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정말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한다.
나의 경우, 어제만 해도 꽤 급박한 하루를 넘겼다. 퇴근 후 무엇을 해야 의미 있는 하루가 될지 시간별로 주욱 나열했고, 실제로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누군가가 달성율을 체크 하며 검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 그런 성향을 타고났고, 이 성향이 내가 사람임을 피곤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렇게 나의 기준에서 의미 있는 삶을 쫓게되면 부작용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다. 애초에 '의미'라는것은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안 해질 수 있겠지만, 이미 다년간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 한번에 내려놓기란 찝찝하고 불쾌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꼭 저마다의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내기에 집중한 사람만이 피곤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람으로 태어나면 해야할 것, 해내야만 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 요구 사항이 너무나도 많다.
이것들은 보통 개인의 본능과 취향,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질서가 섞여 무언가를 하게끔 만든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하고, 일정 수준의 교육을 이수해야하고, 치아가 상하면 치과에 가야하고 피부가 나빠지면 피부과에 가야하고, 정체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기개발을 해야하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녀야하고, 햇볕에 타지 않기 위해 썬크림을 발라야하고,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야 하고,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사야하는 등의 너무 당연하지만 어찌보면 너무나 귀찮은것들을 죽을때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에서 다수가 선택하는 평범하지만 성가신 일들을 어느새 나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보통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점차 알아가며 여생을 설계하는 기준이 생긴다. 당연히 그 기준에 정답이나 점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게 국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만 좋으면 돼'와 같은 결론까지 도달할 수 있다. 어차피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이란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사람은 그 추상적인것을 계속해서 수정하며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피곤하다. 아침에 양치를 했고, 옷을 입었고, 운전을 했고,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셨다. 퇴근 후에는 건강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가야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어학 공부도 지나칠 수 없다. 또 글쓰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글을 써서 브런치 스토리에 게시한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구질구질한 일과 잡다한 감정을 완전히 외면하고 살 수 없지만, 사람이기에 그 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