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에 주의하세요

by 김채하

출근길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한달하고 며칠전 꽤 큰 사고 이후 운전이 극도로 두려웠지만, 마냥 방임할 수만은 없어 괜찮다는 자기 최면을 걸며 차가 거의 없는 길만 택해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한바탕 접촉사고가 날뻔한 상황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예고 없이 일어나는 돌발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를 탓할수도 없고, 상대차만을 탓하기엔 'O년 운전 무사고'라며 숫자만 바꾸어 자랑하던 동료들이 떠올라 더욱 기어들어갔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자꾸만 생긴다면 차라리 그 속에서 흔해빠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만났으면 좋겠노라 생각했다. 예컨대 상대차주가 꽃미남 재벌이라던가, 오래전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라던가. 그게 너무 비현실적이라면 보험회사 직원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에 가까워 첫눈에 반하는 정도는 합리적이지 않은가? 따위의 생각과 함께 심장 박동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나 진짜 운전하기 싫어.”

“나는 출근이 싫어. 차라리 사고 나서 한 2주 병원에 눕고 싶네.”

“멕이냐? 한번 나봐야 정신차리지?”


내 볼멘스러운 대답에 동료가 얼른 커피를 챙겨 나갔다. 탕비실은 통창이었다. 그덕에 통창 프레임안에 원하는대로 세상을 담아 볼 수 있었다. 사고가 날'뻔'했던 상황때문인지 오늘 나의 프레임은 오직 도로를 메운 자동차만 클로즈업 되어 보였다.


모두 그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사는건가? 그럼 나는 여지껏 수많은 돌발을 견뎌 살아남은건가? 어떻게 생각하는게 불안을 잠재워주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12러1994 차주분 맞으시죠?”

“맞는데 왜요?”


이제 차와 관련된 모든것에 예민해지고 있었다.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상대는 개의치 않고 할말을 했다.


“얼마전에 차 맡겼던 00점 수리센터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오일교환권 쿠폰 발송해드리려구요!”

“아..네 그렇게 해주세요.”


안도했다. 그러나 차와 관련된 모든 얘기는 아직까지 거슬렸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누군가 들어왔다. 내 손가락은 그대로 멈췄지만 서비스 정신 투철한 직원이 이미 전화를 끊고 사라졌다. 얼른 커피를 챙겨 나가려는데 그 사람의 통화 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통화 내용.


“사고만 몇번째야 대체..운전하기 싫어 죽겠어.”


근래 자신이 습관처럼 뱉은 말이 처음보는 사람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니 AI 거울치료 같았다. 갑자기 생기가 돌아 다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온 신경을 그 사람에게 연결했다. 납득 못 하겠다는 얼굴, 어쩐지 억울함까지 풍기는 표정, 답답해서 가슴을 쾅 내려치고 싶은 그 모습이 조금전 자신과 흡사했다. 상대는 나를 신경쓸 겨를도 없이 통화 상대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나 아무래도 운전이랑 안 맞나봐. 그냥 걸어다닐래.”


최후통첩. 나름대로의 결단을 내리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출근길 지옥철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말그대로 지옥 그 자체다. 살아있는 지옥, 생생하게 불타는 지옥 불길을 자기발로 들어간다? 잦은 횟수로 사고가 나지만 쌩쌩 잘 달리는 차를 두고? 그러니까 행동력이 아예 없는 앙탈과 비슷한 선전포고다. 이후 저 상대는 빠른시일내에 운전대를 잡을 것이고, 더 빠르게는 당장의 출장으로 인해 곧장 도로에 내던져질수도 있을것이다. 저 사람은 이같은 돌발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는데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탕비실로 꽂혔다.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나도 모르게 차장 가까이 딱붙어 근원지를 찾았다. 상대는 통화도 미쳐 끝내지 않고 밖을 한참 쳐다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적소리가 없는 경미한 접촉사고도 부지기수지만, 방금전 정도의 소리는 그것과는 다른 큰 사고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데 군데 하늘로 솟은 건물, 코풀고 버린 휴지처럼 곳곳에 붙어있는 건물 때문에 사고현장을 딱 집어낼 수는 없었다.


“엄청 큰 사고 같죠?”

상대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대답했다.


“차 사고는 어쩔수 없나봐요.”

이번에는 그냥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 전화를 마무리한건지, 상대의 손에 휴대폰은 없었다. 다양한 사이렌소리가 일대를 울렸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 현장은 보이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경적 소리로 정체된 도로를 상상했다.


“근데 그 어쩔수 없는 일이 저한테는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기어코 상대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큰 키와 하얀얼굴, 적당히 멋스러운 짧은 머리. 이제는 그런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긴급출동 소리와 도로를 정리하는 경찰관의 소리침이 잡탕처럼 뒤섞였지만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내 마음이 읽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생전 처음보는 이 사람을 읽고 싶어서일까.


아침에 나는 골목에서 도로진출을 앞두고 좌우 전방을 확인 또 확인 했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 기다리던 차는 내 차 옆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고, 결국 동시에 3차선에 진입하며 하마터면 접촉할뻔 했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회사 도착까지도 심장이 두근거려 뜨거웠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놀랬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왜 이러는걸까. 겨우 진정된 심장이 다시 빠른속도로 과속하고 있다. 이렇게라면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정도로 심장이 신나게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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