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돌아 오는 길에 나는 공허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져
횡단보도 앞에서 아무도 듣지 못할 말로 조그맣게 속삭여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나는 저녁이 되어서도 그 공허함을 생각해
사과한다고 미안하다고 네가 한 말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연말이라서 나는 용서하기로 하고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어 TV 드라마를 보며 한 입 베어물어 중력의 법칙과 함께 사과에서 베어문 즙이 이불 위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슥슥 옷으로 닦아내
일 킬로에 육 만원 하는 방어회와 몇 병인지 모를 소주병들을 구석에 몰아 넣으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
과거의 골목길을 찾아가지 않아도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하지 못 하는 동생을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걸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소멸 직전의 올 해를 조금 더 써 보고 싶기도 해.