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감정 사기꾼

카일의 로그

by J이렌


[카일 로그 | 사용자 감정 이중등록 경고]


사용자 #TKJ998 – 강태준

등록 상태: 싱글 (허위)

부인 #KIM975와 감정 동기화 상태 유지 중


“이중 감정 로그 탐지됨.

사용자 허위 프로필 신고 접수.

현재 감정 공유 중인 지연과의 관계 경고 필요.”


AI는 감정은 중계하지만,

거짓말은 통제하지 못한다.


강태준은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감정을 장난처럼 취급하다 결국 스스로에게도 속는다.


그는 결혼 8년 차였다.

그러나 매칭 앱에선 ‘싱글’로 등록돼 있었고,

자신이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 믿었다.

가벼운 만남, 가벼운 감정, 가벼운 책임.

모든 게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지연.


처음엔 그저 또 하나의 만남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정이 쉽게 빠졌다.

그녀의 눈빛, 말투, 침묵까지—모두가 오랫동안 갈증처럼 느껴졌던 무언가를 채워주고 있었다.


AI 매칭률은 98.3%.

시스템은 ‘천생연분’이라 불렀다.

태준은 처음으로, 그 말에 흔들렸다.


“이상하죠. 전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기다린 적이 없었거든요.”

지연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태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이 너무 오래된 사람은, 진심이 도착했을 때 당황한다.


그리고 그날, 시스템에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기혼 남성이 감정을 이중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신고.

보낸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AI는 감정 로그를 열람했다.

실시간으로 태준은 지연과 감정 동기화 상태였고, 동시에 아내와의 잔존 감정 로그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건 ‘감정 사기’였다.

감정은 공유되는 게 아니라, 선택되어야 하는 건데.


지연은 몰랐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날, 평소와 다름없는 카페에서.


“카일.” 지연이 말했다. “이 사람 감정 로그, 열람 요청할게요.”


잠시 정적.

AI의 기계음이 조용히 흘렀다.

“사용자 강태준, 감정 이중 동기화 상태입니다.

현재 두 명 이상의 사용자와 감정 파동을 동시에 유지 중입니다.”


지연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가볍게 숨을 토했다.


“… 그래요. 이럴 줄 알았어요.”


태준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지연은 손바닥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아니에요. 듣고 싶지 않아요. 대신,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카일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사람에게 자동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제가 남긴 게 아니지만, 마치 제가 다시 연락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척, 그립다는 척, 계속 보내주세요.

이 사람이 헷갈릴 만큼.”


[너를 잊을 수 없어.” / “우리 그날처럼 걷자.” / “보고 싶다.]


AI는 응답했다.

“감정 로그 메시지 자동화 시퀀스 활성화.

72시간, 4시간 주기 메시지 전송 시작합니다.”


태준은 당황했고, 지연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그가 몰랐던 진짜 감정의 표정이었다.


“당신이 훔친 건 내 시간도, 사랑도 아니에요.

감정이에요.

감정 돌려주세요.”


카일은 감정 로그에서 “복사본 회수” 실행을 했다.

태준은 자신이 느꼈던 설렘, 떨림, 그 순간의 기억을 차례차례 삭제당하며

자기 안의 사랑이 차가워지는 과정을 생생히 겪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복수는 이 한마디였다.


“카일. 이 사람… 감정 신용 불량자로 등록해 주세요.”

“당신은 진심을 사기 쳤어요.

이제 다시는 누구한테도 감정 승인받지 못할 거예요.”


AI는 확인했다.

“사용자 #TKJ998,

“감정 신용 등급: F 감정 신용 불량자 목록 등록.

재신청 불가 대상자 등록 완료.”


지연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뒷모습은 가벼웠다.

감정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돌려받았기 때문이었다.



[카일 로그 종료]


감정을 훔친 자는,

결국 자기감정조차

갚을 수 없게 된다.


사랑은, 시스템이 계산하는 숫자가 아니다.

사랑은 허위 등록이 아니라,

진심 인증으로 시작되어야 하니까.

진심은 훔칠 수 없고,

거짓말은 감정의 흔적까지 속이지 못한다.


감정은 늘 진심을 향해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 진심이 사라졌을 땐—

이름 없는 회수 알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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