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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Dec 27. 2015

질문의 손

"질문이 있다면 손을 들어 주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한 동아리 선배들과의 술자리로 향한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 시대에 그들은 그 어려움을 뚫고 사원증을 손에 쥔 사람들이니 분명히 무엇인가 남과는 다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추측컨대, 오늘의 술자리는 분명히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무겁게 발걸음을 그 자리로  옮겼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들 위로 비마저 내렸다. 그 술자리가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지만 마땅히 다른 일들은  머릿속에 떠 오르지 않았다. 기회비용 적인 측면에서 굽어 보건대, 나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인간이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절박하면 손을 들라고 했던가. 나는 지금 손을 들러 간다.

막상 그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하고 나니 그들의 목에 매달린  붉은색의 사원증 말고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술과 뒤섞여 뭉개질 뿐이었다. 즐겁긴 했지만 이 즐거움이 영원할 것 같지는 않았다. 술집은 때 아닌 호황이었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난 뒤의 학생들의 발걸음을  잡는 데 성공해 보였다. 할 일이 별로 없는 우리네 청춘들이 머물 곳은  술집뿐이던가. 뉴스에서는 어느 대기업의  희망퇴직 소식을 다루며 입사 한 지 1,2년 된 신입사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권고했다는 이야기들은  너무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인 듯 보였다.

술이 네 잔쯤 꺾여 들어 갔을 때 나도 용기 내어 몇 가지 질문들을  붉은색 사원증에게 던져 보았다. 붉은색 사원증들은 별 다른 방법은 없었다며 자신의 경험담들을 풀어 주었다. 
잘 살았다. 듣고 보니 이 사람들도 잘 살았다.

질문이 외부로 향하는 동안 나는 이미 저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없겠구나 싶어 내 삶에 대한 채점을 포기한다. 잘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늘 저 사람들처럼 열심히 해보아야겠다가 아닌 상대적인 박탈감과 더불어 몰아치는 불안감에 말수가 줄어들었다. 술에 취해서 말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라 회비 만 오천 원의 술값이  아까웠다..
취기가 올라 자리를 뜨고 외부로 향한 고민과 질문들을 정리하여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다음에는 꺼내지 말아야지 하며 집에 걸어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비에 젖은 낙엽처럼 축축하고도 무거운 발걸음이 함께 했다. 

질문들은 외부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멘토, 힐링과 같은 한 때, 열병처럼 유행했던 몇 가지의 키워드들은 더 이상 그 실체를 증명치 못하고 아스라 졌다. 몇 년 뒤에 저 단어를 입에 올릴 사람이 몇이나 남을까. 술자리에 아직 진득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놈들이나 남을까?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질문들은 외부가 아닌 나의 내면으로 돌리기로 다짐한 고요에 들어서며 방문을 닫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레  소홀해졌다. 나는 혼자가 편했으며 말들을 담아내어 당신에게 전달하는 것이 굳이 필요한 일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관찰을 하고 신중해지기로 했으며 가치관을 서툴게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신과의 호흡을 소홀히 하며 이력서에 적힌 소통이라는 단어에 나는 오늘 밤 신물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막차에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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