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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현 Aug 11. 2016

담력膽力 _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 1-1

정조 두려움을 만나다 1

'세상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구나’


1777년 정조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존현각尊賢閣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게 된다. 누가 정조를 죽이려 했을까? 노론세력임은 논할 여지가 없으나 흥미로운 것은 자객 중의 일부가 자신의 호위 부대였다는 것이다. 왕을 호위할 무사들이 왕을 죽이려 하다니... 당시 정조의 호위 부대의 규모는 약 150여 명이 있었다. 그중 1/3인 50여 명이 정조를 죽이려 한 것이다. ‘세상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정조는 생각했을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목숨을 거두려는 자들로부터 보호하고 왕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을 것이다.. 고심 끝에 규장각의 이덕무, 박제가, 무사 백동수를 불러서 무예서 편찬의 명을 내린다. 이것이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의 시작이다. 동시에 국왕 호위 부대 장용영壯勇營 창설한다. 1784년 2000명을 무사로 채용했고 1785년에는 2500명으로 늘어난다. 이 규모는 동아시아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국왕 호위 부대였다. 


정조의 반차도

우리는 여기서 무예도보통지가 갖는 독특한 의미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병법서가 아닌 개인 무예서이다. 전투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 훈련서로 제작한 것이다. 또한 언해본諺解本(한글 배포)으로 제작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 일까? 과거에는 무예를 배울 수 있는 것은 특권이었다. 무인의 가문에서는 적장자嫡長子에게만 전수하여 보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산중 무예는 수제자 한명만 비법을 전수하였다. 따라서 무예는 일부 집단의 특수한 정보이며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혜본이라니? 그것도 무예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는 앎과 배움으로 신분제도를 유지하던 조선 사회에 금기를 깨는 행동이었다. 정조는 이 책으로 많은 일반 백성들에게 무예를 배우게 하고 무예에 능한 사람들은 무과에 급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주었다. 당파싸움과 무관한 사람들을 자신의 호위 부대로 만들어 ‘믿을 만한 놈’ 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니.. 처음에 오랫동안 누워있던 환자들이 하는 말로 알았다. 그러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패러디적 표현이란 것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21세기의 한국. 이 땅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민족의 영웅들과 민주 열사들의 피땀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희망이 없는 땅, 두려움의 땅으로 변했다. 불확실성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청년들은 획일적이고 비효율 업무의 대명사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불은 위험하고 두려운 곳으로 만들 었을까? 바늘구멍보다 작아진 취업문, 살인적인 물가, 3포 세대의 출현, 묻지 마 범죄의 증가, 지속적인 환경오염 인가? TV. 특히 종편채널을 켜면 이불 밖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커다란 정치 문제부터 시시콜콜한 치정사건까지 말이다. 정말 이불 밖은 위험하고 두려운 곳일까? 이 조선 땅은 진정한 지옥(hell)인가?


정조 두려움을 만나다 2부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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