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달리기
출발선에서 나는 4명 중에 3등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체력측정을 하는 그 날이면, 초등학생 4명은 총소리에 맞추어 일제히 뛰어야 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꼴찌는 창피한 것 같아서 나는 죽어라 달렸지만 결과는 항상 꼴찌였다.
그때 운동은 소위 말하는 젬병 이였다. 그래서 밤에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쭉 뻗은 지금 보면 꽤나 짧은 길을 따라 혼자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달리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달리기 자세를 생각하며 두 달 정도를 혼자 밤에 나가서 달렸다. 초등학생에게 그것은 제법 큰 도전인 것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고, 덧붙이자면 동네의 무서운 형들을 만나기 좋은 시간임에도 나는 혼자 뛰었다.
가을 밤의 선선한 공기가 좋아서, 또 다음에는 꼴찌를 하기 싫어서.
중학생 때, 친구들과 얼핏 이야기하며 듣기로는 모두 아는 그 S 모 기업은 무슨 IQ 테스트 같은 것을 통해 회사에 들어갈 사람을 선발한다고 했다. 그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SSAT였다. 그때도 나는 꽤나 머리가 좋은 편이라 빠른 판단을 하기에, '아, 나 같은 놈은 그런 IQ 테스트를 통과하여 그런 곳에는 들어갈 수가 없겠다'라고 자체 판단을 내려 일찌감치 포기를 하였다. 다른 곳을 물색하리라, 어디든 내 몸 뉘일 곳은 하나 있으리라 라는 알량한 생각들은 지금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그래, 이만하면 괜찮겠지’
마음의 기준들을 그어 놓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상들을 반복하다 보면 적당한 선이 그려진다.
중학교 때 ‘옆 분단에 앉은 저 친구의 성적을 이겨야겠어’라고 나는 상대방은 모르는 어이없는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으나, 나는 지금 그 친구가 무엇을 하는 지 건너 건너 소식을 들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미 없는 경쟁인지, 발전을 위한 초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니,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던 그 겨울 날은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지만, 전공 지원자격에 맞지 않아 지원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많았던 4학년 2학기의 가을에 나는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하여 심하게 투덜댔으니까.
스프링을 너무 늘리면 그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을 어릴 때 이미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통해 알았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 친구와의 추억을 통해 알았다. ‘마음의 탄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내 욕심에는 일정한 규칙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오른쪽으로도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오려하는 그 규칙적인 선택의 습관들이 ‘자유롭고 싶은지, 자리 잡고 싶은지’ 나 조차도 헷갈리게 만들었다.
날개를 꺾고서 아래로 떨어지는 새 같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곧 필 날개를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위험해 보여도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니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4등 중에 3등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마음의 탄성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