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3월, 春 3월.
아직은 많이 추운 3월.
니트티 보다는 야상이 더 어울리는 그런 날씨.
대학교 1학년 환영회 행사가 있던 날이었어.
학교의 채플관에서 그때 어느 록 가수가 공연을 했지.
몇몇은 앞으로 뛰어나가 손을 흔들며 음악을 즐기더라고.
그래서 나도 조금 고민을 하다가 옆에 앉은 친구에게 우리도 앞으로 나가 보지 않을래? 했더니 그 친구가 괜찮다고 하더라고.
같이 김이 새며 의자에 앉아서 그 공연을 그냥 멀리서 바라 보았어.
그 날 공연은 아마 내가 본 공연 중에 제일 재미없는 공연이었어.
매년 내가 다닌 중학교는 체육 대회를 했어.
동네에서 제법 크고 오래 된 사립 남자 중학교 였는데 운동장도 꽤 컸어.
스탠드도 있고 말이지.
남자 중학교인 만큼 체육대회의 묘미는 역시 축구 토너먼트였어.
결승전 날은 모든 반 친구들이 나와 그 경기를 관람해야 했지.
중학교 3학년 체육 대회에는 우리 반이 결승에 올랐어.
나는 대표선수가 아녔기에 벤치에 앉아서 그 경기들을 지켜보았지.
경기는 우리 반이 졌었던가. 아마 그럴 거야.
그래도 부러웠어. 재미있었을 거야 그 친구들은 기억에 남았겠지.
나는 고등학교 때에 사물놀이 동아리에 가입했었는데 지금은 동아리로서의 명맥을 유지 못하고 사라졌어.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없다는 후배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아쉽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었지.
그래도 다른 몇몇 동아리 들은 아직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1학년 때 처음으로 운동장에서 대동제 날 공연을 하게 되었어.
선배들이 동아리에서 가장 오래 된 꽹과리에 막걸리를 따라 주더라고. 동아리 전통이래.
한 사람 한 사람 그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우리는 사물놀이 공연을 했어.
그 꽹과리에서 나는 쇠의 비릿한 맛과 계단으로 내려 가기 전 햇살이 참 좋았어.
가을 이맘 때 이었거든.
그 날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는 친한 선배 무릎 하나를 잡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2학년 선배들은 그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었거든. 우리는 거의 일 년을 준비한 공연이었고.
좋아서였을까. 아쉬워서였을까.
그때를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도 있지만 한 번도 돌려보진 않았어.
오늘 방 창문에 지난주에 본 영화 포스터를 붙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일요일 오후에는 무슨 짓을 해도 후회가 남는 것 같더라고.
3년을 연애하던 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다음에 여기 다시 오자며 약속을 해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같은 음식점을 두 번씩 간 적은 거의 없더라고.
어떻게 보면 엄청 쉬운 일인데 똑같은 일들은 반복되어 일어나지 않더라.
학교 다닐 때 내가 좋아하던 남자 선배가 있었는데 그 형이 한 말 중에 기회는 무조건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그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를 해두어야 한데.
물론 술자리에 나왔던 주옥 같은 다른 형이나 누나들이 해준 말들도 많았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이야기해주던 형들도 있었고,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말하는 형들도 있었어.
근데 나는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
근데 그게 아마 그 형이 좋아하던 랩 가사의 어느 구절을 나에게 해준 이야기 있던 것 같아.
그때 그 형은 카투사에서 복무 중이었거든. 나는 대학교 1학년.
군인 vs 학생, 선배 대 후배이지만 술값은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내가 냈지.
학교 앞 상도시장에서 육천 원짜리 안주를 놓고 소주를 마시며 그 형이 이야기해주는 데 자기는 랩을 할 거래.
근데 그 형은 진짜 나중에 홍대의 공연장에서 랩을 하더라고.
그 중간중간의 과정들을 내가 직접 목격하며 그 길들을 지켜보는데 나는 정말 이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모르는 사람에게 본인이 녹음한 음악들을 가져가서 들려 준다거나, 길거리 공연을 한다거나.
이렇게 철자로 적는 것은 쉽지만 이건 사실 수락산 계곡 높은 곳에서 물에 뛰어내리는 다이빙과는 또 다른 용기 같은 것들이 필요하거든.
결과물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면 우리는 숫자들을 이야기하는 게 빠르거든.
이력서에 적는 숫자들처럼.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들처럼.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그것은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같아.
"oo대기업을 그만 둔 저자의 이야기"
일단은 한번 성공을 해야 하는 거지.
그래야 나의 이야기에 발단, 전개, 절정, 결말 부분 중 발달이 씌어지는 것처럼.
이런 말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왜 듣기 싫은 말들 중 하나 인지는 잘 모르겠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을 듣고 나면 아쉽게도 이해가 빠른 것도 사실이야.
어렸을 때에는 어쭙잖게 상담이나 카운슬링의 개념들이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어.
그런 것들은 주로 중랑천에서 노상을 하며 진행되었지.
너는 이걸 열심히 해야 하고 너는 그리 살면 안된다는 등의 상담 등을 서로 해주던 시기가 있었어.
지금은 친한 친구에게도 조언을 해주는 것 마저 참으로 어렵다고 느껴져.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적인 것들이 상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도 말이지.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제일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거라 믿으면
내일은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일요일 오후의 시간들처럼.
우리는 항상 과정의 삶들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방에 있는 먼지들을 쓸거나, 친구와 커피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잘 지내고 잘 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렇다고 치는 게 나을 것 같아.
추운 3월을 누군가는 春, 3월이라고 불러주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뒤로 미루기에는 3월은 참 짧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