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하드는 왜 밑에서부터 녹아내릴까? 불편하게.
쉬는 시간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이번 시간은 국어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경례. 수업이 시작된다.
국어 선생님은 키가 크신 남자 선생님이셨다.
나이는 약 50대 중반에 손이 두꺼우시고 가끔 내 친구들의 귓방맹이를 날리곤 하셨다. 지난주에는 반장 놈이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이유 없이 그 놈은 머리를 빡빡 밀고 와서 반항적으로 보이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고 무언가 말대꾸를 하였는데 그게 화근이 되어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다.
아마 그 친구는 웃자고 한 농담 이였으나 그 친구는 농담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친구는 억울해했지만 선생님은 그것보다 훨씬 우직하신 편이어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면 모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선생님의 손맛은 매서워 보였고, 같은 반 여 학우들 앞에서 최소 뺨 맞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을 항상 바짝 차리고는 선생님이 읽어주는 글귀들을 눈으로 따라 읽는다.
수업 중반쯤 이 되자 교과서에 적힌 시를 배우다 말고 각자 시를 창작하고 수업 말미에 발표를 할 테니 정성껏 적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굳이 뭐 시를 적어 보자면 나는 쉽게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래 봬도 이 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 받은 ‘시 암기’ 대회에서 20편의 시들을 적고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나의 문학적 재능에 하나 더 굳이 보태자면 7살에서 8살 때 까지 동네의 웅변학원에 2년이나 다녔으니 내 필력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숱한 검증을 받아온 편이라 큰 두려움은 없었다. 문학 키즈의 꿈은 이미 오래전 진행 중이었다.
시의 운을 띄우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어제 영어 단어를 외우며 들은 나의 우상 ‘서태지’의 노래가 생각이 났다. 더불어 지난주 에 선생님께 깐죽대다 뺨을 맞아 구석으로 날아가 버린 반장의 안경도 함께.
고민을 하다가 나는 시를 창작하는 것 대신 나의 우상의 문학성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확인받고 싶었다. 좋은 기회였다. 나는 종이 위에 ‘서태지’의 노래 중 하나인 ‘로봇’를 적어 내려갔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건 아닐까서태지 <로봇트中>
종이가 앞으로 걷히고 선생님이 학생들이 제출한 시를 눈으로 쓱쓱 훑으시다 그중 몇 편을 읽어주신다. 나는 그의 문학성을 대신 검증받고 싶었으나 싸대기를 맞을 것 같은 두려움도 동시에 가슴 안에 울렁이는 것이다. 이를 어찌한담, 내가 미쳤지.
선생님이 그 가사를 읽는 순간 싸대기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 내가 적은 종이가 저 밑에서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 뿐 이였다. 다만 나는 키가 작아서 키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가도 선생님은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안전빵’ 하나만 있을 뿐 이였으나 요즘 말로 졸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때 선생님이 ‘서태지’의 노래 가사를 읽기 시작한다. 내가 적어놓은 종이 가사 그대로 읽고 있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가사를 낭독한다. 어찌 되었든 선생님의 중저음 목소리는 멋있긴 했다.
심지어 끝까지 다 읽으시고는 누가 쓴 것인지 손을 들라하신다. 손을 들었더니 선생님이 칭찬을 하시는 거다. ‘아, 오늘은 나와 그, 서태지의 승리이다. 우리는 공권력의 교육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승리하였으며 그들은 우리의 노래를 불렀다.’라는 생각에 나는 뿌듯해졌다. 싸대기도 맞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쓴 걸로 아시고는 그 날의 시 수업을 마무리 지으셨다.
그게 내가 해 본 가장 큰 반항 리스트에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반항의 기회와 승리의 타이밍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았다. 밑에서부터 녹아내려가는 하드처럼 참 쉬이 사회에 융화되며 살아가고 있었다. 뜨거운 만큼 빨리 식었다. 나에게도 최근 서태지의 노래들은 그리 와 닿지 않는다. 대학생이 되면 서태지 콘서트에 꼭 한 번은 가보리라고 했던 나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우상과 나는 이제 매일 밤 패배하고 있다.
어디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 날 내가 선생님에게 싸대기를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 궁금하다. 10년 전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