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운 Sep 30. 2015

탄성

운동장 달리기

출발선에서 나는 4명 중에 3등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체력측정을 하는 그 날이면, 초등학생 4명은 총소리에 맞추어 일제히 뛰어야 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꼴찌는 창피한 것 같아서 나는 죽어라 달렸지만 결과는 항상 꼴찌였다. 


그때 운동은 소위 말하는 젬병 이였다. 그래서 밤에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쭉 뻗은 지금 보면 꽤나 짧은 길을 따라 혼자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달리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달리기 자세를 생각하며 두 달 정도를 혼자 밤에 나가서 달렸다. 초등학생에게 그것은 제법 큰 도전인 것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고, 덧붙이자면 동네의 무서운 형들을 만나기 좋은 시간임에도 나는 혼자 뛰었다. 


가을 밤의 선선한 공기가 좋아서, 또 다음에는 꼴찌를 하기 싫어서.


중학생 때, 친구들과 얼핏  이야기하며 듣기로는 모두 아는 그 S 모 기업은 무슨 IQ 테스트 같은 것을 통해 회사에 들어갈 사람을 선발한다고 했다. 그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SSAT였다. 그때도 나는 꽤나 머리가 좋은 편이라 빠른 판단을 하기에, '아, 나 같은 놈은 그런 IQ 테스트를 통과하여 그런 곳에는 들어갈 수가  없겠다'라고 자체 판단을 내려 일찌감치 포기를 하였다. 다른 곳을 물색하리라, 어디든 내 몸 뉘일 곳은 하나 있으리라 라는 알량한 생각들은 지금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그래, 이만하면 괜찮겠지’ 


마음의 기준들을 그어 놓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상들을 반복하다 보면 적당한 선이 그려진다. 
중학교 때 ‘옆 분단에 앉은 저 친구의 성적을  이겨야겠어’라고 나는 상대방은 모르는  어이없는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으나, 나는 지금 그 친구가 무엇을 하는 지 건너 건너 소식을 들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미 없는 경쟁인지, 발전을 위한 초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니,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던 그 겨울 날은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지만, 전공 지원자격에 맞지 않아 지원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많았던 4학년 2학기의 가을에 나는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하여 심하게 투덜댔으니까.

스프링을 너무 늘리면 그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을 어릴 때 이미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통해 알았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 친구와의 추억을 통해 알았다. ‘마음의 탄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내 욕심에는 일정한 규칙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오른쪽으로도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오려하는 그 규칙적인 선택의 습관들이 ‘자유롭고 싶은지, 자리 잡고 싶은지’ 나 조차도 헷갈리게 만들었다. 


날개를 꺾고서 아래로 떨어지는 새 같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곧 필 날개를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위험해 보여도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니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4등 중에 3등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마음의 탄성 때문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사님, 노원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