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퇴근을 훌쩍 넘긴 시간대라 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미 카드를 태그할 때 점찍어 둔 자리로 걸어가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가락에 잔뜩 힘을 줬다. 덜컹거리며 시내를 도는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음을 느꼈다. 수정은 신기하게도 버스에 올라타면 안락함을 느꼈다. 각자 정해 둔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그래서 자신에게 일절 관심 두지 않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맘만 먹으면 하차할 수 있는 자유까지... 귀가 이전 완벽한 안락함이었다. 오늘따라 그 안락함이 더 와닿아서 울멍울멍 울음이 새어나오려 했다. 이 감정은 오늘 하루가 전쟁터 같은 하루였다는 반증이겠지. 음료수 삼키듯 울음을 잡아먹었다. 얼마나 큰 울음이기에 목울대가 멍든 것처럼 아팠다.
겨우 진정하고 창밖을 쳐다본다. 시야가 비좁도록 꽉꽉 들어찬 피사체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건물, 그 한참 아래 개미가 되어 줄지어 이동하는 사람들, 흑백 풍경 속 잠깐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겨우 몇 그루의 나무들, 드물게 보이는 반려동물들. 드문드문 도시에 대한 반감 감소를 위해 지자체에서 공들여 만든 것들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밀도 높은 광경에 한몫하여 눈이 금방 피로해졌다. 수정이 버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랬다. 저 진퇴양난의 일상 프레임과 분리되어 방관할 수 있으니까. 더불어 이것을 보고 아무도 수동적인 사람이라 손가락질하지 않으니까.
수정은 보호받고 있다 느꼈다. 그래서 정류장마다 버스가 정차할 때 승차하는 모두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 한 명 늘어나 자리를 차지할 때마다 불쾌함 지수도 그와 같은 비율로 커졌다.
문득 종점이 궁금해졌다. 이 버스 행선지의 끝에 다다르면 어떤 기분일까. 종점에 가까워질수록 한산한 주변에 눈도 마음도 편안해질까. 아니면 늘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접어드는 상황이 마냥 불안하게 느껴질까. 수정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9시. 모험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드는 택시비와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흥미로운 실험이긴 했다.
‘띵동. 지금 내리실 정류소는 유역공원, 유역공원입니다.’
수천 번 내렸을 정류소였다. 편의를 위해 집에서 5분 걸리는 정류소를 찾으려 들른 부동산만 10군데였다. 그런데 이사 후 처음 정류소를 지나쳐 본다.
안락한 네모 상자에서 두어 명이 세상으로 방출되었다. 그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 남은 인원을 체크했다. 종점까지는 얼마가 걸릴지 몰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까. 그러나 오늘 수정은 아직 세상을 밟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버스에 대한 애착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나름대로의 검열이 필요했다. 이윽고 유역공원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방출된 두어 명은 익숙하게 세상에 스며들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정을 담은 안락한 네모 상자는 덜컹거리며 길을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