 만남때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며 의견을 냈어요. 참… 쓸데없는짓이죠? 어쩌겠어요. 그만큼 오빠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에 대한 반증 아닐까요?
오빠가 사라진지 6개월쯤.. 됐으려나요? 이제는 오빠가 없는 사람인 것 처럼 행동해요. 아무도 오빠 얘기를 하지 않아요. 소재가 고갈 됐나봐요.
오빠 혹시… 그때 제가 오빠를 보지 않았다면.. 오빠는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계속 동호회에서 활동 했을까요? 생각해보니 이제 요점을 적네요. 저는 오늘도 두괄식 말하기에 실패에요.
근데 저는 그때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오빠의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어설픈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에요. 그냥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날 이후 오빠에게 어떤 편견이 생긴것도 아니에요. 무튼 오빠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거 전부다 아니에요. 그런데 자꾸 꼭 나때문인 것 같아요. 오빠가 사라진 이유가…
제가 오빠를 불렀을 때.. 아니다. 그때 얘기는 그만할게요.
혹시 제 잘못이 있다면 뭘까요? 알려주세요. 사과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세요. 오빠가 더는 나와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되어요. 그래도 잘못한게 있다면 사과하고 싶어요.
저는 오빠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그러니까 오빠가 찍은 사진 모두.. 피사체가 꼭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사진 밖으로 뭘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또는 뭘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사진이 말을 할 수 있다는걸 느꼈는데, 이제 그 느낌을 주는 사진이 없으니.. 오빠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요. 제가 많이 불편해서 나오지 않는거면… 제가 다른 동호회로 갈게요. 마침 친구가 좋은 동호회 있다고 알려줘서 거기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제가 거기 간다고 해도.. 오빠 사진은 꼭 한번씩 보여주세요. 아셨죠?
이제 돌아오세요. 아무렇게나 떠들던 동호회 사람들도 오빠가 돌아오면 반가워만 할거에요. 오빠를 놓고 추측하던 많은 얘기에는 이제 어떤 힘도 없어요. 그러니.. 꼭 돌아오세요.
맙소사. 다시 읽어봤는데 전부 중요한 내용 같아요. 두괄식 말하기란 참 어려운거네요.
보고 싶어요 오빠… 돌아와주세요. 답장이라도 주세요.
10여년전 보냈던 편지가 반송 됐다. 그렇다. 결국 답을 받지 못했다. 내가 편지를 쓴 이유, 그러니까 사라진 이유를 나에게서만 찾을 수 밖에 없던 그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흩날리는 눈송이가 편지에 살포시 앉았다. 앉은 눈은 금방 녹아 편지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게 꼭 편지가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 내 진짜 울음은 어찌어찌 삼켜볼 수 있었다.
오빠는 완전체였다. 공부, 미술, 음악, 사진, 체육 등 사람이 할 수 있는건 다 잘했다. 그것도 모잘라 영혼을 덮고 있는 껍데기까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누구나 관심 가질법한 껍데기를 가졌지만,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면 깊이가 남달랐다. 물리적인 지식의 양도 많았는데 보다 더 나아가 생각하는 기술도 특출났다. 그래서 오빠라는 사람은 해충을 잡기위한 트랩처럼 사람을 마구 휘감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빠는 말이 없었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게 맞겠다. 관계 유지나 일상 영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했다. 그렇다고 그게 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신비로운 사람일 수 있게 뒷받침 해주는 어떤 장치 같았다.
“근데.. 상학이 오빠 너한테만 말 많지 않아?”
“맞아. 그오빠 저번에 나보고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갔어.”
“최근에 들어온 회원들이 상학이 오빠 여친이 너녜.”
사람은 참 웃긴다. 그냥 막연하게 높이 솟은 산처럼 ‘멋진어른’일 뿐이었는데, 동호회 사람들의 입김에 ‘나를 설레게 하는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거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한건 아니다. 우리는 똑같았고, 나는 오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어설픈짓 같은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정도 사실이긴 했다. 오빠는 정말 나에게만 말을 많이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아슬아슬 외줄타기 중에 그만 그 일이 일어나고야만 말았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겨울 바다를 걷고 있었다. 늦은 밤에도 파도가 꽤 높이치는 날이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내가 체감 온도를 더 낮게 느끼도록 부추겼다.
“외투 하나 챙길걸 그랬다..”
팔을 문지르며 나름 체온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왔던길을 돌아가려 좁은 계단으로 나서던 참이었다. 그때 내 앞에서 계단을 오르던 여성이 갑자기 넘어졌다. 그 사람것으로 보이는 카메라, 휴대폰, 여성 장지갑 등의 소지품이 함께 떨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장 비쌀 것 같은 카메라를 우선 집어 들어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넘어진 여성.. 아니, 넘어진 사람은 상학이 오빠였다. 근데 가발을 쓰고 있었다. 화장도 한 것 같았다. 구두도 신었다.
“오..빠..?”
닮은 여자분일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 완벽한 오빠도 준비 없이 맞닥뜨린 일 앞에서는 일개 사람임이 확실해졌다. 오빠의 표정이 너무나 흔들렸다. 그의 눈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온갖 부정적 감정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파도 소리와 접목되어 3D처럼 생생한 효과를 냈다. 오빠는 내가 내민 카메라를 한번 보더니 휴대폰만 챙겨 황급히 벗어났다.
그게 내가본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다. 카메라, 지갑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 카메라 안에 있는 오빠의 세상을… 그러니까 그 세상을… 10년이 지날때까지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사라진 오빠가 찍은 사진의 말을 유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편지 아래 덧대어진 종이를 펼쳤다. 손글씨가 아닌 깔끔하게 타이핑된 글자로 정확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故천상학, 마음을 담아 반송합니다.’
오빠가 말했던 것 처럼 철저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두괄식 문장. 그 한문장에 내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눈발은 굵어졌다. 솜처럼 폴폴 날리는 눈송이는 부고를 전달하는 종이에도 예외 없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